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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집 Apr 10. 2023

뉴욕의 파크들

반 백 살의 뉴욕 여행기(8)

센트럴 파크 시프 메도우


뉴욕엔 작고 큰 공원들이 동네마다 즐비하다. 내겐 도심에서 즐길 수 있었던 한가로운 산책이 뉴욕생활 중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사쿠라 파크(Sakura Park)


숙소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사쿠라 파크(Sakura Park)라는 곳이 있다. 아주 작은 공원이었지만 이곳은 내가 가장, 자주, 많이, 오랫동안 방문한 장소였다. 파크 바로 맞은편엔 고딕양식 건축물인 리버사이드 교회(Riverside Church)가 있었는데 그 절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을 자주 빼앗기곤 했다. 건너편엔 맨해튼 음대가 있어서 종종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버사이드 교회와 사쿠라 파크
그랜트 장군 기념관


파크를 나와 큰길을 건너면 그랜트 장군 기념관(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이 있었다. 18대 대통령이자, $50에 얼굴이 새겨져 있는 인물로 남북전쟁 당시 북군을 승리로 이끈 총사령관이라고 한다. 주말이면 이곳 광장에서 음악공연이 자주 열렸다.


뉴욕에 온 이후로, 난 갑갑한 거실에서 지내는 게 싫어서 계속해서 이 파크를 찾았다. 아침 산책, 식사 후 산책, 저녁 산책, 밤 산책등 틈만 나면 이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책도 읽고, 새와 청설모에게 먹이도 주면서 그렇게 자연과 노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난 의도치 않게 걷기 운동을 하게 되었다. 빠르게 걷지도, 신경 써서 걷지도 않았다. 힘들면 앉아서 쉬었고,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멈춰 섰다. 5분만 걸어도 아팠던 관절이 나중엔 서서히 편해지는 걸 느꼈다. 나에겐 힐링의 공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리버사이드 파크


리버사이드 파크(Riverside Park)


위에서 언급한 그랜트 장군 기념관(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을 지나 아래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좁은 숲 길이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길 끝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공원이 너무 커서 그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오른쪽 돌담너머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강이었다. 이런 곳에서 강을 만나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가까이 가고 싶었다. 한데 갈 수가 없었다. 중간에 크고 복잡한 도로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난 꼭 저 강변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었다. 바로 건너편에는 태양의 빛을 한껏 머금은 강이 찬란한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마도 공원을 끼고 있는 강변인 것 같았다.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가고 싶다!' 지나던 어떤 청년에게 길을 물어보니 건너편으로 이어진 터널이 있긴 한데 매우 멀다고 했다.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강변의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걸었다. 화장실도 급하고, 목도 마르고 지쳤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이상한 집착일지는 모르겠으나 난 항상 되돌아가는 길이 싫어서 다른 길을 찾아가는 편이었다. 얼결에 여기까지 오게 된 나는 핸드폰밖에 없어서 음료를 사 먹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파는 곳은 멀고, 자판기 시설도 없었지만 말이다.


리버사이드 파크로 통하는 터널


드디어 내 앞에 터널 하나가 나타났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터널 저편으로 보이는 강과 빛, 나무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예쁘게 어우러져 보였다. 터널을 지났다. 간판에 쓰여 있기를 '리버사이드 파크(Riverside Park)'. 리버사이드 파크는 허드슨 강(Hudson River)을 끼고 72nd St.부터 158th St. 까지 이어진 공원이라고 한다. 따져보니 지하철로 8 정거장 정도 걸은 것 같은데 그게 이렇게 힘든 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길이 막막한 상태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강변을 잠시 구경한 나는 풀밭에 앉아서 쉼을 청했다. 잘 닦인 길을 따라 최소한의 옷만을 걸친 채 달리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어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귀엔 이어폰을 꽂고, 짧은 러닝팬츠만 입고 뛰어가는데 근육이 살아 움직였다. 생긴 걸 떠나서 너무 멋지게 보였다. 나이가 들어도 열심히 자기 관리를 놓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강과 공원은 기대만큼 아름다웠다. 중간에 포기했다면 이런 좋은 만남도 없었겠지? 스스로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곧 해가 지기 시작했고 강변도 검게 물들어 갔다. 날이 흐려지면서 붉은 해는 그 때깔을 잃고 회색빛 구름뒤에 숨어 버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도로변 공원 쪽으로 해서 걸었다. 분명 숙소를 나올 땐 잠시 산책이었건만 돌아갔을 땐 이미 밤이 되어서였다.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Central Park)ㅣ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는 뉴욕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공원으로 그 크기가 341ha(3,410,015.35 ㎡)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갈 땐 어느 쪽에서부터 시작할지 결정하고 가야만 한다. 동쪽은 5번가(Fifth Ave.), 서쪽은 센트럴 파크 서부(Central Park West), 남쪽은 서부 59번가(West 59th St.), 북쪽은 서부 110번가(West 110th St.)에 내려서 찾아가면 되겠다. 


난 개인적으로 센트럴 파크 정복을 목표로 하고, 며칠 동안에 걸쳐서 동서남북과 중앙까지 모두를 다 가봤다. 센트럴 파크의 중심부에 가면 벨비디어 성(Belvedere Castle)이란 곳이 있는데 19세기에 지어진 장식용 성이라고 한다. 센트럴 파크 내에선 가장 높은 곳이자 안내소라고 하니 한 번쯤 들려서 전망대에 올라 보는 것도 좋겠다.


센트럴 파크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이곳의 상징인 '베데스다 분수(Bethesda Fountain)'와 '보트 하우스(boat house)'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했던 59th St.(콜럼버스 써클)역에 내려서 출발하면 된다. 길을 헤맬 수 있으니 입구에서 파크 지도를 받아가도록 하자. 없으면 역시 구글이다. 이곳 광장에선 웨딩 촬영은 물론, 댄스와 음악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갔을 땐 젊은 아이들이 K-Pop에 맞춰서 댄스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서 우리나라의 노래가 퍼져 나오다니 흥분되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센트럴 파크 보트 하우스


광장의 중앙엔 '물의 천사(Angel of water)'라는 조각이 있는 베데스다 분수가 있다. 그 앞 호수가엔 보트 하우스에서 보트를 빌려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가엔 거북이들과 오리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먹을 것을 노리고 대기 중인 것 같았다. 나도 잠시 물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수와 배 그리고 오리들을 보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받아 사진도 찍어주고 오리들에게 과자도 좀 나누어 주었다. 나중엔 오리들이 거의 협박하듯 달려 들어서 얼른 자리를 피했지만 말이다.


언제부턴가 난 항상 외출 시에 내가 먹을 빵과 음료, 그리고 동물들에게 나누어 줄 과자와 아몬드를 조금씩 챙기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뉴욕의 모든 새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새들은 매우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왔다. 아마도 먹이를 잘 나눠주는 이곳 사람들과의 유대관계 때문이리라. 더 이상 병균 따윈 내 안중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여기선 그들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의 한 부분이란 생각만 들었다.

다른 파크에 비해 유난히 센트럴 파크의 새들과 청설모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센트럴 파크가 유동인구가 많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겠다. 특히 뛰어노는 개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행복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사람들과 잘 지내온 유전자 탓인지, 미국의 개들은 정말 사람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들이 진화하면 정말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파크의 피크닉 장소로 유명한 곳은 시프 메도우(Sheep Meadow)이다. 1934년까지 양을 풀어 키우던 목축지라고 한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잔디밭은 햇살이 그대로 떨어지면서 피크닉이나 일광욕하는 사람들의 성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도심 속의 공원 아니던가. 나도 잠시 누워서 눈을 감아 보았다. 문득 담당의사의 말이 떠 올랐다. 비타민D 수치가 너무 낮다고 햇빛을 많이 받으라던...... 이 정도면 비타민이 부족하긴커녕 과흡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밭에 앉으면 기분이 매우 좋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개미들이 많다는 것. 여긴 언제 어디서나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쥐와 개미들이 많다. 나도 처음엔 멋모르고 막 잔디밭에 앉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보니 개미가 올라오고 있어서 식겁했다는...... 검은 개미는 둘째치고 투명한 색의 개미는 더 구별해 내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들은 온갖 동물들이 X을 싸는 곳이라고 피하기도 했다. 예민한 사람들에겐 심각한 일 일 수도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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