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기는 자꾸 산책 가자고 할까?
오늘도 벽에 걸린 네모난 전자시계를 멍하니 쳐다본다.
"14개월 아기는 시계를 읽을 줄 아는 건 아닐까?"
모두 믿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충분히 근거 있는 주장이다.
평소 장난감을 요리조리 맛보며 놀던 아기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시계를 힐끗힐끗 본다.
그리고 특정 시간대가 되면 아기의 웃음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심기 불편함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상사의 눈치를 파악하듯 아기의 눈치를 재빠르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무엇이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걸까?"
머리를 쥐어짜도 심기를 불편하게 한건 없었다.
아기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모든 게 완벽했다.
매의 눈으로 1달 동안 유심히 관찰하니 2가지 공통점을 겨우 발견했다.
첫 번째는 시간대가 '아침 6시, 오후 3시, 오후 6시'로 일정하다
여기서 추가 의문이 들었다. "시간대가 일정한 걸로 봐서, 진짜로 시계를 읽을 줄 아는 건 아닐까?"
두 번째는 신발장에 있는 유모차로 재빠르게 기어가서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바퀴를 소중하게 슥슥 만진다.
두 가지 공통점으로 유추하여 내린 결론은
"지금 산책이 하고 싶어.
아빠, 얼른 유모차 끌고 나가자!"
아기가 짜증 낸다고 성급하게 아무런 준비 없이 산책 나가면 지옥문이 열린다.
산책 내내 아기는 손, 발, 머리를 흔들며 큰 소리로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데 진정시키지 못하면 주위사람들은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듯 쳐다본다. 그런 시선이 나의 땀구멍을 사정없이 찔러 땀이 콸콸 흐른다.
6개월의 산책 경험을 통해 최소한 이 3가지는 준비한다.
첫 번째는 '떡뻥(과자)'이다. 방금 전까지 싱글 생글 웃었는데 누군가 때린 것처럼 갑자기 울 때가 있다.
이때 아기의 짜증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떡뻥"이다. 얼굴 모르는 떡뻥 개발자에게 늘 감사하다.
두 번째는 '물'이다. 떡뻥을 먹으면 목이 마르다. 그래서 아기가 떡뻥을 먹고 짜증을 내면 99% 목이 마르다는 신호다. 그걸 모르고 물 대신 떡뻥을 주면 불난데 부채질하는 꼴이라 더 큰 짜증이 이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세 번째는 '아기띠'이다. 아기가 없는 분들은 유모차가 있는데 왜 아기띠가 추가로 필요한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나도 유모차로 산책이 끝나길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아기는 느닷없이 안아달라고 짜증 낸다. 어쩔 수 없이 왼쪽 팔로 아기를 안아주고 오른 팔로 유모차를 미는데 복근운동 플랭크처럼 2분도 유지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필수항목은 아니지만 '비눗방울'을 챙긴다.
산책 중에 여러 번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만난다. 초록불이면 신난 마음으로 가지만 빨간불이면 그때부터 나는 초조하다. "아기가 짜증내면 안되는데...."
역시는 역시나다. 유모차가 멈추자마자 지루한 듯 짜증을 낸다.
이때 비눗방울을 아기 앞에서 후~하고 불어주면 아기는 짜증을 멈추고 신기하듯 쳐다본다. 간혹 기분 좋을 때는 웃어주면 손은 비눗물이 묻고 목이 쉬도록 비눗방울을 불어댄다.
오후 6시, 육아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세 번째 산책을 나가는데 퇴근하는 아내를 만나러 정거장으로 간다.
어느 날은 아내가 셔틀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내려 10m의 거리를 웃으면서 뛰어왔다.
"왜 이렇게 웃으면서 뛰어와?"
숨을 고르며 아내가 말하길 버스기사분이 "저기 남편분이 기다리고 있네. 여기 내려줘야겠네요"라고 말해서 화들짝 놀랬고 남편과 아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 웃었다고 했다.
나와 아기는 어느새 버스기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까지 알고 있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유명인
하루 3번의 산책 중 2번의 산책은 아내와 관련이 깊다.
아침 6시 산책은 아내의 출근길이고, 오후 6시 산책은 아내의 퇴근길이다.
아기는 시간을 느끼는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는지 아침 6시에 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고, 오후 6시에는 밥 먹다가 갑자기 나가자고 짜증 낸다.
추측건대 초인적인 힘은 출퇴근하는 엄마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발휘되는 본능이 아닐까?
복직을 앞둔 아빠로서 가슴이 시려온다.
"아기야, 내 몸은 비록 힘들겠지만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