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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집 Oct 18. 2023

플로리다(마이애미)

반 백 살의 뉴욕 여행기(19) - 번외 편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는 내가 미국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었다. 오롯이 휴식의 시간으로 야심 차게 준비한 곳이랄까. 정확히 말하면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게 내 계획이었다. 그저 한량처럼 아름다운 비치에 누워 아무것도 아닌 시간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물론 계획과 현실은 달랐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게 여행의 묘미인지도 모르겠다.




마이애미(Miami)


올랜도에서 마이애미까지는 버스로 4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우린 어디서 어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호텔에서 마이매미(Miami)로 가는 날, 우린 일단 택시를 불렀다. 시외버스를 타러 가기 위함이었다. 도착지에 가보니 버스는커녕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우리는 헤매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택시기사는 우리에게 정류장에 대해 꼼꼼히 물어가며 꽤 오랜 시간 주변을 돌아봐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결국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는 추가 요금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국땅에서 이렇게 어리바리하게 바가지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에겐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신 팁을 많이 주기로 했다.


마침 시외버스에 사람들이 짐을 싣고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떠날 기세였다. 난 잽싸게 달려가서 운전기사에게 티켓을 못 샀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기사는 매표소에서 티켓을 못 산 거냐고 묻더니 일인당 현금 $50을 내라고 했다. 순간 당황했다. '헉, 너무 비싼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버스가 움직일 기세였다. 마침 내가 가진 현금과 딸아이의 쌈짓돈까지 털어서 $100을 지불하고 겨우 버스에 올라탈 수가 있었다. 착석을 하고 나니 그때부터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나 지금 바가지 쓴 거 아니야? 아무래도 현금은 저분이 꿀꺽할 것 같은데...'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티켓을 안 사 온 우리에게 배려를 해준 운전사를 괜히 의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어차피 이제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는 건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빨리 잊기로 했다. '끙~'


나중에 알고 보니 버스는 시간대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여러 날 전부터 저렴한 가격을 찾아 예매를 하면 몇 달러 짜리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낸 그 가격은 제일 비싼 시간대의 제일 비싼 가격이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말았다.



버스는 거의 4시간 걸려서 '베이사이드(Bayside)'에 도착했다. 여전히 태양은 뜨겁고 무더웠으며, 하늘은 높고 구름은 그림 같이 예뻤다. 식당에선 남미풍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모두들 활기차고 신나 보였다. 나중에 다시 들려봐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택시를 불렀다. 호텔로 가기 위해서.





마이애미 호텔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플로리다처럼 많은 리조트 호텔이 몰린 곳에서는 숙박비 외에 '리조트 피(Resort fee)'와 '보증금(Deposit)'을 받는 곳들이 많다.


'리조트 피(Resort fee)'란 호텔에서 수영장, 비치타월, 생수, 인터넷, 헬스클럽 등의 이용요금으로써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받는 것으로 대부분 현장 결제이기 때문에 호텔 예약 시 고지받지 못하거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항이므로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금액은 호텔마다 상이하며 보통은 1박당 $20~$50 정도 받는다.

호텔끼리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숙박비 대신 리조트 피를 조정해서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증금(Deposit)'이란 객실 손상을 막고, 유료 서비스 이용에 대한 호텔의 대비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객실에 별 일이 없을 땐 체크아웃 시 환불을 해 주거나 카드결제를 취소해 준다. 어쩌다 보니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했던 난 보증금과 리조트 피를 헷갈려서 계산에 어려움을 느꼈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작고 복잡한 주차장에 있었다. 앞에 벨맨이 두 명 서 있었지만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굳이 부탁을 안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없어 보여서 그랬는진 잘 모르겠다. 일단 짐을 들어주면 팁을 받아야 하니까...... 나도 뭐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프런트 데스크는 한가해 보였고 체크인을 시작했다. 리조트 비는 1박당 $50.30이었고, 보증금은 1박당 $150이었다. 리조트 비는 예상했지만 보증금 금액을 들었을 때는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돌려받는 돈이라지만 너무 비쌌다. 4박이면 $600이었다. 카드 한도가 엄청 줄겠단 생각을 하면서 걱정스레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사에서 $600 사용 문자가 날아왔다. 그러려니 했다. 한데 다음날 $600 사용 문자가 또 날아왔다. 뭐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가서 문자 내역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요구했다. 직원은 잘 모르겠다며 다른 직원을 데려왔다. 설명해 주길 첫 번째 카드 사용은 카드의 한도를 체크하는 방법으로 결제로 넘어가지 않는 '가승인'이며, 한도의 확인이 되면 그제야 '실제 결제'를 한다는 것이었다. 카드사 쪽에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 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좀 이상했다. 보통은 한 번 결제로 끝나는데 이 호텔은 왜 두 번을 거쳤을까. 아무튼 사실여부는 확인했으니 됐다.



호텔 로비는 럭셔리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벽면은 미술관에 온 듯 온통 그림과 액자로 가득했으며 실시간 화면이 바뀌는 대형 스크린도 있었다. 룸 서비스는 물론 바(bar)와 레스토랑도 두 개나 있었고 자전거도 한 시간 무료 렌트가 되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넓고 아기자기한 풀장과 바로 앞에 있는 호텔 전용 비치이었다. 언제든 객실번호와 이름을 알려주면 비치 타월과 썬 배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객실은 크지 않았지만 그림으로 채워진 벽면과 바다전망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이전에 묵었던 호텔에 비하면 내겐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호텔이었다. 여름에 가장 중요한 아이스 머신도 없었고, 전자레인지, 자판기, 세탁실도 없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호텔에 부탁을 하거나 팁을 주고 시켜야만 했다. 천성적으로 노예근성이 있는 내겐 힘든 환경이었다. 덕분에 난 뻔질나게 바를 드나들며 아이스 컵을 부탁해야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호텔은 풀 파티로 유명한 호텔이었다. 주말이면 밤새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젠장!





링컨 로드 몰(Lincoln Road Mall)


검색을 해보니 호텔에서 머지않은 곳에 링컨 로드 몰(Lincoln Road Mall)이라는 유명한 쇼핑몰 거리가 있었다. 이곳은 쇼핑의 천국이기도 했으나 다양한 레스토랑과 바가 있었고 큰 마트가 있어서 우리의 단골 거리가 되었다.


사실 마이애미 첫날 우린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럭셔리한 분위기에 처음 보는 메뉴들은 우리를 설레게 했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웨이터들은 정중하고 친절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웨이터의 추천에 힘입어 주문한 음식들은 모양도 맛도 낯선 느낌이었고, 양이 너무 적었다. 모든 비싼 레스토랑들의 특징이던가. 비싸고 특별한데 양이 적다.


처음에 나온 수프는 시고 자극적인 당근 맛에 입을 대기도 힘들었다. 딸은 포기했지만 난 아까워서 열심히 먹었다. 정확히는 그냥 마셔버렸다. 다행히 다음 코스로 나온 고기와 밥은 부드럽고 단맛과 짠맛이 잘 어우러지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웨이터는 남아 있는 수프를 보자 약간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밝은 얼굴로 맛이 잘 맞지 않았느냐며 수프 가격은 받지 않았다. 고마워라. 그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였다. 굳이 덧붙이자면 우린 객실로 올라가서는 바로 사발면을 흡입해 버렸다는......!


다음날부터 우리의 주식은 링컨 로드에서 해결되었다. 한 끼 정도는 사 먹고 나머진 간단한 브런치나 마트 식품 등을 사 먹었다. 한 번은 캐주얼해 보이는 어느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어떤 잘생긴 흑인 두 명이 오더니 말을 걸었다. 우리 보고 너무 아름답다며(물론 내게는 예의상) 친구가 딸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

친구가 친구 대신 나선 모양이었다. 어쩐지 식사 내내 한참이나 바라보더라니...... 그는 딸에게 인스타를 물어보았다. 딸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그런 거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거절당한 걸 알았지만 웃으면서 밝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난 그제야 요즘 젊은이들은 전화번호 대신 좀 더 다가가기 편한 인스타를 물어본다는 걸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문신이나 헤나를 받고 있었다.


거리에는 비치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수영복 파는 가게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특이하고 야한 수영복도 많았지만 화려함의 극치인 파티 수영복은 정말 볼만했다. 이곳 분위기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옷도 점점 짧아지고 과감해지고 있었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비키니도 하나씩 사고 헤나(henna)도 그려 보았다. 난 내 별자리를 따라 전갈 그림을 골랐다. 완벽히 지워지는 데까진 열흘 정도 걸린 것 같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리틀 하바나(Little Havana)


마이애미에서의 마지막 날엔 무언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린 지난날 길에서 본 시티투어 버스를 타보기로 결정을 했다. 마이애미를 전반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니 좋은 기회일 듯싶었다. 마침 시간도 맞아서 우린 금방 이층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방송을 통해 주변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었다. 무슨 소린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탁 트인 항구와 바다전경이 나왔을 땐 너무 멋지다는 생각만 들었다. 단점이 있었다면 바람이 너무 세서 다들 모자와 안경을 부여잡느라 바빴다는......


시티투어 버스


버스는 마이애미 시내를 들어서더니 멈췄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첫날 내가 가고 싶어 했던 '베이사이드(Bayside)'였다. 너무 신났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아서 우린 잽싸게 베이사이드를 돌아다녔다. 분위기가 남미 스타일로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다. 쇼핑몰은 좀 한가해 보였지만 항구 쪽 대관람차의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 레스토랑에서는 어떤 남자가 여러 마리의 커다란 앵무새와 식사를 하고 있던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왠지 모든 게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는 신기한 나라인 것 같았다.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탄 우리는 '리틀 하바나(Little Havana)'로 출발했다. 리틀 하바나는 마이애미 속 '작은 쿠바'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곳 주민의 90%가 쿠바인이라고 한다. 동네의 벽면 여기저기에는 컬러가 강한 그림들이 많았으며 쿠바 특유의 활발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버스는 가장 번화하다는 8 St. 에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종점인 듯싶었다. 우린 'the House of Cuban Coffee'라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그냥 목이 말라 들어간 곳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와 쿠키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the House of Cuban Coffee


주인장의 추천으로 커피와 쿠키를 주문했다. 아저씨는 아주 유쾌하고 영업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결국엔 내게 로스팅된 원두까지 팔았으니 말이다. 원두는 쿠바산 원두로 스트롱 로스팅과 마일드 로스팅이 있었는데 강하게 로스팅할수록 카페인 함유량이 낮아진다고 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카페인이 많이 날아가기 때문에. 난 내가 마셨던 커피가 마음에 들어서 강한 걸로 선택했다. 물론 쿠키의 맛도 예술이었다.


잠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힘은 들었지만 기분 좋게 마지막 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차가 없는 뚜벅이들에겐 괜찮은 시티투어였다.




길게 이어져 있는 비치 보드워크


마이애미 비치 보드워크(Miami Beach Boardwalk)


호텔 뒤쪽으로는 비치와 긴 보드워크가 있었다. 뉴욕에서는 내 힐링의 장소가 공원이었다면, 여기서는 보드워크와 비치가 그러한 장소였다. 나의 걷기는 여기에서 피크를 찍었다. 매일 밤이면 보드워크를 따라 최소 1시간 이상을 걸었다. 길 자체가 평탄하고 모난 거 없이 잘 닦여 있어서 걷거나 자전거 타기엔 최적이었다. 길이도 길었고, 언제든 바로 옆으로 빠지면 비치와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여태껏 꾸준히 걷기를 했던 게 드디어 이곳에서 빛을 발한 것 같았다. 조금씩은 여전히 불편했던 걸음걸이가 여기 와서는 완벽하게 나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아픈 관절도 없어지고 발걸음이 무겁거나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도록 편하게 걸을 수 있다는 데에 너무 신기해서 더 열심히 걷고 또 걸었던 것 같다.


삼일째와 사일째가 되는 날에는 일출을 찍고 싶어서 새벽부터 보드워크를 끝까지 걸어갔다. 단골처럼 찾아드는 비바람과 카메라의 습기 때문에 실패하긴 했지만 무언가 열심히 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마이애미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으로 채우겠다는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고 바쁘게 흘러갔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또 시도해 보고 싶다.


한량이었지만 더 한량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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