여보, 이거 어때?

강제 진입된 '육아템 세계'

by 암띤아빠

1.

나는 또 다른 세계에 강제 진입됐다.

"여긴 어딜까..?"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소리가 강제로 들어온다.

브레짜, 뉴본, 샘키즈, 타이니모빌... 이게 무슨 말이지?

30년 넘게 살았지만 처음 듣는 언어다.

웹툰에서 즐겨보던 이세계로 뚝 떨어진 걸까?

아내는 출산하고 필요한 육아템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도 아닌데 영어도 아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육아의 힘듦을 육아템에 하나 둘 의지하다 보니

내 필요에 의해 낯선 언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익숙해졌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분유 타기 힘들지만 버튼 한 번으로 따뜻한 분유가 뚝딱 만들어지는 '브레짜'

일어서서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허리를 보호해 주는 '기저귀갈이대'

아기와 놀아줘서 나의 자유시간을 만들어주는 '타이니모빌'까지

평소에는 전혀 쓸 일이 없지만 육아를 하면 필수품이 된다.

이렇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과거 부모님들은 육아템 도움 없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에 그려진다.


2.

올해 최악의 폭염으로 실외 산책이 어렵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아기는 계속 산책하자고 협박한다.

"그건 너희 부모 사정이고 집에만 있으면 계속 짜증 내면서 울어버릴 거야!"

그럴 때 자주 오는 곳이 백화점이다.

백화점은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평지에 턱이 없어 유모차가 다니기에 최적의 장소다.

근처 모든 아이들이 이곳으로 집합하여 가끔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임을 까먹는다.

돌아다니다 보면 귀엽고 앙증맞은 아기옷들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 옷보다 비싼 가격을 보고 그런 마음을 단념시키려 무단히 노력한다.

사실 아기옷은 얼마 입히지 못한다. 아기가 너무 쑥쑥 자라기 때문에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아기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기에

'이성적인 마음'과 '부모의 마음'이 언제나 줄다리기를 한다.

고맙게도 대부분 이성적인 마음이 이겨서 내 몸은 거기에 응답하듯이 나도 모르게 고개가 훽 돌아간다.

견물생심이라고 보고 있으면 사고 싶어 지니까.


임신 때부터 아기옷 걱정을 했지만 생각보다 아기 옷 걱정은 덜 했다.

마침! 아기가 태어났을 때 조카들이 무럭무럭 잘 잘아줘서

몇 번 입지 못한 고급 브랜드의 옷들이 재고방출 되었기 때문이다.

아기옷을 물려받을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아내와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싫어하는 아내도 분명 있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아내는 크게 꺼려하지 않고 어차피 몇 번 못 입을 거 잘됐다고 좋아했다.

속마음은 잘 모르지만..

그런 아내에게 언제나 감사한다.


3.

아기가 우리에게 오기 전, 우리 집의 수납장은 붙박이장이 유일했다.

그 붙박이장에는 우리 부부의 옷, 이불, 가방 등 온갖 물건들이 들어가고도 남았다.

그저 아기 한 명이 왔을 뿐인데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오는 육아템과 아기 옷들은 나와 아내의 짐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러다 보니 수납공간이 부족해져 육아템과 아이곳을 마치 창고의 짐처럼 바닥에 쌓아서 보관했다.

정신을 차린 나와 아내는 "이건 아니다." 생각하고 아기를 위한 수납장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앱은 부모들의 필수 어플 '당근'이다.

당근을 하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정가로 살 것인가? 보다 저렴한 당근으로 살 것인가?"이다.

내가 원하는 수납장은 정가로 사면 14만원인데 당근에서는 반값인 7만원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긴 고민 끝에 "수납장은 전자기기와 다르게 중고품도 문제없지!"라고 판단했고

혹시나 다른 사람이 먼저 살까 봐 바로 채팅을 걸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수납장의 상태는 사진과 같이 최상이었다.

판매자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집에 가려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당연히 뒷좌석에 들어갈 주 알았는데 "어라?" 문이 닫히지 않았다.

"방향을 잘못 잡았나?"

몇 시간 동안 여러 각도로 넣기도 하고 조수석을 접어서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급기야 트렁크에 수납장을 싣고 열어둔 상태로 가볼까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오르막길에서 떨어지는 대참사를 생각하니 그 생각은 머리를 긁적이며 쏙 들어갔다.

그렇게 이성의 끊이 끊어진 상태로 안절부절못할 때 옆에 있던 아내는 말했다.

"당근으로 용달 부르자."

"오!? 당근으로 용달도 부를 수 있어? 괜찮네!? 돈이 아깝긴 하지만..."

그렇게 당근에 올리자마자 1초 만에 3건의 채팅이 왔고 그중에 가장 빨리 연락온 분을 연락했다.

용달기사분도 10분 거리에 수납장 한 개만 운송하고 3만 원을 받으려니 미안해했지만

속으로는 땡잡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3만원의 용달값은 아내와 재밌는 추억거리를 만든 값이라 자위한다.


4.

육아 아이템은 너무 다양해서 한 가지를 딱 선택하기 어렵다.

그래서 첫 육아인 아내는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자주 의견을 묻는다.

"이거 어때?"

이때 남편들의 반응은 앞으로 가족의 평화를 좌지우지한다.

보통 남편들은 귀찮아서 "네가 맘에 드는 거 사. 나는 괜찮아."라고 하지만

그걸 아내가 모를리는 없다. 그저 참고 넘어갈 뿐이다.


육아선배로서 육아는 남편, 아내 둘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육아는 '전쟁의 씨앗'이 된다.

그렇기에 잘 모르고 귀찮더라도 아내가 의견을 묻는다면

시간을 내서 찾아보고 "이건 ~~~ 해서 좋긴 한데, ~~~ 이건 어때?"라고 최소한 의견을 내야 한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아내가 육아에 희생하는 만큼 나도 희생해야 가족에 평화가 찾아온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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