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마음을 열렬히 응원하며
따가운 햇살이 내리쬘 때는 언제고 하늘이 무너질 만큼 와락 비가 내린다. 여름 날씨 이야기는 오늘 얘기할 우리의 청춘 스토리를 장식하기에 최적이다. 글을 보다가 절망할 때가 태반이지만 지난주 대충 휘갈겨놓은 기록을 읽고 내 글을 사랑하게 되어 과한 칭찬을 곁들이며 시작한다.
대표가 되고, 사업을 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워가고 있는 것일까. 돈을 버는 법? 아니고. 경영은 더더욱 아니고, 경험으로 알게 되는 무엇? 실체가 없어 허전하고. 그런 것들 사이에서 유영하며 하루하루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산다. 아니, 사실 삶은 의미가 없다는 걸 실감하면서 산다. 일다운 일을 하지 않은지 몇 달이 됐다. 하루 종일 올릴지 안 올릴 지도 모르는 유튜브를 편집했다가 후다닥 회의 준비를 했다가, 책상 앞에 앉지도 앉은 채로 핸드폰으로 피드백을 주면서. 주말에는 의식적으로 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사업에 매진하고, 날밤을 까도 모자랄 판국에 나는 초절전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무기력하기도 하고, 이 삶의 무의미를 몇 년을 더 견뎌야 할까 할 필요도 없는 생각에 불안에 떤다. 그럼에도 계속 숨죽이는 이유는 언젠가는 나만 먹을 수 있는 먹잇감을 찾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먹어보라고 권해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주워먹었다가 탈난 경험을 뒤로 하고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내 속으로 쑥 흡수되는 무엇. 누군가는 재능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적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 성실하게, 애쓰면서 모든 것을 잘하려고 했던 시간이 준 교훈은 힘주지 않아도 내 뜻대로 되는 무엇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느껴라. 어떻게? 원초적인 감각의 버튼을 켜고.
챗지피티랑 매일 한 번 이상은 싸운다. 느끼한 표현과 말도 안 되는 문맥 읽기, 정리랍시고 나열되어 있지만 매가리 없는 단어들 사이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스스로에게 한바탕 현타를 느끼고 나면, 그래도 내 안에 맴돌던 뭔가가 정렬되곤 한다. 지난달부터 이어온 내면 소통, 명상, 기도, 그리고 지금 그냥 결과가 없더라도 해보는 것. 사람들을 챙기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내가 느낀 그대로 쓰고 싶은 문장으로 옮겨보는 것.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이제 내가 모든 사업을 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사업의 구심점 또는 장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나는 한동안 정수가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그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건 또 노력과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일이다. 정수가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는 일이니까.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수빈이는 교회 청년부 회장 출신이다. 수련회에서 본 수빈이는 존재만으로 왠지 모르게 기대고 싶고, 따라가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다. 나도 어디 가서 리더십이 있다는 말을 듣지만 나는 타인에 대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다가가고 앞장서는 리더십이라면, 수빈이는 다정하고 진솔한 응원이 주특기인 리더십이다. 수빈이는 본인이 그냥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선호 또한 리더십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 회사에서 팀장이 되고 된통 고생을 하고 나서인지 팀장, 리더십이라고만 하면 진저리를 쳤다. 매일 야근하고, 일이 많아지고,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던 시간들을 누구라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터이다.
비단 수빈이에게만 그런 일은 아닐 것이다. 리더 되기 싫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도, 인터넷에도 널렸다.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다른 사람을 이끌며,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은 안 맡으면 안 맡을 수록 좋다. 물론 큰 성취도 따라오겠지만 굳이 그런 거창한 것을 회사에서 찾지 않기로 직장인들은 암묵적인 합의를 하지 않았나 말이다. 그래도 별종인 수빈이는 그 고초를 겪고도 내심 리더십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곤 했다. 내가 슬쩍 그쪽으로 밀어넣을라 치면 소라게처럼 몸을 숨기고 말았지만 말이다. 잔뜩 움츠린 어깨를 두고 나는 때로는 묵묵히, 때로는 요란법석을 떨면서 임수빈이 세상 밖에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나는 수빈이에게 약속했다. 6개월이 지나면 내가 너를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고. 대단한 기술과 요령을 알려줄 것 같지만 그냥 주니어들에게 꼭 하는 마법 주문 같은 것이다. 그 마법주문을 6개월 동안 외우면 주니어는 진짜 전문가가 된다. 전문가가 되는 기준은 나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제안한 것을 '싫어요'라고 말하면 성공이다. 당당하게 '그것 별로예요. 이게 더 나아요.' 라고 할 줄 아는 깡과 조금의 논리를 탑재하면 그 분야에 그래도 뭔가 전문가라고 해볼만한 무엇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빈도 놀랍게 딱 6개월 쯤 되었을 때 내 의견에 반기를 들고 디벨롭을 하려 들었다.
그렇게 하반기가 되었고, 이제 캠페인을 실행해야 하고,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누가 할까? 라는 대화를 회의에서 길게 나누었다. 수빈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강제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포지션에서 수빈이의 역할이 이미 확실했고 본인이 좋아하는 콘텐츠 쪽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얘기하는데 정수가 먼저 수빈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수랑 얘기한 적 없어도 이런 쪽에는 텔레파시가 잘 통하는 편이다. 누구든지 리더가 될 수 있는 모회사에서 만나서일까? 연차와 능력과 경험이 리더의 자질을 대변하는 필수사항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냥 정말 우리를 잘 끌어줄 사람이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리더십이 경험이나 의도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수빈의 의견이 제일 중요했다.
'제가 하고 싶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수빈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쉽지 않았을지 알아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덩달아 수빈도 울기 시작했다. 리더로서 깨지고, 원하지 않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며 자존감 팍팍 깎으며 지내야 했던 시간. 다시 또 도전한다고 해서 좋은 결말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일단 손을 내뻗어 보는 마음이 어찌 또 다른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내가 수빈의 그 과정을 다 알고 공감할 수 있어서 기뻤다. 기뻐서 눈물이 났다.
우리는 너 다운 걸 원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같이 해보자.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닌데 괜히 센 척하고 싶어서 또는 그럴 듯하게 지어내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동료로서 진심으로 할 수 있어서 참 기뻤다. 그리고 그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내가 한 말이 훨배 크게 받아들여주는 수빈이라서 감사했다. 네 명이서,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회사이지만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펼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만들어 낸다. 거창하게 몇 백억 회사는 못 만들어도 몇 백억 회사를 만들 수 있는 누군가의 처음을 응원할 수는 있다. 그게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 역시 힘주지 않아도 내 뜻대로 되는 무엇도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니 그냥 느껴라. 어떻게? 원초적인 감각의 버튼을 켜고. 불안을 진화하지 말고 마음껏 뜨겁게 활활 불 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