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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집 Mar 08. 2024

복수혈전

공모전 도전기


나이가 줄었다. 정부 정책에 따른 '만'나이 때문이다.

생일이 느린 나로선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랫동안 2살이 어려질 수 있었다.

변함없는 신체나이는 어쩔 것인가에 대해선 애써 고개를 흔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근데 내가 몇 살이었지?'

숫자를 세다가 잊어버린 것처럼, 더 이상 나이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매 해 맞는 새해 또한 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작년에 입었던 두꺼운 바지를 꺼냈다.

요새는 조금만 추워도 참기가 힘들다.

'헉! 바지가 올라가질 않는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삼단으로 불룩하게 흘러내린 뱃살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격받고 다이어트가 생각나야 하는 거 아닌가...


'... 재미없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끝도 없이 가라앉는 내가 느껴졌다.

이러다 사라지고 마는 거 아냐...

꼬르륵...





취미로 사진생활을 한지 어언 십여 년이 흘렀다.

이미 초심의 낙은 사라졌지만 그나마 습관처럼 꿋꿋하게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취미였다.

 

어느 날 출사를 다녀오겠다는 내게 남편이 시비를 걸어왔다.

아니,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해야 하나.

'뭐 맨날 사진 찍으러 다닌다면서 결과물은 하나도 없어?!'

뭔가 타격감이 느껴지는 한 마디였다.

슬슬 발동 걸리 듯 기분이 상하고 자존심에 금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선 열심히 사진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집에서는 사진을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취미란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만의 행위였을 뿐, 누군가와 나눠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주종이 스냅인 내게 자랑할 만한 멋진 풍경 사진 같은 건 있을 리 만무했다.


'취미는 취미일 뿐이지, 뭘 증명해 내란 거야?!'

하긴 낚시가 취미인 남편은 매번 버거울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아오곤 했다.

'쳇. 어이가 없네.'

보란 듯이 복수해 주고 싶었다.

어디선가 경쟁의식 같은 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멀스멀...


자존심이 상한 나는 귀찮은 고민에 빠져 버렸다.

그냥 지나치기엔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라진 열정... 초심... 사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내게는 자극이 좀 필요하다는 걸.


'공모전이라도 해야 하나?'

여태껏 딱히 사진 공모전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솔직히 자신도 없었지만) 사진에 태그만 달면 되는 SNS공모전 한 두 번 참여해 본 게 다였다. 뭐 지역 특산물 정도 받는 걸로 끝나는... 당연히 집에 자랑할 만한 결과물은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사진 활동을 하던 지인이 뜻밖의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시에서 주최하는 사진 공모전이 있는데 장소도 한정적이고 상금이 두둑하대.'

그랬다. 때마침 나에게 필요한 정보였다.

'도전해 보자!'


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모전의 주제는 '신도시'.

새벽 4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하는 그들의 시간을 담으러 나갔다.

공장들은 바쁘게 돌고 있었고, 거대한 건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점점 더 화려해지는 불빛들은 신도시를 향한 설렘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운동복 차림에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 거리는 난 반갑지 않은 불청객 같았다.

'너무 식상하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나는 조금 다른 반전을 기대했다.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보호하고 가꾸어 나가야 할 자연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자연을 공략하기로 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신도시'

다행히 좋은 날씨를 만났다. 구름도 적당했고, 개울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만났다.

그렇게 사진은 우연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좋은 의도가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왠지 긍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지인이 말을 건넸다. '누나, 축하해요! 대상 받으셨어요!'

뭔 소리지?! 어리둥절하면서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맨 위, 대상이란 타이틀 옆에 낯익은 이름, 바로 내 이름이 있었던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입선 정도는 기대했었지만 대상일 줄이야...!

반짝거리는 내 눈은 음흉한 표정으로 남편을 찾기 시작했다.

입가는 거만한 미소로 가득 찼고 호흡은 흔들렸다.


슬쩍 남편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최대한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리곤 보란 듯이 내 핸드폰을 쓱~ 내밀었다.

'이거 보여? 거기 맨 위에. 내 이름 보여?'(아무 감정 없이, 툭 던지듯이)

남편은 처음엔 별 관심 없어하더니,

몇 초 뒤,

내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화면을 확대해 보는 것이었다.

바로 '대상'이란 글자에서 멈칫!

그리고 하는 말, '이거 내 핸드폰으로 좀 보내줘 바바!'


그는 내게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자랑하는 듯 보였다.

대단한 공모전은 아니었지만 대상이라는 타이틀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함과 성취감이었다!




얼마 후, 난 시상식에 다녀왔다.

꽃도 받고, 상도 받고,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런 이벤트의 효과는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

그래서 생각했다.

올 해는 공모전에 도전하는 해로 정해 보면 어떨까 하고...

목표가 생기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면,

내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무언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번 공모전 중, 가장 중요했던 것 한 가지는...?!

나의 복수혈전은 성공이었다는 것!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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