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나는 욕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욕 안한지 몇 년을 넘어 10년이 넘었다. 의도적으로 욕 안 하려고 한건 아니지만 INFJ 성격상 다른 사람과 갈등 생기는 걸 너무 싫어해서 그런 자리가 생기면 박차고 자리를 나간다.
그러다 보니 욕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아내가 장난식으로 "오빠, 바보나 멍청이 해봐"라고 하면 말은 할 수 있지만 속에서 두드러기 같은 거부감이 뇌에 전달되어 평소 하지 않던 건 하기 싫다고 나에게 다시 피드백을 한다.
흔히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한다.
운전하다 보면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해서 나도 모르게 본연의 성격이 나온다.
평소 순했던 사람이 갑자기 끼어드는 차로 인해 쌍욕을 한다던지 이런 사례가 흔하다.
당연히 나도 사람으로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나 매너 없는 차를 보면 속에서 욱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욱하는 마음이 입에 전달이 되면 내가 알고 있는 단어 중에 적절한 걸 선택해서 나올 텐데 머릿속에 욕은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어쩔 수 없이 뇌가 선택한 단어는 "와우..."
그저 와우.. 왜 그러지.. 혼잣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를 유니콘을 보듯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내의 생각을 추측컨대 "어떻게 운전을 하면서 저런 상황에서 욕을 안 하고 겨우 와우를 하지..!?"
아내는 연애 때 욕을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지금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성향이다.
하지만 나 때문에 변했다.
부부는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다고 하는데
내가 속 시원하게 욕을 하지 못하니 아내는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느낌으로 나의 울분을 대신 풀어준다.
한 번은 앞에 차가 매너 없게 갑자기 끼어들어 우리는 급정거를 했다.
나는 또다시 "와우!!!!!" 하고 끝났지만 아내는 잠시 조용했다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갑자기 쌍욕으로 10분 동안 래퍼가 되었다.
욕이라는 게 단어 자체만으로 부정적이지만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느낌이다.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자주 말한다. 아내만 있으면 재밌고 든든해서 걱정이 없다고
내가 수줍어서 음식점에서 주문을 못하고 있으면 아내가 대신 주문해 주고 내가 웃기지 못하는 성격 탓에 아내는 나의 개그맨이다.
그래서 넷플렉스를 구독하고 있지만 잘 보지 않는다. 아내만 있어도 재밌으니까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개그맨이자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