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여름의 쓰임

이 시간의 쓰임은 영원히

by 해서뜬 손유빈

무더운 여름이다. 기운이 빠지는 시간이다. 자꾸만 어디에서 찬 기운이든 뜨거운 기운이든 몸 안으로 밀어넣어 어디론가 빼내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거 같은 계절. 뜨겁다고 해서 따라서 뜨거워져서는 안 되는, 주의를 요하는 최근이다.


열정을 따라 열불을 내던 때는 아득한 예전이다. 머리를 식히려고 물러설수록 전에는 애를 써도 되지 않던 일들이 흔쾌하고 순조롭게 진행된다. 못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구분하고, 몸에 꽉 힘을 주고 덤벼들던 버릇을 없애니 벌어진 일이다. 악착 같이 살면 답을 줄 거라는 단일한 방식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꼭 내가 말하지 않아도, 꼭 내가 애쓰지 않아도 될 일이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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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대표 유튜브 채널 콘텐츠를 구상하고 준비하면서 아빠를 인터뷰했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하겠다고 설쳐대는 여자애를 키운 부모의 심정을 듣고 싶기도 했고, 인터뷰를 말미암아 아빠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사업이 언제고 순항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일상 이곳 저곳에 보험을 들어두고 싶은 심리긴 했다.


아빠는 내가 혼자 사업한다고 했으면 걱정이 많았을 거라고 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기준을 가지고 디테일하고 예민하게 굴어서 제 풀에 지칠까 봐. 거기서 끝내지 않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까지 그렇게 가혹하게 굴고, 나의 기준과 현실과의 괴리가 다르다는 것에 절망할까 봐서. 사업을 시작할 때 그런 말을 들었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정수와 사업을 반년 가까이 하면서 깨닫게 됐다.


정수는 나의 그 과열된 방식을 식혀주는 냉매 같은 존재다. 정수는 늘 현재를 산다. 일에 골머리를 앓다가도 밥을 먹거나 잠을 자면 금방 리셋된다. 나는 그 일 하나로 먹고 사는 일상까지 제치는 유형이라, 처음엔 저래서 일이 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건강한 건 정수 쪽이다. 하루이틀 사업할 것도 아니고,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이 있다. 지치면 대놓고 지치고, 즐거우면 언제나 끝까지 행복한 정수다. 같이 동업하면서 정수는 그 존재만으로 나에게 내 삶에 맞는 감각과 템포는 무엇인지 자각하게 해주었다. 만약 그와 함께 사업하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괴롭히면서 살았을 것이다. 아빠 말대로 제 풀에 나가떨어지고 말았을 테다.


책에서 내 삶을 두세 배 성장시키고 싶으면 현재의 방식을 100이라고 쳤을 때, 20만 바꾸려고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열 배 성장시키고 싶다면 20만 남겨두고 80을 다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20을 뭘 남길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아무것도 못 버리겠더라. 그냥 100을 다 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의 방식을 다 버리고 버려서 남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그대로의 묶음으로 20을 정의해야 뭐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 버리는 데에 오월, 유월, 칠월이 쓰였다.


가장 큰 파이를 차지했던 리더십도 수빈에게 넘겨주었고, 회의도 들어가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고 있다는 강박도 버렸다. 메모장에 한 자라도 썼다면 쓴 것으로 쳤다. 계속 연재하지 못하고 있던 브런치북도 그냥 끝내버렸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용서했다. 곪아가도록 품고 있었던 엄마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도 놓아주려 애썼다. 결국 그게 나의 무엇이 되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나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수빈과 정수와 지민이, 그리고 아빠와 내 수많은 친구들과 새로운 만남이 나에게 그렇게 일러주었다.


그렇게 다 버리고 나니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막막해서 시작하지 못했던 공모전도, 잠시 몸이 떨어져 신경 쓰지 못했던 후배도, 내가 새롭게 쓰고 싶은 이야기들까지도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눈을 감고 그것들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듣는다. 무작정 돌진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에게 무엇이 되겠다라는 확신이나 언어가 만들어지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볼 작정이다.


나이가 들면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정립하고 있다. 백 명 앞에 백 명의 방식이 있듯이 나에게도 나만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남들을 귀하게 대하듯 나도 조심 조심 보드랍게 대하면서 내면으로 수렴하고, 또 발산하는 에너지에 집중하며 내 삶을 이해하려고 한다. 아직 완벽하게 무엇이라고 윤곽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25년 초여름이 나에게 어떻게 쓰였는지 나는 수십년 뒤에도 기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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