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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Mar 31. 2022

나의 손을 잡고 자던 당신, 나의 엄마

   나의 우주, 당신에게


당신은 매일 밤 작은 나의 손을 잡고 잠에 들고는 하셨지요. 하얗고 차가웠던 당신의 손의 감촉은 아직도 생생히 제 손 끝에 그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당신의 피가 흐르는 저도 당신처럼 희고 추운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렇듯 낙천적이고 예민한 성격 이외에도 창백하고 차가운 손과 발까지 닮아 있네요. 어렸을 적 친구들은 더운 여름에 항상 제 손을 덥석 잡으며 뜨겁게 달아오른 그들의 피부를 식히곤 했습니다.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늦은 밤, 제 손을 맞잡으며 당신은 말하셨지요. '엄마는 이렇게 손을 잡아야 잠이 오더라.'

당신에게 손이 잡힌 채로 저는 눈을 살며시 감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력이 좋지 못해 안경이 없이는 가까운 사물조차 분간을 하지 못하던 당신의 얼굴은 안경을 벗은 그 모습이 저에게는 참으로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길지 않은 당신의 속눈썹 그러나 검은 숱이 많아 감은 두 눈이 예쁘게 빛나던 당신의 얼굴 앞에서 저 또한 그렇게 당신과 꼭 같은 표정을 하고는 평온한 단 잠에 빠져들었지요.


하지만 제가 잠에 빠지는 것은 항상 당신의 날숨 소리가 당신이 깊은 잠들었을 때 나는 숨소리와 같아진 후였어요. 잠에 빠진 당신의 표정은 항상 좋아 보였기에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에야 저 또한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던 것이죠.


사실 가끔은 당신의 숨들이 피곤에 지친 탓인지 거칠게 쉬어지곤 했어요. 그 시기에 저는 아마 5살이었던 것 같아요. 5살의 저는 이따금씩 꿈속에서 당신이 죽는 장면들이 나와 자는 것이 도통 반갑지 않던, 나름대로 힘들었던 밤을 보내던 때였죠. 그렇게 그날 밤도 어김없이 내 손을 꼭 쥐고서는 바쁜 숨을 쉬는 당신을 두고 저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눈을 감으면 또다시 당신이 나에게서 죽어버릴까 무서웠고, 그 꿈에서 깨어난 내가 흘릴 눈물이 너무나도 방정맞아 곤히 자고 있는 당신을 깨울까 걱정이 되었던 거죠.


전 바쁜 숨을 쉬며 자는 당신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잠을 자는 새벽 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남편이 없이 홀로 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전 슬픈 꿈에서 깨어나 터져버린 나의 눈물 들로 당신의 소중한 잠을 망쳐버릴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이기적인 딸은 아니었지요. 해서 저는 이따금씩 그런 날이 찾아 올때면 차라리 눈을 감지 않고, 오히려 더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당신에게 꼭 붙어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귀 기울이고는 했답니다. 그러고 있노라면 어느새 아침에 밝아오고는 했어요. 물론 당신이 죽는 꿈을 꾸지 않고요. 그렇게 잠에서 깨 눈을 뜨면 나의 엄마인 당신은 분주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죠. 어린 마음에, 이 5살 난 어린 딸은 소심하게 이렇게 말하고는 해 당신의 마음을 찢어 발겨놓았답니다.


'엄마, 일 안 가면 안 돼? 나 심심해'


또 어떤 날, 그날은 아마 당신의 휴무날 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잠에 빠져 깨지 않는 당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이렇게 징징대고는 했어요.


'엄마 그만 자. 나 심심해.'


그 시기에 제가 유치원에 다녔다는 것은 아직도 그 장면들이 생생히 기억이 나는 통에 알고는 있지만, 왜 제 기억의 한 켠에는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던 제가 하릴없이 벽에 붙어 있는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을까요. 지금 제 생각에 그때 저는 정말 하루 꼬박을 당신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유년시절의 기억이 뒤죽박죽 하나의 프레임 속 장면이 되어 엉켜버린 것 같습니다. 물론 어른이었던 당신의 기억을 뒤지면 단서가 나오겠지요. 여하튼 저는 항상 당신을 기다렸답니다.


혼자서 당신을 기다리다가, 어딘가 아픈 것처럼 느껴져도 저는 일을 마치고 딸내미를 볼 생각에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당신에게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곤 했답니다. 왜냐면 제가 아프다고 해버리면 당신이 걱정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당신의 단 잠 까지 방해를 받고 말 테니까요. 말했듯 당신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정말로 잠든 후 뿐이었어요. 그러기에 딸인 제가 엄마인 당신에게 아프다고 말해버리면 제 생각에는 아마 당신은 꿈 속에서까지 저를 간호해야하는 탓에 쉬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 침대에서 더 이상 잠을 자지 않게 되었어요. 그동안 저는 조금씩 커가는 중이었고, 태어난 동생과 한 방에서 지냈지요. 그리고 당신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가 생겼구요. 그렇게 잘 시간이 되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기에 저는 제가 없는 그동안에 당신이 어떤 몸의 모양과 표정을 하고 잠을 청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물론 짐작은 할 수 있지만요.


그렇게 다른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꾸며 매일 밤을 지내던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니, 대략적으로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렇듯 근방의 기억보다 어릴 때의 오랜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날 당신은 당연스럽게 제 손을 잡고 바로 잠에 빠지셨지요. 5살, 그때처럼요. 여전히 희고 차가웠던 당신의 손은 전보다 조금 더 말라 있었고, 주름이 져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시아버지를 모시고 산 당신의 삶이 고달팠기에, 매일 새벽 신문배달, 우유배달, 주스 배달 거기에 전단지 부업까지 해내던 당신의 손이 고울 리 가요. 여자의 삶은 그 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던 당신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비록 이제는 당신의 심장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저는 매일 밤 당신을 생각하며 남편의 손을, 때로는 제 옆에서 그르렁 소리를 내며 잠이 드는 고양이의 손을 잡고 잠을 청합니다. 신기하게도 이 고양이는 제가 손을 잡고 놔주지 않는데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오히려 평온하게 잠에 빠지고는 합니다. 저는 이 작은 고양이에게 예전의 작고 어렸던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의 저도 지금 이 잠에 빠져 있는 고양이처럼 평온했지요.


5살의 저에게 당신은 제 우주였고 천국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이렇게 결혼을 할 정도로 커버린 지금도 한 치의 다름없이 똑같답니다. 늘 당신의 딸을 삶의 이유라고 말하며 웃어주던 당신은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이 글을 빌어 저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방금 통화를 마쳤고 언제든지 사랑한다고 목소리를 내어 말할 수 있지만 저는 언젠가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딸의 진솔한 고백 끝에  걸쳐진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이 글에 묘사된 우리 둘만 살던, 이따금씩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될 것이고, 이내 당신의 딸이 이렇게나 많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탓에 당신의 눈가에는 이내 눈물이 맺히겠지요. 그 눈물 방울은 당신의 아래 눈꺼풀을 잡고 버티기에는 너무나 무거워져 결국에는 흘러버리고 말겠지만 당신의 마음은 행복에 겨워 부풀어 오르겠지요.


어릴 때 저는 당신이 너무도 지쳐 보일 때 이따금씩 편지지 한 장에 저의 마음을 꾹꾹 담아 편지를 쓰고는 했습니다. 당신도 기억 하시겠지요. 생각해보니 그렇게 손으로 마음을 전하던 때가 너무나 오래되었네요. 오늘 정말 오랜만에 당신을 위한 편지를 써봅니다. 물론 이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편지지에 쓰지만, 오늘의 편지는 그때 딸인 제 마음보다 더 여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것임을 부디 알아 주시길 바랍니다.



5살 난 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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