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3살의 신입입니다 3

같이 일하던 사람들

by 릴라

사실 이 글을 몇 번이나 새로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쓴 글에는 저를 괴롭혔던 사람들, 무시했던 사람들, 반말과 하대를 반복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 망가진 제 자존감에 대해 토해내듯 글을 썼었죠. 하지만 다음날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글, 내가 왜 꿈을 포기해야 했는지 핑계를 대는 글 밖에 되지 않는 거 같아 지우고 또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혹시나 읽다가 또다시 저의 감정이 격해진 거 같다 하면 아직 저의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아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잠깐이지만 이때 시절이 저에겐 꽤나 강렬했던 시간이어서 글이 이렇게 밖에 나오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써보자면,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쓸데없는 일들을 하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한다면 나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죠.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끔찍하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되어버리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여기서 일하면서 처음엔 다 좋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친절한 얼굴들로 친절하게 저를 대해줬죠. 거의 이모뻘인 저에게 잘해주는 거 같아서 취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진짜 본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몇몇 선배 사람들은 아주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저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죠.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저를 하대하며 화를 내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선배라고는 하지만 겨우 몇 개월 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는 건가? 저는 저보다 10살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사람들의 눈치를 매일 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직접 당해보시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알게 되실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저보다 한참 어린 20대 디자이너들이 저에게 이름만 부르며 야야, 반말을 할 때였는데, 그때마다 사람에 대한 환멸감이 들곤 했습니다. 아무리 나보다 경력이 오래됐고, 직급을 달았다지만, 참. 이게 맞는 건가?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는 곳에서 내가 계속 일해야 하나? 청담동에서 일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위치길래...... 저 자리에 가면 저렇게 예의가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샵만 이런 걸까, 다른 곳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의 굴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여기저기 물어보니 우리 샵이 그나마 대우도 좋고 환경도 좋은 거라고 해서 절망적인 기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메이크업을 계속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일원이 되는 거 자체가 끔찍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겨우 그런 거 가지고 꿈을 포기한 거야? 싶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곳의 부조리를 몇 개만 더 쓰자면, 내일 출근 시간은 오늘 퇴근 시간 전쯤에나 선배가 짜준 후에 알 수 있었고, 월차, 휴가도 위에서 정해준 날에만 쓸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도 30분 이내로 먹고 와야 했으며, 그것도 선배가 가라고 해야지만 갈 수 있었습니다. 근무 시간 내내 한 번도 앉을 수 없어서 10시간 넘게 서있던 적도 있습니다.


그냥 이 정도면 괴롭히려고 취직시켜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저를 특별히 더 괴롭힌 건 아닙니다만, 모두를 똑같이 괴롭힌다는 게 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꿈을 이루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꼭 이곳에서만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너무 힘들면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힘들게 들어갔다고,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이라고 해서 모든 힘겨움을 참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저는 30살 중반에 겨우 들어간 곳이라 포기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도 많고, 다른 곳도 많습니다. 그곳을 그만둔다고 해서 나약하다는 것도 아니고,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지면 나중에 회복하는 데 더 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겨우 그곳을 몇 개월 다녔지만 아직도 회복하지 못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는 다르고 쟤가 해냈다고 해서 나도 해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저런 어린애들도 참고 다니는데, 30대 중반인 내가 이걸 못 참는다고?라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이 많이 들었습니다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자책하는 습관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어 기제로, 메이크업 자체가 싫어졌고, 나는 사실 메이크업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갔습니다. 사실 메이크업이 싫은게 아니라 그곳에 적응을 실패한 제 자신이 싫어진 거 였는데도 말이죠. 사람을 이렇게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매일 우울한 생각에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소화가 되지 않아 밥은 커녕 간단한 빵 같은 것도 넘어가지 않아 카페에 가서 커피만 마시곤 했습니다. 빈속에 커피만 마시니 위가 더 안 좋아졌고, 더 소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 반복되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 휴일 전날에는 과식과 술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기분은 더 안좋아지고 이대로 가다간 나라는 존재 자체가 무너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꿈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위험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무너진 나는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어떤 글을 봤는데 그만 두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구요. 지금까지 내가 견뎌낸 것들이 아까워서 앞으로의 나를 더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남은 거라도 지킬 것인가. 빠른 판단이 필요했고, 30넘어서 깨우친거라곤 '내'가 중요하다는 것이여서 그 주에 바로 그만 둔다고 말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퇴사처리가 되었고, 조금 더 다닌 뒤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퇴사의 과정에서 깨달은 점들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