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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23. 2020

[01]엄마와 둘이 여행할 때

Private trip & privacy

[에피소드01] 단독 여행, 그리고 프라이버시

여기는 미국, 한여름의 길 위에서 차 안에 엄마와 내가 있다. 우리는 LA로 들어와 동생의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둘만 따로 짧은 자동차 여행을 하는 중이다. 포틀랜드를 지나 시애틀까지 가는 중. 제발 싸우지 말자. 단독 여행의 제1이자 유일한 규칙; 무조건 알았다고 할 것.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콩나물이라도 자란다는데, 내가 시간과 돈과 무려 마음까지 다하는데 어쩐지 이 미국 투어 패키지 효도질은 엄마를 단 일 그람도 충족시키는 것 같지 않았다. 회사를 10년 넘게 다니면서 영업과 고객관리, 의전에 관해서는 빠삭하게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당하는 무심한 듯 세심한 지적질에 이제까지 뭘 알고 있었나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미국에서 자동차 여행을 몇 번 해봤다고 큰소리치며 엄마를 모시고 왔지만, 역시 효도관광은 패키지가 답이다. 막내동생과 두 번 정도 미국 자동차 여행을 할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예약을 가는 도중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도맡아서 했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내가 미쳤다. 엄마랑 이 포맷으로 여행을 하려고 했다니. 조금이라도 덜 생각하려고 준비를 안 하고 온 것이 나의 원죄였다. 조수석에 영어 할 줄 아는 노예 대신 영어 할 줄 모르는 상전을 모시고 가려니 나조차도 처음 가보는 외국의 도로에서 렌터카 운전하랴, 가는 길에 식당 찾아보랴, 숙박 예약하랴 정신이 없는데 옆자리 고객님의 심기까지 살피는, 그동안 지은 모든 불효를 포함해서 속죄하는 나의 피정 투어였다.


어쨌거나 나는 자동차 여행을 좋아한다. 자동차 여행을 둘이서 할 때는 여러 가지 재미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갇힌 공간에 장시간 있어야 하는 상황상 온갖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옆에 나란히 앉아 눈을 일일이 맞출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솔직한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추억은 그 대상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막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엄마와 다니며 알게 되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엄마는 남에게 가려가며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무엇보다 내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에게 누구도 직접적으로 명령하지는 않았다. 물론 부탁을 가장한 오더들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사회화’의 장점이었다. 오랜만에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하라체’를 들으니 인내심이 금방 바닥났다. 사실 이렇게 부글대며 말할 일도 아닌데, 혼자 산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일까, 아침에 입맛 없어 빵만 건성으로 먹는데 사과를 깎아주시며 ‘탄수화물과 과일을 골고루 먹으라’는 말도 귀에 걸리적거렸다. 아, 제발 그만. 알아서 할게요. (맞다. 혼자 산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물론 30년 넘게 가족들을 챙겨주느라 잔소리를 해야만 했던 엄마니까. 나 챙겨주려고 하는 말이니까.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까. 착한 애들은 남이 이런 말 해주는 거 좋아하던데, 정말 나는 쓰레기다. 잔소리는 말귀 알아들을 때부터 듣기 싫었고 단 한 번도 그냥 ‘네, 알았어요’라고 말해본 적이 없긴 하지만, 나는 이제 다 컸으니까, 엄마라는 종족만이 유일하게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데 고민이 없는 종족이다, 생각하며 참아보았다. 


하라체는 시키는 대로 행하면 더 이상 들을 일은 없었다. 다만 LA에서 시애틀까지 삼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운전해서 가는 차 안에서 하루 8시간씩 운전하는 내내 명령어를 듣다 보면 내가 시리(siri)인가 싶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AI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때마다 맞는 대답을 즉각적으로 내놓기가 쉽지 않았고, 시켜놓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엄마 앞에서 허둥대며 뭐든 빨리 잘  해내려는 나에게 번번이 짜증이 났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 되새기며 이 길에도 끝이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내가 화내지 않고 엄마와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죽기 전 성불한 거다 생각하며 허벅지를 꼬집었다. 다만 이런 내 마음이 표정이나 말투에서 전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을 뿐. 그러나 분노와 피로감은 악착같은 내 의지를 비웃듯 귀지처럼 착착 들러붙어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가 끝없이 건네는 말은 못 들은 척하거나 대답을 안 하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딴생각이라는 버팀목도 있었고, 졸음에 겨운 엄마의 고개가 창 쪽으로 넘어가면 잠시 나 혼자 여행 온 듯 평화로운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었다. 자동차 여행의 장점이 대화인 줄 알았는데, 역시 홀로 뮤직 드라이빙이 최고다. 길이 안 끝났으면 좋겠다. 


첫 숙박은 포틀랜드의 어느 예쁜 동네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원래는 창고였을 별장을 개조해서 만든 스튜디오에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 둘이 하룻밤 지내기엔 적당한 크기였다. 저녁을 먹은 뒤, 샤워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어 운전에 지친 어깨와 등을 좀 풀려는 찰나, 휙 하고 화장실 문이 열린다. 뭐야, 한밤중에 길 한복판에서 헤드라이트를 마주 본 사슴처럼 잠시 동작그만. 커튼 너머 시원한 물줄기와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쏴아아아, 콰르르르릉. 내가 맛보려던 따뜻하고 시원한 샤워 쾌감지수는 엄마의 시원하고 뜨거운 작은 볼일로 전환되었다. 샤워는 10분이면 끝나는데. 아… 정말. 


사춘기였어도 엄마에게 내 방 노크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집중해서 뭔가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노크를 하는 1초는 그걸 숨기는 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었고, 해달라고 부탁한다고 해서 해줄 엄마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나와 화장실을 동시에 쓸 사람은 이제 엄마가 아니어야 하는데, 그저 한숨이 나왔다. 남 샤워하는데 왜 맘대로 들어오시냐고 따져봐야 우리 사이에 그게 문제가 되냐며 되려 섭섭타령 듣겠지. 


개운하지 않은 샤워를 대충 끝내고 누워 있는 엄마 옆으로 가서 몸을 뉘어 본다. 침대에 같이 눕는 것도 이제는 불편하지만, 다행히 엄마에겐 불면증이 없다. 잠시 내일의 계획을 얘기하다 어느새 들려오는 가느다란 엄마의 코 고는 소리를 BGM으로 들으며 아까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 분은 도대체 왜 이러나, 이제 화장실 문을 꼭 잠궈야지 하는데 순간, 궁금해졌다.


‘엄마가 프라이버시를 가진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엄마는 엄마의 방을 가진 적이 없었다. 안방은 안방인 거지 엄마 방은 아니니까. 아빠는 출근을 했고 집에 오면 서재가 있었다. 나와 동생도 우리 방이 있었다. 엄마만이 집안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돌보지만, 엄마만의 공간은 없었다. 이 양반, 유리장 안에 사는 새처럼 나머지 식구들에 의해 ‘보여져’ 왔었네. 빤스 갈아입는 것부터 일기를 쓸 곳까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었다 해도 숨길 곳이 없었던 엄마의 프라이버시-free존, 그것이 스윗 마이 홈, 우리 집이었다. 사방이 시선으로 둘러 싸인 그곳에서 사생활이라니. 버지니아 울프가 갖고자 했던 그 방은 9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존재하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방문을 닫을 때 왜 닫느냐고 종종 물었다. 별 이유가 없었는데 친절하게도 엄마는 숨기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고, 엄마한텐 다 얘기해도 된다며 나의 방어태세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다. 나는 이제 나의 프라이버시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에게 나는 아직 타인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사이의 거리감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은 내버려 둔 채. 이후에도 죽, 서른과 마흔과 오십의 자기 자신이 어떤지 바라본 적 없이. 


내가 빼도 박도 못할 만 서른이 되었던 그 해, 나는 나름 센치해졌으므로, 명절에 집에 내려가 “엄마 서른 됐을 때 어땠어?”라고 물었더니 뚱한 표정으로 “애 둘 키우면서 내 나이가 서른인지 마흔인지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었겠어” 라던 엄마의 무심한 대답이 생각났다. 그러니 이제 와서 피와 땀으로 낳았으되 더 이상은 손길이 필요 없어진 다 자란 그것들이, 프라이버시를 달라니.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너는 그동안 어땠냐니. 이 세상에 엄마들보다 배신감과 무용감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남을 위한 효용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낸 삼십 년의 세월. 원래의 이름과 나이 같은 건 바래져 버리기에 충분한 시간. 엄마, 아내, 며느리, 주부는 하루가 빠듯하다. 백수가 과로사하고 전업주부가 하루에 은행 두 군데를 못 가는 법. 엄마는, 야단치는 사람도 없고, 상 주는 사람도 없는데 스코어카드에 네 가지 섹션 모두 만점을 받고 싶은 사람처럼 살았다. 그래야 죽어서 천국이라도 갈 듯이. 이제 와서 본인도 왜 그랬나 후회하지만.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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