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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내가 참 아끼는 언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다른 회사 동기들과 축무를 하기로 했었는데, 한 친구가 친척 결혼식이랑 겹치는 바람에 오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그래도 언니의 결혼식인데 의미 있게 축하해주고 싶어서 축사를 하기로 했다.
각 잡고 한 자리에서 술술 써내기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약속을 기다리면서, 자기 전처럼 일상에서 문득 언니가 생각날 때 썼다. 언니가 했던 말과 언니가 좋아하는 물건을 생각하면서 썼다. 3주 전 쯤 보편적인 버전, 독특한 버전 두 가지를 써서 언니에게 사전에 컨펌을 받았고, 직접 녹음을 해보면서 연습했다.
그렇게 축사를 잘 마쳤고, 언니의 따수운 후기! 언니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너무 좋아해주셔서 행복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구와 나, 하객 모두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축사를 쓰는 방법을 정리해보았다. 축사 전문은 최하단에 -
좋은 축사의 조건?
축사는 결혼 당사자를 축하한다는 아주 분명한 목적을 갖고 쓰는 글이다. 그래서 결혼 당사자와 겪었던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하객들은 투명한 존재가 될 때가 있다. 결혼식 주인공이 만족하는 축사도 물론 좋지만, 그건 결혼식 자리가 아니라 사석에서도 편지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결혼식은 말 그대로 식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려고 모인 사람들까지 고려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튀는 건 곤란하기 때문에 결혼 당사자와 적당한 선을 논의해야 한다)
무조건 짧게!
하객까지 만족시키는 축사는 어떤 걸까? 우리가 하객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축하해주는 마음은 물론 크지만 신랑 신부 입장 이후에는 결혼식 주인공만의 리그가 되어 언제나 빨리 밥 먹으러 가고 싶다. 하객이 듣기 좋은 축사는 물리적인 시간과 체감 시간 모두 짧은 것이 좋다.
나는 2분 30초 내외로 준비했다. A4 용지 절반 정도로 800자 내외로 썼다. 내용만 짧은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말하듯이 들리도록 문장도 짧게 썼다. 길고 현학적인 내용보다 굵직한 한 마디가 더 듣는 사람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장은 특히나 짧게 썼다.
짧은 글에 진심을 담는 법
(1) 나와 주인공의 관계 설명은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축사자로 소개 받을 때 이미 전달 받은 내용이기 때문에 인사말만 간단하게 쓰는 게 좋다.
(2) 부부 중 한 사람의 이야기만 하지 않기
나는 언니와 친했고, 언니의 남편과는 서로의 존재만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랑 측 하객도 모인 자리에서 언니에 대한 이야기만 쓸 수 없어, 언니가 평소 예비 남편이자 남자친구에 대해 했던 말을 인용해서 썼다. 둘 모두와 잘 아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내용을 추가해서 결혼식 주인공과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내용을 넣어주는 것도 좋겠다.
(3)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내용은 충분하게
결혼 생활을 해본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타인의 결혼생활에 대단한 조언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두 사람이 앞으로 아주 잘 살 것이라는 데 무한한 확신을 갖고 있다'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을 인용한 버전도 있었고, 두 사람의 이름으로 육행시를 지은 버전으로 결혼 생활을 축복하는 내용을 썼다.
(4) 미리 신랑신부에게 컨펌 & 충분한 읽기 연습
아주 중요한 단계다. 나는 미리 작성한 내용을 보내서 언니가 난처할 만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려 했다. 물론 축사를 써준 사람에게 피드백을 주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을 감안해서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는 최대한 빼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쓰려고 애썼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정신이 없을 것을 감안해 2~3주 전에 미리 컨펌 받아 계속 소리내어 읽으면서 연습했다.
빠르지 않게 말하듯이 읽기
축사는 글에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로 변환하여 전달해야 한다. 멋진 축사를 썼다고 해도 전달력이 떨어지면 다 소용 없는 노릇이다. 평소에 발표를 많이 해보긴 했지만 축사는 아무래도 처음이고, 언니의 중요한 행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도 생각이 날 때마다 소리 내어 내용을 읊어보곤 했다.
축사 전 체크!
축사를 프린트해가야 하는 줄 알고 바지런을 떨었는데, 알고 보니 신랑신부 편으로 요청하면 예식장에서 미리 해주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예식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니 식 전날에 미리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식에 어울리는 케이스에 프린트한 종이를 끼워서 읽기 편하게 준다. 보면대가 필요하다고 리허설 때 말하면 미리 준비해준다고도 했다. 나는 내가 직접 써서 전달하는 느낌이 적어 보면대를 쓰지 않았지만 손에 땀이 많거나 들고 읽는 게 어색하다면 보면대도 괜찮은 방법 같다.
실제 축사 당시에는 텍스트 그대로 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기 위해서 입말에 맞추어 변형하며 읽었다. 읽다가 눈물이 맺힌 언니와 눈이 마주치고 감정이 벅차올라서, 목소리가 떨릴까봐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까지 읽고 잠깐 쉬고 읽었다. 화려한 조명에 하객들의 모습이 잘 보이질 않아서 축사를 잘 한 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자리로 돌아왔다.
연회장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어떤 분이 "축사, 너무 감동적이었어요!"라고 수줍게 말하시고 나가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언니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뵀는데, 나를 엄청 반겨주시면서 축사 칭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평생 잊히지 않을 멋진 추억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언니가 남편 분과 언제나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