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소아과 다니세요?

자주 가는 병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

by 암띤아빠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어제까지 사용했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날이 점점 늘고 있다.

고유명사가 기억나지 않아 한 음절 말하면 아내는 노련한 형사처럼 내가 말하려는 의도를 빠르게 파악한다.

단 한 음절을 말했을 뿐인데 어떻게 나의 속마음을 알아챘을까? 혹시 내 속을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한다.

학창 시절에는 점심시간에 축구한 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20대 후반 취업 이후에는 당장 어제 무슨 점심을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출근-퇴근 일상이 반복되니 뇌가 불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머릿속에 남겨놓지 않았다.


그렇게 저장이 안 되는 인생을 살아가던 중

아내를 만나고 아기가 생기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아내를 처음 만난 날

아내와 결혼한 날

아기가 처음 뒤집기한 날

아기가 처음 걸은 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좋은 추억이 있는 반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도 있다.

그건 아기가 아플 때다.



아기는 수족구, 중이염, 땀띠 여러 증세로 자주 아프지만 그중에서 나는 '고열'이 제일 겁난다.

아기가 38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하면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온몸이 축 처지고 분유를 먹으면 곧바로 분수토를 한다.

아기가 처음 고열로 분수토를 했던 순간은 지금도 기억난다.


그날은 장모님 댁으로 가는 날이었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하면서 기분 좋게 일어나지만

그날은 유독 힘이 없었는데 '잠이 덜 깼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카시트에 앉혔다.

자동차로 4시간 이동하여 도착한 후 바다 근처 카페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장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아내는 분유를 먹이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울컥하고 뒤에서 솟구쳤다.

"뭐가 솟구쳤지?" 가까이 가보니 아기의 토였다.

홍당무처럼 빨개진 아기는 눈물을 흘리며 울어댔고 나와 아내는 당황스러워서 고장 난 기계처럼 굳어졌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아기가 아프네..."라고 생각만 할 뿐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무의식에 각인된 "긴급할 땐 119"가 손가락을 지시했다.

"휴대폰을 찾아서 119를 눌러!"

3초 후 건너편 수화기에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들려와 다급하게 말을 했다.

"아기가 지금 38도가 넘고 분수토를 하고 있어요... 지금 운영하는 소아과를 알려주세요"

주말이라 운영하는 소아과가 없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1곳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고 했다.

추가로 오후 5시가 넘어가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 현재 시간은 오후 4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평소보다 운전이 거칠었는지 아기가 다시 한번 울컥 토를 해서 아기, 아내 모두 토사물이 잔뜩 묻은 채로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대기가 없어 바로 진료를 했지만,

아기에 대한 진료기록이 없어서 코로나, 독감 등 기본적인 검사부터 시작했다.

속으로 "한시가 급한데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해야 하나..."

1시간 후 의사 선생님께서는 "코로나, 독감은 아니고 중이염으로 인한 고열이네요"라고 진단하셨고 주사와 약을 처방해 줬다.


그때 깨달았다.

아기의 빠른 진료를 위해선 과거 진료기록이 필요하겠구나.

적어도 살고 있는 동네만이라도 자주 가는 병원이 있어야겠구나!

그래서 자주 가던 병원을 고르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네이버 리뷰점수가 좋은 A병원을 가니 콧물은 잘 빼주시나 도통 약 효과가 없다.

효과가 없어 오랫동안 항생제를 먹으니 설사를 자주 했고 엉덩이가 헐어서 아기가 기저귀 갈 때마다 울어서 속상했다.

B병원은 집 근처에 있지만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인 양 혼내셔서 거부감이 생겼다.

지금 다니고 있는 C병원은 주차장은 협소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고 무엇보다 아기가 잘 낫는다.

그래서 우리는 C병원을 주병원으로 정했다.


주병원을 정했지만 아기가 아프지 않아 병원을 가지 않는 게 모든 부모의 바람일 거다.

하지만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생각은 아픈 낌새가 보이면 병원균의 힘이 약한 초기 때 때려잡는 게 아기가 덜 고생하지 않을까?

거기에 더해 아기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진료해 준다면 더 빨리 낫지 않을까?


그래서 아기 키우는 동네 지인을 만나면 궁금해서 물어본다.

"어디 소아과 다니세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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