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올 때부터 계획했듯이 난 얼마 전 플로리다에 다녀왔다. 물론 초행길이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재미있는 추억을 가지게 되어서 기쁘다. 플로리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번외 편에서 다루려고 한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깨닫곤 부지런히 일어섰다. 아직 뉴욕의 유명한 뮤지엄을 한 군데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부탁받은 건강 보조식품도 사야 하고, 집 청소도 해야 하고, 무언가 마음이 분주해졌다.
두 달이 이렇게 짧을 줄이야!
'내가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 이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다들 가볍게 '또 오면 되지, 무슨 그런 소릴 해......'라고 했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ㅣ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ㅣ
뉴욕 센트럴 파크엔 뮤지엄들이 많이 몰려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이 되겠다. 세계 3대 미술관이니, 4대 미술관이니 하는데 난 솔직히 그 기준은 잘 모르겠고, 유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말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The Met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으며 86 St. 또는 5 St. 에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찾을 수가 있다. 우리가 갔을 땐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 있었다. 미술관 외관은 누가 봐도 멋지고 중후해 보였다.
대한민국의 국가를 연주하고 있던 연주자
주변 가판대에선 본인들의 예술작품이나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미술관 계단 앞 도로에는 음식 트럭들이 많았는데 눈에 띄는 색소폰 연주자 한 명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잠시 듣고 있자니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 국가였다. 검색을 해보니 이미 꽤 오랫동안 이곳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국가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반갑게 느껴졌다.
우린 미술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관람객들이 너무 많았고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그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엔 기부등 여러 가지 할인 방법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없어졌다고 한다. 여행패스나 학생할인 등도 있다고는 하는데 내게 해당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 망설임 없이 한쪽 구석에 있던 키오스크로 가서 티켓을 뽑았다. 그곳은 매우 한가하고 사람들이 없었다. 옆에서는 안내원들이 할인이 안 되는 사람들은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뽑으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지를 않더라.....
아무튼 우린 그렇게 입장권을 빠르게 구입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막상 들어온 우리는 어디서부터 관람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생각보다 사이즈가 너무 크기도 했지만 사실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품 감상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딸도 열심히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많은 방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소장품들이 너무 많아서 느낌은 미술관이라기 보단 박물관으로 불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시아 관도 몇 개 있었는데 일본은 기모노 전시를 스페셜로 하고 있었고, 중국의 것은 워낙 방대해서 다 둘러보기도 힘들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것은 아주 소량만이 있었고 설명도 미미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 Met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미국 그들만의 것들 보단 다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들로 가득 차서 그들의 수집 능력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것저것 다 갖다 놓은 느낌... 물론 취향의 차이일수도 있겠지만 난 어느새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떠올리며 이곳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았다면 도슨트 프로그램을 참여해 봤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워낙 프로그램에 대한 평도 좋았지만 결국엔 아는 만큼 보는 것일 테니 말이다.
ㅣ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AMNH)ㅣ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은 전부터 내가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위치는 지하철 72 St. 역 또는 81 St.-Museum of Natural History역에서 바로 찾을 수 있겠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각종 공룡들의 화석과 모형들을 만날 수가 있었는데 그 크기와 종류가 어마어마해서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전시관 하나로도 부족해 문 밖으로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던,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공룡 '파타고티탄 마요룸(Patagotitan mayorum)'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쁜 역할 전문인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T-Rex)도 그 명성답게 카리스마가 대단해서 인증숏 스폿이 되어 있었다.
고개를 삐죽 내민 파타고티탄 마요룸와 거대한 블루웨일
미국 자연사 박물관은 내게 동심을 자극하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기하고 커다란 화석들을 보고 있으면 다른 세상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뼈는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었고 설명도 잘 되어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박물관에 별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AMNH만큼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보석과 광물에 대한 전시도 볼 만했다.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항상 후회가 생긴다. 저기도 가볼걸, 여기도 가볼걸...
그래봤자 내게 주어진 저질 체력과 시간 안에서는 한계가 있고, 나의 예상과 기대와는 어긋난 선택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여행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쉬움이나 망설임대신 과감함이 필요하다. 삭제의 과감함! 못다한 계획은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을 기약하지도 말자. 희망할수록 미련은 커지고, 좋았던 기억마저도 희미해진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실현의 기쁨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의 추억은 더 빛이 나게 되겠지.
경험보다는 쉼표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