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는 역시 갈고 닦는 것
퇴사 후 환송회 술자리에서 갑자기 건배사 제의가 들어왔다. 위기에 빠진 나는 호기롭게 "퇴사, 2행시 하겠습니다!"를 외쳤다.
(퇴!!) 퇴사했지만!
(사!!) 사랑합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자주 당황스러운 상황을 모면했다. 그 순간에 어떻게 이행시를 짓는 게 떠올랐느냐고 묻지만 나는 위기의 상황에 언제나 N행시로 피할 궁리를 한다.
건배사의 위협을 느껴본 신입사원이라면 술자리 전 한번쯤 건배사를 검색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건배사의 기본은 줄임말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청바지) 박수를 보냅니다. 검나 수고한 당신께(박보검) 등 모두 우리가 아는 단어로 N행시를 지어놓은 것이다. 생각보다 구려서 실전에 써먹기는 곤란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그런 구린 레퍼런스를 떠나 나만의 개성을 담아서 N행시를 잘 짓는 꿀팁을 소개한다. N행시 잘 짓는 법을 알아두어서 어디 쓸 데가 있겠느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같은 인생의 많은 위기(ex: 갑작스러운 건배사, 한마디 해보세요!)를 N행시로 극복할 수 있다. 삼행시는 쿵쿵따에 버금 가는 국민 말 놀이이기 때문에 자리 불문 연령 불문 어디서나 통한다. 임기응변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 이름, 상황마다 써먹을 레퍼토리를 만들면 금방 최고의 센스쟁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N행시 시작은 무조건 마지막 단어부터 생각하기
삼행시 시작! 을 외치면 다들 가장 첫 음절이 무엇인지, 어떤 단어로 시작할지 고민한다. 삼행시에서 관건은 처음도, 중간도 아닌 마지막 음절이다. 앞에 무슨 얘기를 했던 마지막 음절만 센스 있으면 삼행시 전체가 그럴 듯 해보이기 때문이다. 삼행시 마지막 음절을 어떻게 할지 정했다면 그 앞에는 구구절절 길어도, 말도 안되게 짧아도 상관 없다. 퇴사 이행시를 생각할 때도 '사'니까 사랑합니다! 라고 끝내야겠다고 먼저 생각하고, 앞에 퇴사했지만을 붙였다.
2. 주제 찾기
무엇 때문에 삼행시를 하고 있나?
지금 내가 삼행시를 하고 있는 상황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건배사를 외치는 자리라면 팀워크를 북돋거나, 서로를 응원하는 내용이 주된 주제가 될 것이다. 나는 심지어 첫 회사 자기소개도 내 이름 삼행시로 준비해갔다. 첫 회사이지만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야 했다.
(손) 으로 하는 건 무엇이든 잘합니다!
(유) 심히 살피고 열심히 배우면서 (이게 맞는지 잘 기억 안남)
(빈) 그릇이지만 여기에서 가득 채워나가겠습니다.
주제가 있다면, 단어를 조합하는 일은 쉽다. 네이버에 'ㅇ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검색하면 손쉽게 해당 음절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검색해보다 보면 모르던 단어도 알게 되어 어휘력이 늘기도 한다.
3. 주제가 없다면 주접을 떨자
N행시의 기본은 주접 떨기, 과도한 칭찬이다. 가장 보편적인 N행시가 바로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으면서 욕과 비난을 섞으면 누가 좋아할까.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달라고 할 때는 극한으로 오버해서 좋은 의미를 담는 것이 좋다. 다음에 소개할 기복 주기처럼 재미는 크지 않더라도 삼행시 자체로 분위기가 싸해지는 걸 막는 데는 주접 떨기만 한 게 없다.
대표적인 이름으로 칭찬 삼행시다. 김세정은 다른 예능에 출연해서도 삼행시를 장기로 선보인다. 대부분 긍정적이로 함께 해볼까요? 유도하거나, ~한다면 좋겠다~라는 구도로 삼행시를 짓는다. 결과적으로 듣기 좋은 말로 삼행시를 꾸려나가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4. 질문과 답변으로 기복 주기
1에서 마지막 음절에 대한 내용을 생각해냈다면 이번엔 앞에 남은 음절에 질문을 넣어 조금 더 재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그냥 냅다 육하원칙 질문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삼행시 주인공이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의 답변을 추가하는 식이다.
(이) 세상에서 디자인을 누가 제일 잘할까?
(자), 정답은 로봇도 아니고 AI도 아닌 바로...
(인) 간 이자인 (내 친구이자 블로그 이웃)
5. 뻔뻔하게 틀린 단어 쓰기
지어내기 까다로운 음절은 비슷한 음절로 바꾸어서 표현하는 것도 N행시의 또다른 재미다. 결국 N행시의 포인트는 남들이 모르는 현학적인 단어로 유려하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하다보면 느는 N행시! 뻔뻔하게 친구들에게 이름으로 삼행시를 해주고, 건배사로 재밌는 N행시를 하면서 분위기를 북돋는 재미를 많은 사람들이 느껴보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UVhMN4ZUkA
(잊을만하면 보는 무도 N행시 시리즈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