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경제는 잘 모른다. 다만 뉴욕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며, 물가는 만만찮고, 가게마다 물건 값이 다 다르다는 건 알겠다. 그저 월 스트리트가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이자 상징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니 들려 보기로 했다. 월 스트리트는 8블록(block)에 걸쳐져 있는 금융 관련 지역이다.
난 사실 월 스트리트라는 거리 이름이 있는 줄 알았다는......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ㅣ뉴욕 아메리카 인디언 국립 박물관ㅣ
난 월 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가 볼만한 곳을 검색했다. 그 첫 번째 방문지로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를 골랐다. 속설에 의하면 이 황소상의 뿔이나 고환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난 황소상을 만나러 볼링 그린(Bowling Green) 역으로 갔다. 구글맵에서는 내 위치에서 황소상이 근처에 있다고 나오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역시 길치다! 대신 눈에 들어온 것은 뭔가 품위 있고 기념비적으로 보이던 박물관, 뉴욕 아메리카 인디언 국립박물관(The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이었다.
뉴욕 아메리카 인디언 국립 박물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들어가 보고 싶었다. 입장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였고, 검색대 통과도 해야만 했다. 관람은 무료였으나 붐비진 않았다. 이곳은 오롯이 아메리카에 살던 인디언 원주민들의 모습과 생활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입장 시 보이는 타원형 모양의 홀이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수집품들이 많아서 들리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ㅣ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ㅣ
박물관에서 나온 나는 황소를 거의 포기한 채 위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공원을 지나니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사람들의 긴 줄을 따라 앞으로 나가 보았다. 역시 그 끝엔 황금빛의 거대한 황소상이 늠름하게 서 있었다. 신기했던 건 황소상의 앞쪽 줄과 뒤쪽 줄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앞쪽 줄은 뿔을 만지거나 그냥 황소상과 함께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 뒤쪽 줄은 황소상의 고환을 만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뒤쪽 줄이 훨씬 더 길었다. 몇몇 여성분들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만지고 찍고 다 하더라!
줄이 너무 길어서 난 그냥 멀리서 사진 몇 장만 찍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아무래도 난 부자가 될 팔자는 아닌가 보다.'
ㅣ트리니티 처치(Trinity Church)ㅣ
White St. 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Broadway St. 에 트리니티 처치(Trinity Church)가 보인다. 이 또한 생각지 못한 곳이었지만 난 첫눈에 반해버렸다.
'멋지다! 이건 누가 봐도 유명한 곳일 거야!'
과연 그랬다. 이곳은 300년 이상 된,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자 영화 '다빈치 코드'의 배경지였던 것이었다.
'여긴 꼭 들어가 봐야 해.'
트리니티 처치(Trinity Church)
교회는 유난히 검열이 심했다. 마스크 착용과 가방 검색은 물론 코로나 백신 증명서까지 요구했다. 교회를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핸드폰과 가방에서 백신 증명서를 찾아 헤맸다. 몇몇은 포기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교회는 여느 다른 교회들과 많이 다르진 않았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경건하고...... 다만 방 한 칸 크기의 박물관과 뒤쪽에 커다랗게 자리한 파이프가 인상적이었다.
난 예배당과 크고 작은 방들을 훑어보고는 교회의 옆문으로 나왔다. 그곳엔 작은 묘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묘가 눈에 띄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10에 그려져 있는 인물로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라고 한다.
난 잠시 의자에 앉아서 비석들을 바라보며 쉼을 청했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보통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 많을 때 그런 생각에 깊이 빠져 든다는데 내가 그런 건가? 아직 못다 한 것들이 많아서이겠지......
궁금했다. 죽음에 대해 덤덤해질 수 있는 나이가 있기는 한 걸까. 문득 구십이 다 돼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무섭다고, 당신의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시던......
인간은 누구나 자연에서 왔음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과연 세상에 호상(好喪)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고통 없는 죽음이 있긴 한 걸까. 살아있는 자들이 나름의 위로를 갖고자 만들어 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이가 들수록 살아있음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고,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끝을 잘 마무리하고자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