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화내서 쏘리고, 같이 해줘서 땡큐!

표현의 무상함에서 헤엄치는 우리들

by 해서뜬 손유빈

임상춘 작가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클립을 보다가 한 댓글을 보았다. 애순의 시어머니가 애순에게 과거에 뺨 때린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애순이 과거에 훔친 금개구리를 주겠다며 "구박해 쏘리고, 살아줘 땡큐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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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기 멋쩍고 부끄러워서 직접적으로 뜻이 드러나지 않는 말로 돌려말하는 것. 한 번은 그래봤을 것이다. 마음은 이게 아닌데, 입은 다른 말을 할 때도 많다. 정말 사랑하는 부모지만 괜히 '짜증나'를 반복하는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처럼. 가슴에 매여 있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민망해 대충 뭉개서 말하기도 한다. 나도 아빠와의 통화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웅얼거리듯 하고 병원 가라는 말은 툭 쏘듯 하는 데도 그런 이치가 작용한다.


인간 군상과 관계가 지독히도 복잡하고 피곤한 이유는 표현이라는 매개 때문이다. 소통의 장애물은 정말이지 표현이다. 한때는 무관심과 권태에게 탓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관계를 망치고, 소통을 막았던 건 피상적인 표현이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뱉어버리는 말들과 쓰여지지 못한 편지들과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넋두리들 같은 것 말이다.


특히나 나는 이 대목에서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 나는 언제나 표현이 말썽이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지 알 수 없는 맞는 말 못하면 죽는 병. 좋게 좋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안 되고 다이렉트로 내려꽂아야만 '말을 했다' 싶은 감각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양극단의 미움과 사랑을 받았다. 어떤 이는 내 직언을 죽일 듯이 미워했고, 어떤 이는 '아꼬와' 죽을 만큼 사랑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내 표현은 왜 이렇게 가장자리가 날카로운가 자책하기도, 사포질로 애써 무디게 만들어보기도 했다. 너무 표현을 많이 해서 문제라면, 하지 않으려고 애써보기도 했다. 결론은 우울증이 와버렸지만.


지금은 그냥 나를 인정하기로 하고, 세상을 너르게 보기로 했다. 날카로운 직언파에게 오는 시련을 과감히 맞서보기로 말이다. 생각보다 그 때가 빨리 왔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우리 넷은 너무 다른 네 사람의 표현 방식으로 적지 않은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표현 대신 행동과 가슴이 먼저 들썩이는 둘, 그리고 말과 표정 등 표현부터 툭 튀어 나가는 둘. 굳이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우리 넷은 서로에게 관심이 많고, 아끼고 사랑한다. 동료를 넘어 정말 가족처럼 지낸다. 여기서 이제 문제가 시작된다. 사랑이 없는 업무 조직은 오히려 잘 굴러간다. 돈벌이라는 심플한 목표로 단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벌이라는 목표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애정과 관심, 미래에 대한 기대감, 뿌듯함, 성취감, 나의 비전이 실현될 것이라는 구조적 안정감 등등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동기들이 복잡하게 엮여간다. 그 가운데에는 긍정적인 감정만 존재할 수는 없다. 너무 좋으면 밉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한결 더 불편해지니까. 가족이 사실은 제일 어렵다는 말이 이런 이유지 않나.


지난 주에 셋과 각자 면담을 했다. 각자 서로를 향한 오해와 불만, 미안함을 고루 가지고 있었다. 참 웃긴 건 하루에 9시간 이상 같은 사무실에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꼭 개별 면담을 해야지만 교류가 된다. 다같이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고 하면 절대 나오지 않는 얘기들이 일대일 대화에서 흘러나온다.


웬만한 건 그냥 넘어가는 정수와 웬만한 건 넘어가지 못하는 나 사이에서 나는 내가 제일 상처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정수가 내 표현에도 너무 무심하고, 더 이상 피드백을 주지 않아서 제 풀에 지칠 때가 많았다고 할까. 나는 계속 두드리는 사람이고, 열어주지 않는 사람으로 원망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그래."


정수와의 면담은 이렇게 요약되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그렇다'라는 것이다. 그 그렇다에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유사한 표현으로 치환할 수는 없다. 그냥 나는 그 말을 하고 있는 정수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정확히는 정수 안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감정을 바라본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두드리는 사람 만큼이나 열어주어야 하는 사람의 노고를 알게 되었다. 저 많은 감정이 누군가는 어쩌고저쩌고로 날밤을 샐 수준의 말들로 늘어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다'로 축약되기도 한다. 본질적인 어려움은 같다. 열어보려고 애써도 열리지 않는 표현의 물꼬를 꾹 쥐고 버티기로 살아온 사람의 방식이 있는 셈이다. 표현으로만 사는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정수에게도 그런 정수의 방식이 있다. 영원히 누구 하나의 방식으로 통합되는 일은 없고, 그냥 그 방식에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내가 좀 그랬네. 미안해. 다음에는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을게. 뉘앙스로라도 약속하고 다짐한다.


지민과 수빈 사이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지민과 내 사이도, 수빈과 정수 사이에도 그런 표현으로 다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 함께 동료가 되고, 가족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그 개개인을 잘 모르고 있고, 앞으로도 서로의 표현으로 알게 되기는커녕 더 무지의 늪으로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일 구석이 있다. 어떻게든 서로의 방식으로 한 발은 떼어보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잊고 있었던 말을 기억했다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정수와, 자기의 방식으로 두렵지만 입을 떼어보려는 수빈과, 자기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우리랑 같이 알아가보려는 지민과, 지금 이 글을 쓰고 표현을 해대며 언젠가 이 시기가 우리에게 무엇이었음을 끊임없이 알고 싶은 나. 결국 하나로 모여보고자 하는 마음만이 형용할 수 없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다.


끝으로 뭐든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와 함께 일해주는 나의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나의 거대한 표현들을 묵묵히 이해해주고 소화시켜주는 정수가 있어서 나는 표현 이상의 이해를 받으며 산다. 내 표현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동질의 존재, 지민이 있어서 왠지 내 존재가 그렇게 그릇되지만은 않았다는 감각을 느낀다. 나랑 너무도 다르지만 함께하려는 의지와 긍정으로 내 거친 말들을 곱게 섬겨주는 수빈 덕분에 나는 비판을 할지언정 비관까지 가지 않을 수 있다. 표현의 무상함 속에서 헤엄치는 모두들에게 맨날 화내서 쏘리고, 같이 일해줘 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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