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1883년 조선 최초로 개항한 재물포항에 이어가장 선교사가 들어 온 지역 중에 하나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만들어낸 근대문화가 넘치도록 들어왔던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면서도 조화롭게 이뤄진 도시이다. 그래서 인지 현제까지도 마을 주민들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자연스럽게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빈픽쳐스’ 빈PD는 이번 강화도 취재를 가면서 제일 처음 방문한 곳이 성공회 강화성당 이다. 강화성당은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을 세우게 됐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이다.
강화성당은 전통적인 조선 한옥 구조물에 서양의 기독교식 건축양식을 수용해 지은 것으로,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 구조다.
한국에 서양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양식을 많이 가미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렷하게 상징한다.
250명의 신자를 수용 할 수 있으며 성공회 강화성당은 성공회유지재단에서 소유 및 관리하며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4호로 지정 됐다.
성당 터를 배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고 한다.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과 내삼문, 동종을 배치했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으며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했다.
출입문과 본당 사이의 전각에 종이 걸려있다. 이 종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있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전쟁물자 공출을 위해 정문 계단 난간과 종을 뜯어 갔다.
이후 교류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일본 성공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은 과거를 참회하고 화해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2010년 11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정문 계단 난간을 복원했다. 이때가 한일 강재병합 100년을 맞이했던 날이며 축성 110주년 기념일에 복원한 것이다.
성당에 입장 하면 성당 좌우편에 보리수나무와 훼화나무가 한그루씩 있다. 불교와 유교를 상징하는 나무들 이라고 한다. 훼화나무는 2012년 태풍 볼리벤에 쓰러져 성당 건물의 보존과 안전을 위해 굵은가지들을 잘라냈다고 한다. 잘려진 홰화나무는 손 십자가로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역경 속에 있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고 천주교를 지켰던 사제들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이 시대의 평화를 바란다. - 글쓴이 '빈픽쳐스' <박원빈PD wb@beenpictures.com/제휴문의 contact@beenpictur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