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린 '마이애미 공항(MIA-Miami Intl.)'으로 갔다. 호텔에서는 택시로 이십여분의 거리였다. 체크인은 온라인으로 했지만 위탁 수화물을 맡기기 위해선 항공사 카운터로 가야만 했다.
산타 할아버지 같이 인상 좋게 생긴 할아버지 직원이 앉아 있었다. 친절하게 종이로 된 표도 뽑아주고 캐리어 하나를 먼저 받아주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기내 가방을 제외한 모든 캐리어는 한 개당 $30이었다. 내가 한 개를 더 주었더니 이번에는 나를 보고 빅 스마일을 달라고 했다. 내가 뻘쭘해서 딸을 손으로 가리켰다. 딸은 센스 있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그걸 보더니 얼굴이 빨개지도록 호탕하게 웃어댔다. 그리고는 미소값으로 캐리어 하나는 공짜로 받아 주겠다며 계산을 마무리해 주었다. 역시 미소는 만국의 공통 언어인가 보다.
무사히 뉴욕에 도착한 우리는 익숙한 듯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향했다. 마치 휴가를 갔다가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제 맨해튼이 집 같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 앞에 도착해 보니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단골 세탁소, 1층의 가게와 널브러진 쓰레기들까지. 매일 제자리에서 구걸하던 남자는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왜 출근을 안 했을까' 그조차도 궁금해졌다. 물론 내가 가장 애정하던 사쿠라 파크에도 들렸다. 평소에 잘 안 나타나던 청설모가 보였다. 날 반기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저녁식사는 근처 단골 중국집에서 먹고, 자주 들리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이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숙소로 이사를 하고 스타벅스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주문을 하고 났더니 이름을 알려달랬다. '왜?' 하는 생각으로 단호하게 '노(no)'라고 대답했다. 그때 직원의 뻘쭘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주문자의 이름을 불러서 음료를 주는 그들의 방식을 몰랐던 것이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했다는데 난 왜 몰랐을까. 그깟 이름이 뭐라고. 좀 부끄러워졌다.
ㅣ보증금과 물파스ㅣ
맨해튼에 돌아온 이후로 난 호텔에 맡긴 내 보증금은 언제쯤 해결되려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보통 다른 리조트나 호텔에선 체크아웃하자마자 취소문자가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카드사 설명서를 보면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린다는데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난 보름뒤면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그전에 해결하고 싶었다. 급한 마음에 호텔에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전화 연결은커녕, 전화 거는 자체조차 쉽지 않았다. 난 미국에 와서 핸드폰의 유심칩을 바꿔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전화번호도 없었고 일반적으로 전화를 걸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통신사에서 1+1 로밍이벤트가 있어서 그것을 신청했었고, 또 부족한 데이터는 도시락을 따로 사용하고 있었다.
며칠 여행을 생각했다면 상관없겠지만 나처럼 긴 여행을 생각한다면 유심칩을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여기저기 전화번호를 남겨야 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국제 전화번호를 불러주려면 매우 난감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할 때는 로밍을 활성화시키고 국제전화를 하듯이 번호를 눌러야 하는 것도 매우 불편하다. 그마저도 통신사의 사정으로 잘 안될 때가 있었는데 마음 급한 사람들에겐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로밍이 잘 안 될 때는 해당 통신사에 연락을 취하거나(무료) 핸드폰을 껐다 켜서 재활성 시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난 로밍이 잘 안 돼서 한참을 고생한 뒤에나 해당 호텔에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전화연결이 되어도 산 넘어 산이었다. 예약부서를 통해 프런트 데스크를 거쳐서 재무부서까지 연결되면 자동응답기가 대신 답변을 했다.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남기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호텔 공식 홈페이지를 뒤져서 고객상담 이메일도 보내봤지만 그들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기본적인 서비스에도 허술한 미국의 호텔들이라니... 나도 이젠 그러려니 했다.
난 틈만 나면 호텔에 전화를 시도했다. 이 정도면 거의 취미 수준이었다. 며칠 뒤에 난 결국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다. 담당자는 호텔에서 이미 취소는 했고 은행 쪽으로 넘어갔으니 며칠만 더 기다리면 될 거라고 했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 고생을 했다니 좀 어이가 없었다. 사실 이번에도 전화연결이 안 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갑작스러운 전화연결에 난 당황하고 말았다. 영어로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난 언제쯤에나 정신을 차릴까 짜증이 났다.
다행히 며칠 후에 보증금은 취소가 되었다. $600중 $380 정도만...... '아, 너무 피곤하다! 이건 또 뭔가......?'
사실 난 찔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호텔 체크아웃 전 날 밤, 벌레에 물린 다리에 약을 바르려고 한국 물파스를 꺼내 들었다. 선배에게서 받아온 몇 년 된 물파스였다. 물파스를 바르려고 열심히 짜내는데 입구가 말랐는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 힘을 주는 순간, '펑!' 하더니 입구가 터지면서 물파스가 내 얼굴과 온몸에 튀기면서 쏟아져 나왔다.
눈이 너무 따갑고 아파서 뜰 수가 없었다. 딸을 소리쳐 불렀다. 딸은 괴로워하는 나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 주었다. 난 열심히 흐르는 물에 눈을 씻고 또 씻었다. 입으로도 들어갔는지 구역질이 났다.
그동안 딸은 물파스가 침대에 스며들지 않도록 잽싸게 이불을 정리했다. 물파스 한 통을 다 뒤집어쓴 나는 한참을 씻은 후에나 진정할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나에게 딸은 검색한 내용을 읽어주었다. '흐르는 물에 씻어도 불편할 경우 안과를 방문하시오!', '엄마, 심할 경우 실명할 수도 있대!' 왠지 맞은데 또 맞은 기분이었다.
방과 침대에서 물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최대한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보았지만 냄새는 줄어들지 않았다. 흡연 청소에 $160 이라던 호텔규정이 생각났다. 물파스 청소에도 같은 규정을 적용시킬까 궁금해졌다.
보증금을 덜 받은 나는 물파스 사건을 떠 올리며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었다. 사실 호텔과 또 통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전투력이 생기지 않았다.
이틀쯤 지났을까. 역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다시 '호텔로 전화하기' 취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결국 통화가 이루어졌을 때 난 영어로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난 전화도 없고! 핸드폰도 없다! 이메일을 보내도 당신들은 확인하지 않는다! 당신들과 통화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러니 이 전화를 절대 끊지 말아 달라!'라고. 그리고 나머지 상황 설명을 했더니 직원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찾아서 알려주었다.
보통은 잘 모르겠다고 다른 직원에게 넘기다 전화가 끊어지곤 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미국에선 뭐든 단호하고 확실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알고 보니 내가 받은 금액은 내 보증금에서 리조트 피+세금을 제외한 금액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잊고 있었다. 다른 호텔에선 체크인을 할 때 리조트 피를 냈었기에 이 호텔에서도 내가 이미 냈다고 착각을 한 것이었다. 그걸 보증금에서 까고 돌려줄진 상상도 못 했다. 물파스 사건과는 무관한 이유였다. 다행이다. 난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영수증을 이메일로 부탁했다. 직원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물론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난 영수증을 받지 못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쩝.
이렇게 나의 우여곡절 플로리다 여행은 막을 내렸다.
사실 집을 떠나 여행을 간다는 것은 매우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시작은 힐링이지만 더 많은 고생을 하게 되는...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생할수록 기억에 오래 남고, 어려울수록 성취감은 배가 된다.'라고...
굳이 힘들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배우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성공 아니던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