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 살의 뉴욕 여행기(13)
흔희들 뉴욕을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한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선 우리나라와는 다른 부분에서 세세히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팁은 차치하고라도 뉴욕 관광을 위해 특정 장소를 예매하다 보면 추가 요금이란 존재는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추가 요금에 추가 요금의 추가 요금이 붙으면서 그 관광의 질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는 딱히 관광사업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난 선배가 뉴욕의 극장에 관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의자가 뒤로 재껴지기도 하고 자리도 넓어서 편안하다고 자랑했었다. 우리나라에도 CGV에 리클라이너 좌석이 있긴 하지만 특정 영화관에서만 있는 것이라 뉴욕의 영화관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극장예매 사이트로 들어가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데 요금체제가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자 한다면 편의요금(convenience fee 또는 booking fee)이란 것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좌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공연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예매를 했다고 추가요금을 요구하다니! 그것도 영화를! 내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난 왠지 모르게 빈정이 상해버렸다. 이게 뭐라고...... 사실 화 낼 일은 아니었다. 그저 그들에겐 당연한 요금체제가 다른 나라에서 온 내게 이질감을 준 것뿐이었다. 난 노트북을 덮고 잠시 망설였다. 결국 영화관은 포기하고 시간이 남으면 직접 가서 예매하고 보기로 했다.
팁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해 보려 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팁이란 서비스의 질에 따라 고객의 마음대로 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팁문화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다르다. 뉴욕에서의 팁은 보통 15~20% 사이로 거의 강제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이는 서비스를 주는 노동자들의 급여책정에 어느 정도 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선택적인 면도 있겠다. 종종 그 선택적인 부분과 강제적인 부분의 경계가 모호해서 문제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다. 어떠한 서비스를 받은 적도 없는 택시기사에게, 객실 청소를 해 준 메이드에게, 물 한잔 얻어먹은 바텐더에게, 등등 여기저기 팁은 당연히 요구되고, 지불해야 하는 지출금이 되어 버린다. 나 또한 팁 때문에 항상 소액권 지폐를 휴대해야만 했다. 없으면 불안했을 정도......
요즘엔 이 팁이 현지에 사는 이들에게도 이해충돌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나라의 문화나 체제를 따라 주는 것은 불문, 아주 형편없는 서비스가 아니라면 지불하도록 하자.
참고로,
몇몇 레스토랑에서는 영수증에 음식값 외에 서비스요금을 더해서 주기도 한다. 그냥 강제적으로 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아래칸엔 추가로 팁을 적어내는 공간까지도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팁을 두 배로 낼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다만 더 주고 싶다면 그 칸을 이용하면 된다.)
패스트푸드점처럼 본인이 직접 가져다 식사하는 경우에는 팁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 현 동네사람으로서 정착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 내가 원하는 물건을 어디서 사고파는지 알고 있는가.
- 장을 보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가.
- 동네의 주기적인 행사를 알고 있는가.
- 단골 카페, 식당과 세탁소등이 생겼는가.
- 동네 사람들과 안면은 텄는가.
등등 일 것이다.
그중, 내가 제일 먼저 궁금했던 건 분리수거 문제였다.
집주인에게 물어보니 음식물은 일반쓰레기로 분류되며, 나머진 선택이라 했다. 그냥 1층 편의점옆 쓰레기장에 놔두면 편의점 아저씨가 알아서 치워 준다고 했다.
헌데 막상 쓰레기를 그렇게 버리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나름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캔과 플라스틱, 음식물과 종이 등을 말이다. 쓰레기봉투는 흰색과 검은색이 있어서 둘 다 사 왔다.
문제는 쓰레기 차가 어떤 주기로, 어떤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건 그냥 집주인의 말대로 쓰레기장에 내놓기로 했다.
며칠 후, 드디어 커다랗게 모인 쓰레기봉투를 짊어지고 쓰레기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쓰레기장엔 내 것과 같은 쓰레기봉투가 여럿 놓여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쓰레기봉투를 내려놓는 순간, 옆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내게 무언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인상이 너무 험상궂어서 가까이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큰 소리에 너무 놀라서 그 아저씨가 무어라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들리기 시작했다. 'IN THE CAN!!!'
큰 쓰레기통에 담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재빠르게 큰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담으려 했다. 한데 이번에는 또 다르게 외치기 시작했다.
'BLACK CAN!!!'
'아~, 헐~!' 나는 다시 까만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거기에 내 쓰레기봉투를 넣었다. 그리고 나니 그 큰 소리는 잠잠해졌다.
난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그게 그렇게 소리를 지를 일인가 말이다.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얼굴에 온갖 인상을 장착한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THANK YOU~!' 세상에, 내 입에서는 고맙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가 잘 못 들었는지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길래 난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말해 주었다.
'THANK YOU~!'
그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 비꼬는 것처럼 들리기를 바란 나는 몇 마디 더 붙여서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갔다. (영어로)'난 여기에 쓰레기를 내놓는 것이 처음이었다. 잘 몰랐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않느냐. 알려줘서 고맙다.'라고.
멀뚱멀뚱하던 그의 눈이, 그 험상궂던 얼굴이, 갑자기 환한 미소로 잠식되면서 세상 천사 같은 얼굴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손사래를 치며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며 친절하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니던가. '뭐지? 저 귀여운 얼굴은...?!' 난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내 의도와는 다른 상황으로 가고 있었지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덕스러움이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어차피 우린 이웃이잖아.'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우린 그 이후로 지나가다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난 위에서 나열해 놓은 '동네사람'의 조건들을 완벽하진 않아도 그 이상을 채워나갔다.
- 중국인 모녀가 운영하는 단골 세탁소가 생겼다.(참고로 우리나라에 비해 세탁비는 매우 비싼 편이다. 하지만 친해지거나 양이 많으면 좀 깎아주기도 한다.)
- 아침마다 들리는 단골 스타벅스가 생겼다.(아직도 궁금한 거 하나, 왜 카페에서 시럽이란 단어를 쓰면 못 알아듣는 거지?! 내 발음이 후져서 그런가. 결국 'pumps'하니까 알아듣더라는.)
- 주전부리를 살 수 있는 단골 상점이 생겼다.(어느 상점이든 우리나라 라면이나 사발면, 과자등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 가까이 장을 볼 수 있는 식품점들을 알게 되었다.(한국 식품점 포함.)
- 동양 음식이 절실해질 때 금방 찾아갈 수 있는 중국 음식점과 일본 음식점이 생겼다.
- 항상 애용하는 지하철 역과 버스 정류장이 생겼다.
- 심지어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마다 있는 동네 행사까지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이 소소함들이 쌓이면서 타인의 문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난 점점 이곳이 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It's growing on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