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 살의 뉴욕 여행기(12)
뉴욕에 대하여......
난 그저 짧은 시간 머물다 간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일 뿐이다.
매우 개인적인......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나의 느낌이나 생각들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기에 비판은 줄이고 선입견은 지양해 보려 한다.
그래서 이번엔 나의 소소한 일상들을 조금 나누어 보기로 했다.
뉴욕에 오기 전부터 할렘은 위험한 곳이니 피하라는 조언들을 많이 들었다. 내가 겁이 없는 건가? 아니면 순진한 건가? 그런 조언들이 내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다 사람 사는 곳 아니던가. 역사적 경험에 의한 선입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조언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일단 마음에는 담아두기로 했다.
내가 지내던 숙소는 뉴욕의 어퍼웨스트, 구글 위치로 보면 할렘으로 떴다. 아마도 차길 하나를 두고 그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인 듯. 바로 그 차길 하나를 건너면 본격적인 할렘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사실 그쪽과 이쪽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특히 주말이나 특별한 날에는 조촐하게 가족끼리 외식이나 파티를 즐기는 이쪽 사람들과는 달리, 그쪽에서는 밤새 커다란 음악소리와 폭죽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좀 더 신나는 분위기랄까, 아니면 민폐란 개념이 다른 분위기랄까...... 뭐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리그는 있는 것이니 할 말은 없겠다.
가끔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을 사러 길 건너 쪽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보다는 스페니쉬를 많이 사용했다. 아예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한 번은 현금만을 고집하는 가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갔다가 물건을 사지 못해서 ATM기계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미 이곳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나는 속으로 불안했다. '여기서 현금을 찾아도 되는 걸까?'하고...... 그때 보았다. ATM앞을 경찰관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그러고 근처에 순찰차도 자주 출몰한다는 것을. 안전하다는 느낌보다는 그곳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좀 무섭기도 했다. 사람들의 분위기는 밝고 친절해 보였지만......
어쨌든 우린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그쪽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지내던 숙소 앞에는 돈이나 담배등을 구걸하던 젊은 흑인 청년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매일 출퇴근하듯, 같은 거리를 서성거리며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Hey, Bro.(또는 Sis.)! Can you spare me some change?(또는 a cigarette)'
살짝 손을 저으면서 지나쳐 버리곤 했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쳐야 하는 그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매번 거절당하면서도 그는 절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직업의식인가.....
나는 그가 궁금해졌다. 나름 매일 옷도 깔끔하게 갈아입고 동네 사람들과 유쾌하게 대화도 주고받는 것이 이미 오랜 시간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구걸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살펴보았다. 많은 이들은 나처럼 그냥 스쳐 지나갔지만, 지갑을 열어 소액의 돈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돈이 있었으면 주었을 거라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의아했다. 그게 그렇게 미안해할 일인가. 그는 익숙한 듯이 별 표정 없이 받아들였다.
난 뉴욕에 있는 내내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처럼 많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가끔 그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됐다는 건 비밀이지만......
뉴욕 여행을 하면서 내가 화장실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을 물어보면 단연 화장실을 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고 유명한 공원들은 많은데 화장실은? 수십 분을 가야 하나 있을까 말까. 그나마도 찾으면 인산인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급한 사람은 없다는 것인가. 왜 다들 저리 평안해 보이지? 정말 궁금한 순간이었다. 사실 도심에서도 화장실 찾기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있는 지하철 내 화장실은 저녁이 되면 잠가버리는 것 같았고, 마땅히 들어갈만한 가게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선배가 하는 말, '급하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임산부라고 하고 써. 여긴 법적으로 임산부는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내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흔히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그것도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는)은 만세, 만세, 만만세! 였다.
뉴욕에서 화장실을 찾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방범 때문이란다. 범죄예방과 문화차이 때문이라니 어쩔 수 있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화장실에 유난히 예민한 사람이라면 뉴욕에 가기 전에 꼭 화장실 맵을 검색 해 보고 가기를 권한다. 참고로 스타벅스에서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화장실은 물론, 자리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다. 공짜로 얼음물을 요청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키가 작은 내게 추가적인 불편함이 있었다면 - 미국의 침대와 변기는 그 높이가 동양인의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시외버스 안 화장실은 까치발로도 앉기 힘들었다. 공중에 떠서 볼 일을 봐야 하는 그 불편함이란...!)
노을이 질 무렵, 맨해튼 시내에 나가보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여기저기에서 몰려드는 사람들과, 시끄러운 경적소리, 인력거, 자전거, 자가용, 트럭 등 맨해튼의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온 느낌이다. 수많은 빌딩들에 비해 도로는 좁고 유동인구는 많은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고, 사람들은 무단횡단에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관광객들은 높은 빌딩숲 사이로 찬란하게 빛을 뿜어 내고 있는 노을을 보거나 사진을 찍으려 그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 있곤 한다. 어디가 도로인지 인도인지 구분이 안 가는 시점이다.
신기한 것은, 그 정신없는 난장판 속에서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뉴요커들은 이런 풍경에 단련되고 익숙해진 탓이리라. 그들만의 질서가 존재하는 거겠지......
관광객들은 서로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묻거나 의논하면서 도움을 나누곤 한다. 나도 거기서 빠질 순 없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뉴욕의 대중교통은 꽤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구글맵과 메트로 카드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나 같은 길치가 버스도 타고 다닐 수 있었으니 말이다.
보통 메트로카드가 있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그냥 기기에 넣었다 빼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도 가끔 있다.
공항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였다. 난 공항행 버스가 있는 정류장을 찾아 평소처럼 버스에 올라 메트로카드를 기기에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버스기사가 손을 저으며 내게 티켓을 뽑아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난 '뭐지?!' 어벙벙한 표정으로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침, 내 뒤에 서 있던 어느 신사가 정류장에 서 있던 티켓머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난 재빠르게 버스에서 내려 티켓머신으로 다가갔지만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이었다. '뭘, 어떻게 뽑으라는 거야?!' 그때, 아까 그 신사가 곁으로 와서는 티켓 뽑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냥 메트로카드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미 당황해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던 내겐 큰 도움이었다.
그때까지도 친절하게 날 기다려준 버스 기사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난 무사히 공항에 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