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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Feb 21. 2020

호주에서 유기견 입양하기

언젠가 유기동물을 위해 일하는 나를 꿈꾸며

<Prologue>


대순이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7년 전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와 동생 손을 잡고 진창이 된 길을 따라 난생처음으로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갔던 그날. 그냥 막연하게 유기견을 입양하고 싶다는 분명한 의지만 부리다가 드디어 몸을 움직여 실행으로 옮겼던 그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의 대순이를 만났던 그날. 


그런데....  


입양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현재 거주하는 집이 반려견 조건에 맞는지

집 식구들로부터 모든 동의를 얻었는지

반려견의 평생을 책임질 만한 경제생활이 지속되고 있는지

집에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몇 번의 보호소 방문을 진행할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가 예상했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그저 찬찬히 애들을 살펴보다가 느낌이 딱 통한 개를 만나면 소정의 기부금을 보호소장에게 전달한 후,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보호소를 나오면 되는 줄 알았다. 입양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얼굴은 죽상이 되어갔고, 빈 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누가 허락만 해준다면 배 깔고 자빠져서 떼를 쓰고만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채 그날 우리는 일주일 뒤 또 다른 방문 약속을 잡고 그렇게 집으로 왔다. 


다행히도 두 번째 방문에서 우리는 대순이를 차에 태울 수 있었다. 


대순이를 기다리던 그 일주일의 내 세상은 온종일 흔들거렸다. 하고 싶은 일을 당장 못하고 기다려야만 하니 참을성 없는 나에게는 미칠 노릇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 입양이라는 것이 너무 쉬우면 안 될 노릇이라고. 한 번 버려진 아이들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또 버려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이래저래 길게 늘어뜨려놓은 내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이 곳 호주에서의 반려동물 입양은 과연 우리나라보다 까다로울지, 아님 반대로 더욱 수월할지, 절차가 복잡하다면 과연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더 복잡할지 궁금했다. 


해서 직접 찾아가 봤다. 

내가 방문 한 곳은 서호주 말라가 지역에 있는 동물 복지 자선단체인 RSPCA(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 on of Cruelty to Animal)였다. 물론 3주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정상 '진짜'입양은 못하지만 궁금한 것이 생겼으니 케케묵은 기자정신을 억지로 꺼내서라도 RSPCA의 문을 두드려야만 했다. 


<Animal Shelter>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뒤로하고 센터 안으로 들어간 나는 쭈뼛쭈뼛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영어 울렁증이 있는터라 (안 봐도 뻔한것이, 아시아인은 없을 것이고 호주 원주민들만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더욱 더 작아지는 나다.) 발걸음이 주춤한 것 같다. 역시다. 칼 단발을 한 금발의 20대 여자가 나에게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후,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인사를 건네고 그다음에는 개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으~


먼저 RSPCA라는 단체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RSPCA란?'


1824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창립된 RSPCA는 동물에 대한 잔인한 행각을 근절시키고 보호가 필요한 동물들을 케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RSPCA Australia는 그보다 한참 이후인 1981년에 처음 문을 열고 현재까지 호주 전역에 걸쳐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wikipedia)


나는 작년 이곳 서호주에서 처음 반려동물 학업을 시작할 당시, 수 차례 RSPCA에서의 자원봉사를 신청한 바 있다. 사실 그보다 훨씬 전, 이곳에 발을 들인 3년 전부터 활동을 원했었는데, 이방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번번이 시도에 실패했다. 그래서인지 RSPCA는 내 머릿속에 이런 이미지로 박혀있다. 문턱이 무진장 높은 곳




한국에서는 2곳의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하나는 대순이의 입양처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자 시절 취재를 위해 찾아간 인천시에 있는 보호소였다. 대순이 입양처는 안락사가 없는 보호소여서 그런지 작은 아이들은 보호소 안에 풀어놓고 지내게 했다. 큰 몸집의 아이들은 따로 시설을 지어 칸막이로 구역을 나눠 보호하고 있었다. 


인천 보호소의 모습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안락사를 진행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강아지들이 뜬장에 갇혀 낯선 사람들의 손길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중형견은 야외 견사에 머물고 있었고, 대형견 아이들은 수가 많지 않았다. 


이 두 보호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낙후된 시설이었다. 울타리는 거의 대부분 녹슬어 있었고 청결상태도 좋지 못했다. 그도 그렇겠다 싶은 것이, 흔한 보호소의 문제점이겠지만, 주인을 잃은 아이들의 증가 속도와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증가속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탓에 보호소 운영을 위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직면 해 있었다. 


확실한 지원처 없이 온라인 혹은 입양을 진행한 사람들에게서 받은 약간의 지원금으로 근근이 보호소를 유지하고 있던 보호소 두 곳. 애들을 먹이는 것조차 어쩔 땐 버거울 지경이라고 말하는 와중에도 개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던 그때 그 소장님들. 잊지 못한다.


(요기 철문을 두드리는 데까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사진 제공 : 비카일)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견축사다. 겉으로 보면 되게 커 보이는 축사였는데 왜인지 일반인 출입금지 사인이 모두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날 만날 수 있는 녀석들은 불과 2마리뿐이었다. 담 너머로 다른 견사를 둘러봤는데, 모두 비어있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 유기동물이 없다는 것. 정말 기쁜 일이다. 




'견사 비우기 대작전 2020'


지금 RSPCA에서는 활발한 입양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Clear The Shelters 2020.


강아지들 뿐만 아니라 고양이, 기니피그, 말, 토끼, 새 등 주인과 보금자리를 잃은 동물들에게 새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본 행사는 RSPCA뿐만 아니라 유기묘만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CAT HAVEN , 도박에 사용됐던 그레이 하운드를 반려견으로 입양하는 활동을 하는 Greyhounds As Pets 등이 함께 진행한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새 가족 만나게 해주는 것이 무슨 이벤트냐고? 핵심은 이거다. 입양비가 단돈 $29이다. 


보통 입양 신청비는 $100~$500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이 날 만난 개 한 녀석의 입양 신청비도 550불이었다. 과연 이 가격을 두고 우리는 '괜찮네' 혹은 '할만하네, 딱 내가 생각했던 금액이야'라는 반응을 바로 보일 수 있을까? 내 반응은 '와우,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였다. 


50만 원이라니! 내가 대순이를 겨우 9만원에 입양을 받았는데...




<유기동물 입양 절차 및 조건>


"우리는 모든 유기동물들이 그들의 남은 평생을 잘 돌봐줄 수 있는 가족을 찾길 원합니다. 그러기에 이번 이벤트에서 또한 입양에 필요한 절차, 정책, 조건 등은 동등하게 적용됨을 알립니다. (RSPCA)"


1. 현재 거주하고 있는 거주지가 임대일 경우, 집주인에게 동물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RSPCA가 확인해야 함. 

2. 입양 전,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입양동물을 직접 만나러 센터로 와야 함. 

3. 만약 현재 개를 키우고 있다면, 그 개 또한 입양 전에 서로 친숙하게 지내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함 

4. 만약 현재 가축이 있을 경우, 사유재산 코드(PIC)가 요구됨 

5. 유기동물 파양 시, 입양 신청비는 환불 불가. 2주 이내에 동물을 파양 할 수 있음.


6. 입양 신청서 기재 필 내용 : 


개인 인적사항 

거주지 형태(마당이 있는지 없는지, 아파트인지 아닌지 등) 

가족 구성원 중 누가 전적으로 동물을 맡을 것인지 

몇 명의 가족과 함께 사는지

동물 알레르기가 있는 가족구성원이 있는지

집주인의 허락을 받았는지, 또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지

집에 마당이 있다면 확실한 보안 인프라(펜스 등)가 구축돼 있는지

집에 펜스가 설치돼 있을 경우, 가장 낮은 지점의 펜스 길이가 몇 센티인지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지

과거에 어떤 종류의 반려동물을 키웠었는지

반려동물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는지

입양동물을 어디에서 재울 것인지

입양동물이 낮동안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예정인지




'I am an Orange dog'



이곳 RSPCA에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동물들은 소개하고 있었다. 바로 컬러에 따른 라벨링이다. 오렌지 / 그린/ 블루 총 3가지 색을 통해 동물들의 성격과 특성을 입양자들로 하여금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같은 색이어도 개와 고양이에 따라서 내용이 조금씩 상이하다. 


Orange dogs  반려견과 함께 온 종일 운동과 게임을 할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입양자를 만나야 하는 개들. 때로는 상황에 맞는 훈육 및 훈련이 필수적으로 수반 될 수 있음. 아이의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것도 입양자가 꼭 해야 할 일. 


Green dogs  매일 산책은 필수이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사람과 함께 지내는 데에 기본적으로 따르는 훈련과 집안 규율 등을 꼭 가르쳐야 하는 개들. 아이에게 전적으로 시간과 애정을 쏟아부을 각오를 해야 함. 


 Blue dogs  피치 못하게 반려동물에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없는 입양자에게 적합한 개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 바쁜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반려견.


고양이의 경우 독립적으로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Orange cats, 사회성이 뛰어나고 주인과 교감을 잘하는 고양이들은 Green cats,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도 문제없이 지내는 아이들은 Blue cats으로 나눠진다. 



비록 종이 한 장에 채워 넣은 녀석들의 한정적인 모습이지만,
 분명한 것은 처음 보는 이 녀석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부분을
더 필요로 하는지 대한 이해는 확실하게 되는 듯하다. 
주인을 잃은 아픔이 있는 녀석들에게 두 번 다시 같은 경험을 안겨주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이곳은 개와 고양이만을 '마땅히 대우 받아야 할 반려동물'로 제한하지 않는다. 기니피그, 토끼, 새 등 작은 생명들에게도 개와 고양이 것과 같은 농도의 존중과 사랑을 준다. 그래서 그들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고, 그들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


센터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고양이들의 공간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가동되고 있었고, 견사 또한 녀석들이 하루를 심심하고 지루하게 보내지 않도록 두 세가지의 장난감들과 간식을 때에 맞춰 챙겨주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동물을 직접 만지고 안아볼 수 있는 놀이공간을 따로 설계했는데, 동물들과 의 직접적인 교감이 가능하고 그로 하여금 생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어 더욱 친숙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 다른 시설에 비해 경제운용이나 시설운용이 훨씬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RSPCA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실행을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는 듯 했다. 동물들을 입양할때 거쳐야하는 과정과 원리원칙은 엄격했으며, 자격이 미달일 경우에는 철저하게 동물을 입양시키지 않는다. 동물들의 상처를 곪지 않게 해주려는 노력이다. 




언젠가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꼭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언젠가의 나의 모습은 쭈뼛쭈뼛 걸음을 옮기는 내가 아니라, 새 가족을 찾아 행복하게 길을 떠나는 동물들에게 당당히 안녕을 외치고 있는 나이기를 꿈꿔본다.




정보제공 : https://www.rspca.org.au/adopt-pet

사진제공 : 비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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