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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Apr 10. 2022

인도네시아 식당에 인도네시아 어린이가 왔다

우리 식당은 인도네시아 식당이다. 나시고랭, 미고랭 등의 인도네시아 음식을 팔고 있다. 그리고 방금, 개업 이래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어린이가 식당을 찾아주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인도네시아 어른들은 만날 수 있었다. 만삭인 몸을 이끌고 찾아준 부부, 어찌나 재미있게 얘기를 하는지 시종일관 깔깔대며 즐거운 식사를 하던 인도네시아 회사 동료들, 큰 눈을 가진 남매와 친절했던 엄마 서양인 남편으로 이뤄진 가족, 태생은 인도네시아지만 미국에서 성장을 한 군인부부 등등. 이 중에는 너무 감사하게도 재방문을 해주는 손님들도 여럿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는 처음이었다. 싱가포르 근처 인도네시아 섬에서 왔다는 이 어린이는 아빠와 친구 2명을 끌고 오늘 오후 4시 즈음 우리 가게를 방문했다. 총 4명이다.


나는 자리를 잡은 그들에게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겠다는 말을 건네며 메뉴판과 물을 가져다 주었다. 어떤 메뉴를 먹을지 잠시 상의하던 세 명의 어린이와 한 명의 어른은 이내 결정을 했는지 각자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어른이 아닌 셋 중 한 어린이가 수줍은 미소를 띈 채 카운터로 다가왔다. 주문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미고랭 2개랑요, 나시고랭 1개, 아빠, 바까르(인도네시아 현지사람들은 '바까르'라고 발음한다. 메뉴에는 '바카르'라고 표기되어 있다. 난 여기서 단지 이 어린이가 인도네시아 음식에 익숙하구나 생각했다)먹을거지? 네, 바까르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음료는 망고 주스 3개랑, 떼 보똘(역시 메뉴에는 테 보톨이라고 표기 되어있다) 1개요."


어린이는 또박또박, 천천히,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막힘없이 메뉴를 주문했다. 나는 무척이나 당당하고 깔끔한 어린이의 주문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처음에는 어린이 3명 모두 한국 어린이인 줄 알았는데, 받아 든 카드에 써 있는 이름이 낯설었기에 난 이들 중에 외국인이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난 이름을 보고 나서도 나의 심증을 확신할 수 없었는데, 외국인이라기엔 일행 모두의 한국어 실력이 너무나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주문한 음료와 반찬 이것저것을 테이블에 놓으며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것이냐고 살짝 물어봤다. 주문을 한 어린이가 그렇다고 답했다. 어린이가 어떤 지역이라고 말을 해주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아빠가 싱가포르 근처 섬이라고 덧붙여 말해주었다. 여전히 어디인지는 몰랐으나, 싱가포르는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나는 '아~'하고 대답을 했다.


떼 보똘


망고주스 3개는 한국 어린이 2명과 아빠가 주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멋있는 인도네시아 어린이는 떼 보똘을 주문는데, 여기서 '떼 보똘'이란 자스민 티 음료로서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식사를 할 때 꼭 곁들이는 음료다. 보통 어른들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의연하게 얼음이 담긴 컵에 음료를 따르는 이 어린이. 진짜루 멋지다. 나는 자스민 티를 즐기는 어린이가 우리 가게 음식을 만족스러워 할 지 궁금했다. 왠지 긴장이 되는건 오바일까.


음식을 내다. 나는 음식에 대한 이것저것 설명 해준 뒤 테이블을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이 어린이는 내가 테이블을 떠나자마자 친구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먹는 것이라며 찬찬히 일러주었다. '라임 주스 먼저 뿌리고 위에 올려진 요고는 부셔서 먹어'


바쁘게 수저를 입에 넣었다 빼는 아이들. 다행이 입맛에 맞는 듯 보여 안심 스러웠다. 어린이들은 마음도 솔직하고 입맛도 솔직한 편이다. 나는 테이블 위 물병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새로 내어 아이들에게 슬쩍 건네며 물었다. 나와 주로 대화를 하는 쪽은 인도네시아 어린이였다.


'몇 학년 이세요?' 손님에게는 항상 극존칭을 쓴다.

'4학년 이요'

'와, 근데 어떻게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세요? 언제 한국에 왔어요?'

'7살이요.'

'근데 이렇게 한국말을 잘해요? 어디서 배웠어요?'

'학교 에서요. 전에는 한국말 아예 못했어요'

'짱이다!!!!'


인생의 숙제가 영어인 나는 이 어린이가 참 부럽고 멋져 보였다. 아마 나의 태도에서 다 티가 났을 것이다. 구태여 숨기지도 않았으니.


'그럼 이렇게 세 분은 베프예요?'

'베프'를 대체 할 수 있는 요즘 말을 몰라서 어린이들이 이 단어를 알아 들으려나 순간 걱정이 됐다. 다행이다. 알아들은 모양이다.

'음..네. 지금은?' 이번에는 한국 어린이 중 한 명이 답했다.


피식 피식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지금은? 왜 전에는 아니었어요?'

'전에는 다른 반이라..' 인도네시아 어린이가 답했다.


아, 개학한지가 얼마 안되었구나, 생각하며 너무도 귀엽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그들의 답변에 크게 놀란 나는 찰나의 순간에 인간관계의 현실성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요즘 어린이들은 이다지도 현실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에 충실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또 한번  나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현재의 인간관계에 충실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반성은 물론 진즉에 했다.


유일하게 안경을 쓰고 있던 한국 어린이가 주스가 모두 비워진 잔에 담긴 얼음만 입 안에서 굴리고 있길래, 물이 더 필요한지 물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어린이는 친구 한 명 에게 '너 물 더 먹을래?'라고 물었고 질문을 받은 친구는 '아니, 나는 됐어' 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 리더 친구는 안경 쓴 친구에게 '너는?'이라고 짧게 물었고 안경을 쓴 이 친구는 '나는 얼음 있어서 괜찮아'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장 친구가 나에게 최종적으로 결과를 보고했다. '괜찮을 것 같아요.'


 애초에 얼음만 먹고 있길래 물었던건데 만족하고 있었구나.


이때쯤 나의 마음은 이미 녹아 찰박거리는 상태가 된 후였다. 이렇게 기특하고 의연하고 귀여운 세 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식당을 찾은 아빠도 되게 멋져 보였다. 별 잔소리도, 말도 없이 아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웃음으로 반응해주던 인도네시아 아버지. 잔잔하고 조용한 그의 웃음, 하지만 가끔씩은 아이들에게 해맑음 웃음소리를 들려주어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어른의 아버지.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빈소리를 하지 않던 어린이의 아버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 그거 아무 날에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그럭저럭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 그 끝 마무리를 이렇게도 귀엽고 멋진 손님들이 꾸며 주어서 감사하다.


'생각보다 양이 많네' 라는 단말마를 뱉으며 접시를 비운 세 명의 친구들. 아빠는 이미 식사를 마친지 오래다. 아이들은 끝까지 잔에 있던 얼음과 접시에 담긴 음식을 모두 비우더니 머지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튼튼한 목소리로 '잘 먹었습니다' 를 외치면서. 너무 친근하게 말하길래 나는 아빠에게 하는 인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에게 한 소리였다.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이에 감사하다는, 좋은 하루 보내라는 나의 인사에 잘 먹었다며 또 한번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어린이 손님들. 처음 문을 열고 가게를 들어왔을 때는 조금은 쑥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비췄는데 지금은 그저 배가 부른 나른한 표정만이 남아있다.


몇 분이시냐는 나의 말에 '네 분이요' 라고 말하던 그 인도네시아 어린이. 진주가 떼구르르 굴려가듯 유연한 한국어로 주문을 하던 그 어린이를 나는 나중에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덕분에 오늘의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버렸다. 이름이라도 물을 걸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너무 들이대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대장 어린이는 가게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입구에 걸려있는 운영시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아빠랑 뭐라고 얘기를 하던데 그 내용은 물론 알 수 없다. 여튼 난 이 손님들이 꼭 다시 와주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어린이가 주문했던 '떼 보톨'을 '써비스'로 줄 생각이다. 250ml짜리 음료로 다시 만나 반갑다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원대한 계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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