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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집 Oct 17. 2023

플로리다(월트 디즈니 월드) Part2

반 백 살의 뉴욕 여행기(17) - 번외 편


ㅣ매직 킹덤(Magic Kingdom)과 애니멀 킹덤(Disney's Animal Kingdom)


우리의 첫날 목표는 '매직 킹덤(Magic Kingdom)'과 '애니멀 킹덤(Disney's Animal Kingdom)'이었다. 매직 킹덤은 디즈니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파크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난이도 낮은 어트랙션과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아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애니멀 킹덤은 말 그대로 동물들과 자연을 접할 수 있는 파크이다. 후기를 보면 동물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먼저 '매직 킹덤(Magic Kingdom)'을 가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들린 곳은 바로 기념품 샵. 이틀 동안 우리 머리 위를 장식할 머리띠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디즈니에서는 누구나 머리띠 하나씩은 달고 다닌다. 나이가 많거나 남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린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각자의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딸은 동그란 도넛 모양의 머리띠를, 그리고 난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금빛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장착했다. 특이했던 건 버튼을 누르면 불도 들어왔다. 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버튼을 눌러댔다. 디즈니는 그러한 곳이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나이를 잊고 동심을 즐길 수 있는 곳.


가장 흥분됐던 것은 역시 디즈니의 상징인 신데렐라 성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였다.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성 앞쪽에는 월트 디즈니 아저씨가 미키의 손을 잡고 서 있었는데 부자 사이처럼 다정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왠지 그들의 뒤쪽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열심히 인증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린 줄이 길지 않은 라이드 몇 개만 타고 볼거리에 집중했다. 마침 퍼레이드도 시작했는데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화려해서 놀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어공주도 볼 수 있었고, 미녀와 야수, 겨울 왕국 등 실제로 입에서 불을 뿜는 용도 지나갔다. 캐릭터들이 지나가면서 딸에게 악수도 청하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딸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한참을 놀다가 배가 고파진 우리는 대충 자릴 잡고 팔뚝만 한 칠면조 다리를 하나 사서 먹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식당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맛은 좋아서 다행이었다. 칠면조 다리를 열심히 뜯고 있는데 무언가 지붕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자세히 보니 털이 하얗고 긴 부리에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것이 흰 따오기였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갑자기 생각난 노래. 

처음엔 그저 한 마리가 어쩌다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오해였다. 조금 있자니 흰 따오기 무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혼자, 또는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었다. '와, 미국은 새들조차 스캐일이 다르구나!' 보는 내내 너무 신기해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어떤 이들은 그 상황에 너무나 익숙한 듯 의연해 보였고,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나처럼 신기해하면서 먹이를 주고 있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고 '애니멀 킹덤(Disney's Animal Kingdom)'으로 출발했다. 한데 하늘에 갑자기 이상한 기운을 감돌았다. 멀리서 무겁고 시커먼 구름이 바람을 몰고 오는 게 느껴졌다. 애니멀 킹덤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강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하늘 저편에선 번개가 잇달아 번쩍번쩍거렸다. '이런 번개는 영화에서나 보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다들 어디서 났는지 비닐로 된 비옷이나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있었다. 그때 생각났다. 내가 한국에서 짐 쌀 때 그냥 지나쳤던 그 조언, '아, 이래서 바람막이를 챙겨야 한다고 그랬었구나......' 과연 그랬다. 난 플로리다에 있는 내내 거의 매일 저녁 이러한 날씨를 경험해야만 했다. 내가 유난히 태풍시기에 왔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일 반복되는 이러한 날씨 덕분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고대했던, 디즈니의 불꽃놀이는 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우린 그냥 비를 맞고 다니기로 했다. 딸은 이것도 경험이라고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가 그냥 바가지로 퍼붓듯이 오기 시작할 땐 앞이 보이지 않아서 걸을 수도 없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순간, 앞에 애니멀 킹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가 보였다. 그러자 우린 안도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생명의 나무는 봤다'라고. '이젠 돌아가도 된다'라고.

비에 흠뻑 젖은 채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이야기했다. '다시는 비 맞고 다니지 말자'라고.





ㅣ할리우드 스튜디오(Disney's Hollywood Studios)


우리에겐 아직 가봐야 할 파크가 2개나 더 남아 있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Disney's Hollywood Studios)'와 '앱 콧(Disney's EPCOT)'이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디즈니 최초의 스튜디오형 테마파크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유사하게 비교되는 곳이었고, 앱 콧은 미래의 도시를 콘셉트로 만든 테마파크였다. 

앱 콧은 특이하게도 월트 디즈니가 실제로 주민들이 살 수 있는 마을을 기획한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자 기획은 다 무산되었다고... 대한민국에 하회마을이나 외암마을처럼 실제 거주민들이 있는 과거형의 도시가 있다면, 미국에는 미래형의 도시가 생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타깝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린 어제 폭우의 여파로 가뜩이나 느린 사람들이 더 느려져 있었다. 사실 만사가 다 귀찮고 쉬고 싶을 뿐이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결국 의논 끝에 '앱 콧(Disney's EPCOT)'은 포기하고 '할리우드 스튜디오(Disney's Hollywood Studios)'만 가기로 했다. 


스카이라이너


몇 해전, 디즈니에는 스카이 라이너(Sky Liner)라는 곤돌라가 생겼다. 셔틀버스처럼 파크들을 오갈 수 있는 새로운 교통수단이었다. 다들 한 번씩은 타본다는 말에 나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어디에 있는 건지 알아보았다. 스카이 라이너가 운영되는 리조트들은 다음과 같다.

- 디즈니 아트 오브 애니메이션 리조트(Disney's Art of Animation Resort)

- 디즈니 캐리비안 비치 리조트(Disney’s Caribbean Beach Resort)

- 디즈니 팝 센츄리 리조트(Disney's Pop Century Resort)

- 디즈니 리비에라 리조트(Disney's Riviera Resort)


참고로 '캐리비안 비치 리조트'의 스카이 라이너는 모든 파크들로 연결되기 때문에 환승역이라 할 수 있겠다. 굳이 리조트에 머무는 손님이 아니더라도 디즈니의 손님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을 할 수가 있다.

우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쉽지만 스카이 라이너도 포기하기로 했다. 다른 리조트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걸어가는 수고를 할 만큼의 열정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었다. 결국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로 향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Disney's Hollywood Studios)'는 확실히 '매직 킹덤(Magic Kingdom)'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일단 어린아이들과 머리띠를 한 사람들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기념품 샵에서는 마블과 스타워즈의 인기가 높아 보였다. 또한 디즈니와 콜라보한 명품백이나 옷들도 눈길을 끌었는데, 전반적으로 파크의 분위기가 조금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유난히 내 관심을 끄는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붉은 벽돌로 네모나게 지어진 것이 좀 올드하면서 기괴해 보였다. 벽면엔 '할리우드 타워 호텔(Hollywood Tower Hotel)'이라는 글자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여기 호텔이 있었나?' 너무 궁금했던 난 혹시나 진짜 영업장일까 봐 망설이면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트와일라이트 존:타워 오브 테러(the Twilight Zone:Tower of Terror)'라고 써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길래 우리도 그냥 따라 들어갔다. 호기심이 지나치면 위험하다는 속담이 있다. 한데 이 순간이 그런 순간이었음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트와일라이트 존:타워 오브 테러

먼저 밝히지만 '트와일라이트 존:타워 오브 테러'는 13층 높이(61m)의 낙하형 놀이기구였다. 소지품 휴대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대기실의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중후스러워서 휴대폰 사진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참고로 순진한 우리만 빼고 남들은 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었기 때문에.)


놀이기구가 움직일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 버린 것이었다.

시커먼 공간에서 사방팔방으로 움직이고, 낙하하고, 그 와중에 4D의 무서운 귀신들의 공격이란......!


기진맥진이 되어서 풀려난 우리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놀이기구에 반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설렘엔 약간의 두려움이 동반되듯이, 커다란 공포일수록 그에 동반되는 카타르시스도 높아지는 법이니까. 누군가 나에게 디즈니 놀이기구 중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해 줄 것이다. '트와일라이트 존:타워 오브 테러'라고.


우리는 관광을 마치고 객실로 돌아가던 중 비닐로 된 비옷을 하나씩 구입했다. 미키가 그려져 있는 기념품이 이어서 그런지 가격이 좀 비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폭우를 겪은 자들의 뒤늦은 준비성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로 가는 길에 비가 살짝 내려주었다.

굳이 비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준비성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래서 비가 그친 후에도 꿋꿋이 비옷을 입고 숙소까지 갔다.


뒷북도 재주가 있어야 친다고... 사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내내 다시는 그 비옷을 꺼낼 일은 없었다.





ㅣ마지막 밤ㅣ


난 매일 걷기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산책이었지만. 특히 디즈니 리조트의 산책로는 안전하고 걷기 편해서 하루를 마감하는 아주 좋은 마침표가 돼주었다.


디즈니에서의 마지막 밤에도 난 홀로 산책을 나갔다. 보통은 우리 숙소 주변만을 돌아다녔는데 오늘은 마지막이니 만큼 조금 더 멀리 나가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신나게 놀았으면 졸릴 만도 한데, 나의 불면증은 피곤함을 동반하면서도 잠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근처 리조트로는 '디즈니 올 스타 스포츠 리조트(Disney's All-Star Sports Resort)와 '디즈니 올 스타 뮤직 리조트(Disney's All-Star Music Resort)'가 있었다.


걷는 내내 리조트의 산책로는 조용하고 아무도 없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구석구석을 걷다 보니 전엔 보지 못했던 조형물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달마티안, 호두까기 인형, 구피, 이름 모를 캐릭터 등, 여기저기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어서 오십시오'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휴지통에서부터 벤치까지 뭐 하나 정성을 들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제일 신기했던 건, CCTV가 없어서 더욱더 자유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슬슬 지쳐가고 있었는데, 그때 색소폰을 불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올 스타 뮤직 리조트의 조형물이었다. 새벽 감성인가? 잠시 앉아서 그의 색소폰 연주를 상상해 보았다. 사실 케니 지(Kenny G)밖엔 떠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돌아가야만 했다. 대신 이번엔 좀 짧은 경로를 선택해서 움직였다. 

문득 오늘 다녀왔던 '월트 디즈니 프레젠트:한 남자의 꿈(Walt Disney Presents):One Man's Dream'이란 디즈니 전시관이 생각났다. 

이 전시관에선 월트 디즈니의 초창기 모습부터 성공하기까지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는데 무언가 가슴을 찡하게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난했지만 꿈이 있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으며, 결국엔 자신의 이름을 이은 '디즈니'란 거대한 유산을 남긴 것이었다. 분명 처음부터 의도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


삶이란 무척이나 힘들고 더디겠지만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언젠가, 어딘가엔 도달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 지점이 꼭 대단하거나 위대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발자국들이 쌓여서 나의 유산이 되고, 내가 눈을 감을 땐 '열심히 살았다.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무거운 한 발, 한 발을 내딛으며 난 무사히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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