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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픽쳐스 Sep 28. 2018

이태원 이슬람사원에서 신의 평화가 시작된다

ادْعُ إِلَىٰ سَبِيلِ رَبِّكَ بِالْحِكْمَةِ وَالْمَوْعِظَةِ الْحَسَنَةِ

Invite to the way of your Lord with wisdom and good instruction

지혜로움과 좋은 말로 너희 주님의 길로 인도하라

-성 꾸란 16:125-


이태원 우사단길을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 있다. 사찰이나 교회, 성당은 우리 주변에 상당히 많지만 이슬람사원은 매우 생소하다. 그만큼 불교나 기독교가 우리에게 잘알려져 있고 친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이슬람은 기독교 보다 훨씬더 일찍 들어 왔다. 이슬람 사람들과의 접촉과 무역은 9세기 전후 통일신라시대부터 라고 하는데 처용이 아랍인 이라는 학설도 있고 경주 괘릉에서는 서역인의 얼굴상도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교류가 더 잦아졌고,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면서 이슬람 문명과 접촉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원나라가 멸망하고 조선에서는 유교가 발전하며 이슬람교는 다시 쇠퇴했다. 현대 한국 무슬림의 단초는 6·25 때 참전한 터키군에 의해 형성됐다. 그들은 한국을 형제국가로 생각했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을 인도적으로 지원했다. 이때 무슬림 개종자들 중심으로 1955년 이슬람협회가 결성됐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무슬림 교도가 생겨난 것은 1970년대 중동건설 근로자들이 귀국하면서였다. 1975년 석유 위기 이후 중동과의 관계 개선을 하는 과정에서 아랍권 고위인사들이 한국의 이슬람 발전에 관심을 표명했고, 한국 정부도 친아랍정책으로 이슬람의 발전을 지원했다.

이런 정책적 흐름에서 생겨난 것이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이다. 1975년 당시 박정희 정부는 6·25때 터키군이 기도하던 장소였던 한남동 부지를 무슬림들에게 기증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이슬람사원이다. 최근 이슬람 국가의 이주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이곳을 찾는 무슬림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는 모두 9개의 이슬람 사원과 60여 개의 임시 예배소가 있다. 무슬림은 하루에 5번 예배를 드리는데 일출, 정오, 오후, 일몰, 심야에 한다. 이슬람교 신자가 아니면 예배당에는 입장 할 수가 없다. 

이슬람사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의 1층에는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사무실과 회의실이, 2층에는 남자 예배실이, 3층에는 여자 예배실이 자리해 있다. 부속 건물인 이슬람센터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개발은행의 지원을 받아 1991년 3층으로 증축됐다. 입장시에는 반바지나 짧은 치마 민소매 옷을 입고는 입장을 할 수가 없어서 이슬람 사원에서 준비한 옷을 입어야 한다. 대지면적은 4871㎡ 규모에 높이는 19.9m다.

성원 옆 이슬람문화연구소에선 각종 이슬람 관련 서적과 동영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아랍어 연수원에선 아랍어 강좌와 각종 문화 강좌를 무료로 들으며 이슬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태원역에서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이슬람 성원까지 300m 남짓 거리에 40여개의 무슬림 상가가 밀집해 이슬람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터키,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성원이 들어선 뒤에도 한동안 유흥가였다고 한다. 이 일대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바뀐 건 1993년 대한민국 정부가 산업연수생 제도를 도입한뒤 신앙심 깊은 무슬림들이 성원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케밥, 라마준, 사르마 등 이슬람 음식을 파는 이슬람 식당뿐 아니라 히잡, 토브 등 이슬람 전통 의류를 파는 옷가게와 이슬람 도서관이 있다. 식당마다 ‘할랄(Halal)' 인증을 받은 음식을 판다는 안내 표시도 붙어 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السلام عليكم) “신의 평화가 당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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