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플로리다를 계획하다ㅣ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뉴욕외 다른 동부지역을 돌아보는 것은 이미 나의 계획에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디즈니 월드였고, 두 번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이애미에 가 보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플로리다 주(Florida)에 있었고, 그중 디즈니 월드와 유니버설 올랜도는 올랜도(Orlando)에, 마이애미 비치는 마이애미(Miami)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놀이공원을 좋아했던 나는 아직도 이런 것들에 설레고, 가고 싶어 하고, 놀고 싶어 한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마이애미 비치는 그냥 멋진 해변을 끼고 눈부신 태양을 받으며 온전히 휴식을 취하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딸에게는 미국에 갔는데 이 정도는 가 줘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지 않겠냐며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우쭐댔다.
여행의 일정은 간단했다. 먼저 디즈니 월드를 갔다가, 유니버설 올랜도를 갔다가, 마이애미 비치를 마지막으로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득 떠 오르는 생각 '과연 그게 내 생각처럼 잘 될까?'
그랬다. 역시 쉬울 리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첫 계획부터가 순탄친 않았다. 항공편 예매를 마친 얼마 후, 난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범했는지 깨닫고 말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행사를 통해 저렴한 비행기를 예약하면 낭패를 볼 수가 있다. 그걸 알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뉴욕 '라과디아 공항(LGA-LaGuardia)'에서 디즈니/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올랜도 국제공항(MCO-Orlando Intl.)'까지 왕복을 예약해 버린 것이었다.
난 생각지 못했다. 올랜도에서 마이애미까지의 거리가 엄청나다는 것을...... 그리고 플로리다에도 공항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을...... 마지막 여정이 마이애미라는 걸 토대로 조금 더 고민했더라면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당연히 '마이애미 국제공항(MIA-Miami Intl.)'에서 예매했을 텐데 말이다.
이미 늦었다. 취소나 환불이 불가한 저렴한 티켓이었다. 난 여행사에 문의도 해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라과디아 공항'까지 가는 편도 티켓을 추가로 구입해야만 했다. 버스로 마이애미에서 올랜도까지 다시 간다는 건 아무래도 시간상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델타 항공(Delta Air Lines)에서 직접 예매를 했다. 별로 위로는 안 됐지만 여행사 티켓보단 더 싼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뉴욕에서 '디즈니/유니버설'을 가고자 한다면, '뉴욕 출발-올랜도 도착' 비행기를 예매해야 하는 것이요, 마지막 여정이 마이애미라면, 뉴욕으로 돌아올 땐 '마이애미 출발-뉴욕 도착'비행기를 예매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간단한 일이었다.
사람이 한 번 경험을 했으면 배우는 게 있어야지, 바보......!
ㅣ월트 디즈니 월드(Walt Disney World)로 향하다ㅣ
우리의 디즈니 일정은 3박 4일이었다. 숙박은 월트 디즈니 리조트에서 하기로 하고 '디즈니 올 스타 무비 리조트(Disney's All-Star Movies Resort)'로 예약했다. 디즈니 리조트는 디자인에 따라 여러 가지 콘셉트로 나뉜다. 제목을 보면 그 콘셉트가 예상 가능할 것이다. 사실 뭘 알고 고른 건 아니었다. 그냥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매우 옳았다. 이곳의 최대 장점은 안내 데스크와 상점, 푸드코트, 셔틀버스, 수영장 등이 근접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숙소 앞에 있던 거대한 우디와 버즈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멋졌다.
디즈니의 곤돌라 참고로 디즈니 리조트에서 숙박을 하면 몇 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디즈니 테마 파크 오픈 30분 전에 입장이 가능하고 무료로 셔틀이나 곤돌라를 이용할 수가 있다. 물론 게으른 우리에게 오픈 30분 전 입장이란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파크 티켓으로는 '후퍼 티켓(2-Day Theme Park Ticket with Park Hopper Option)'을 구입했다. 디즈니 월드에는 테마파크 4개와(Magic Kingdom, EPCOT, Disney's Hollywood Studios, Disney's Animal Kingdom)와 워터파크 2개(Disney's Typhoon Lagoon, Disney's Blizzard Beach)가 있다.
후퍼 티켓은 하루에 워터파크를 제외한 테마파크를 한 개 이상 갈 수 있는 티켓이었다. 파크 티켓은 디즈니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예약하고 사용하자. 입장객이 많으면 입장 거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틀 동안 테마파크 4개는 좀 무리가 아닐까 고민을 좀 했었다. 하지만 철없는 반 백 살짜리가 실컷 놀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서 체력의 한계 따윈 생각하지도 않고 욕심을 부렸던 것이었다.
디즈니 월드의 리조트 예약이나 입장권 등은 디즈니 월드 공식 홈페이지인 Walt Disney World Resort in Orlando, Florida (go.com)에서 할 수가 있다. 이는 마찬가지로 다른 여행사를 통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 변경이나 취소 등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한다면 공식 홈페이지가 제일 안전하고 편하다. 다만 티켓 소진이 빨리 되므로 최소한 몇 달 전부터는 예매를 해두는 것이 좋다.
월트 디즈니 리조트 로비 (체크인하는 곳)
우리는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LGA-LaGuardia)에서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 국내선을 타고 올랜도(Orlando)로 이동했다. 비행은 3시간 정도였고, 위탁 수화물은 한 명당 $30을 내고 하나씩 맡겼다. 도착지는 올랜도 국제공항(MCO-Orlando Intl.)이었다.
올랜도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Lyft)를 타고 월트 디즈니 월드(Walt Disney World)로 이동했다. 얼마 전부터 공항과 디즈니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영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월트 디즈니 리조트의 풀장
ㅣ월트 디즈니 월드(Walt Disney World) 도착ㅣ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로 걸어가는 길, 오후 햇살에 풀장은 윤슬로 가득 찼다.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리니 푸드코트가 보였다. 갑자기 출출해졌다. 벌써부터 저녁식사가 기대됐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다녀갔을 법한 커다란 체스판과 말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탁구대와 각종 게임도구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계속 걸어가다 보니 중간에 커다란 파란색 문이 하나 나왔다. 그 문 안쪽에는 영화 '토이 스토리'에 나왔던 카우보이 우디와 우주 레인저 버즈가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사람의 백배 정도는 되어 보여서 넋을 놓고 사진을 찍다가 갈 길이 많이 지체되었다.
객실에 도착한 우리는 방을 체크하고 짐을 풀었다. 방은 1층에 있었고, 크진 않았지만 더블침대가 두 개 있었다. 한데 그중 하나가 접이식 벽장 침대여서 좀 당황스러웠다. 침대를 펼치는데 힘들기도 했으나 내리고 나니 식탁이 침대 받침으로 변하면서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식탁 따위 없으면 좀 어때'하고 말았다. 다만 이부자리에서 눅눅하고 칙칙한 냄새가 나는 건 참기 힘들었다. 계속 에어컨을 틀어놔야 해서 밤새 너무 추웠다. 습도가 높은 건가. 우린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담요를 하나씩 사야만 했다.
객실내부와 욕실 겸 화장실
드디어 디즈니에 입성하는 아침이 밝았다. 우린 우리답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느긋하게 푸드코트에 들려 아침식사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난 '디즈니 지니플러스 라이트닝 레인(Disney Genie+ Lightning Lane)'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여기에서 잠시 이 어플에 대하여 설명을 해볼까 한다.
1. 어플의 가격은 매일, 인당, 유료 $15
2. 원하는 어트랙션을 라이트닝 레인(Lightning Lane)으로 예약을 하면 줄을 기다리지 않고 빨리 탈 수가 있다.
3. 아침 7시에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인기가 좋은 어트랙션은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
4.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예약 가능, 해당 어트랙션이 끝나야 다른 거 예약 가능.
5. 같은 놀이기구를 또다시 예약할 수 없다.
6. 대부분의 어트랙션은 해당 어플로 예약이 가능하지만, 인기가 많은 특정 어트랙션은 추가요금을 더 내고 '인디비쥬얼 라이트닝 레인(Individual Lightning Lane)'을 구매한 후 예약이 가능하다.
추가요금의 추가요금을 요구하는 디즈니의 상술에 기분이 좀 상해버렸다. 어쨌든 이는 디즈니의 공식 어플 'My Disney Experience'를 통해서 구입할 수 있다.
7. 시스템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확실한 사항은 디즈니 홈페이지를 참조하자.
월트 디즈니 리조트 푸드코트(우)
난 솔직히 아직도 이러한 시스템이 너무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놀고 싶은 반 백 살 어른이의 소망은 놀이공원을 공부하느라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아침 7시부터 해야 하는 클릭전쟁도 스트레스였지만 결국 버벅거리다 인기가 있는 어트랙션은 다 놓쳐버렸을 때의 허무함이란...! 난 그냥 다 포기하고 몇 시간 뒤에 가능한 어트랙션 하나만 예약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될 거란 생각이 들고나니 갑자기 좌절감이 몰려왔다. 지니플러스를 활용해도 두세 개밖에 못 써먹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엔 지니플러스를 구입하지 않았다. 다행히 어트랙션 상황은 무료 어플인 '디즈니 지니(Disney Genie)'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니플러스 이전에 있었던 패스트 패스(fast pass)도 한때는 무료였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조용히 유료화를 시켜버렸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거면 그냥 돈을 받고 무조건 줄 안 서는 패스 티켓을 따로 팔 것이지 뭐 하러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걸까.
특히 모바일이나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많을 텐데 그들에 대한 배려는 하고 있는 걸까. 티 안 나게 찔끔찔끔 유료 시스템은 늘려나가면서 동심 어린 이미지는 지켜보겠다는 모순적인 발상인 건가.
아니면 소위말하는 내가 그냥 꼰대가 된 것인가.
문득 옆 침대에서 세상 고민 없이 누워 있는 딸아이가 보였다. 깊은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대학생 정도가 됐으면 보통은 애들이 다 알아서 예매하고 가르쳐 주던데,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 나이엔 인지력도, 순발력도, 적응력도, 심지어 시력도 떨어져서 핸드폰을 잠시 보고 있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것뿐인가. 뉴욕에선 내가 열일을 했으니 플로리다에선 딸이 교통편을 책임지기로 했었는데, 결론은? 택시만 열심히 불러대더라.
계획을 맹신하는 나와, 무계획을 선호하는 딸,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건 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굴 탓하랴. 노는데 정신 못 차리는 내가 다 벌린 일인 것을...!
난 더 이상 디즈니를 공부하지 않기로 했다. 내게 우선순위는 즐거움 아니던가. 유명한 무언가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마음을 비우고 포기할 건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우리가 좋아하는 쇼핑과 먹는 걸로 빈 틈을 채워 보기로 했다.
왠지 마음이 좀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