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쌀과 맥주의 콜라보레이션, 도담도담
농업은 여전히 1차 산업으로 분류된다. 제조업이 고도화된 국가에서 농업은 부가가치 측면에서 외면을 받고 있지만 사실 단순 숫자로 판단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산업이다. 최근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농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많은 국산 농산물 중 곡물은 식량주권의 근간으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품목이다. 하지만 식문화의 발달과 값싼 수입 식재료로 인해 국산 쌀과 보리, 밀은 생산과 소비 진작에 한계를 맞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해답을 찾고 있지만 국가 경제와 물가, 대외적인 정책을 고려하면 정답을 찾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술산업과 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농업도 발달한 경우가 많다. 술은 1차 농업 생산물을 이용한 발효가공품이기에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현재 우리도 전통주와 국산와인 개발 등 다양한 방법과 세금경감 정책을 통해 1차 농산물의 가공을 촉진하고 있다.
전체 술시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맥주의 경우는 어떨까? 대중 술인 맥주에 쌀이 주재료로 사용된다면 국내 농산물 소비에 많은 부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쌀은 근본적으로 맥주를 위한 주재료로 부적합하다. 쌀에는 보리와 같이 전분을 발효당으로 전환해주는 효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알곡을 둘러싼 껍질의 두께가 얇아 맥아로 만들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맥주’라는 술에 사용하기에는 효율적인 곡물이 아니다.
물론 쌀전분이 들어간 ‘어드정트(부가물) 라거’라는 맥주 스타일이 존재한다. 익히 알고 있는 버드와이져, 스텔라 아르투아, 칭따오, 아사히, 카스, 테라 등은 보리맥아 100%가 들어간 맥주가 아닌, 쌀전분이 함유된 맥주다. 쌀, 옥수수 전분은 맥주 제조단가를 낮추어 줄 뿐 아니라 바디감을 가볍게 만들어 음용성을 좋게 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부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가장 대중적인 맥주에 국산쌀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요원한 일이다. 식용용 국산쌀을 맥주에 단순 적용하기에는 가격과 용도면에서 난관이 있다. 보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국내 쌀과 맥주산업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쌀로 맥주를 만들 수는 없지만 기술적 콜라보레이션은 가능하다. 농촌진흥청은 수년 간 기능성 쌀의 수요진작을 위해 고민을 해왔고, 맥주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진행했다. 바네하임 브루어리의 도담도담은 이를 가장 대중적, 상업적으로 실천한 융합의 결과물이다. 일반 식용쌀은 전분구조가 다각형이라 맥주양조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농진청은 전분질 구조가 둥근형의 연질미를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쌀을 연구했다. 이 중 도담쌀은 식이섬유와 저항전분(전분질이 몸에 흡수가 안되어 당뇨환자에 도움이 되는 전분)을 함유한 기능성 쌀로 품질, 기능성, 양조성에 적합한 품종으로 선정되었다.
국산 기능성 쌀과 맥주의 융합을 위한 실험에 과감히 뛰어든 곳은 바네하임이었다.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바네하임은 2004년부터 16년간 지역문화를 품은 고품질 맥주를 만들어오고 있는 브루어리다. 쌀이 들어간 맥주는 추가적인 양조 프로세스가 필요한데, 바네하임 김정하 대표는 이를 위한 연구와 투자를 진행했다.
일반적인 양조과정보다 장비는 물론 노력과 시간이 추가되지만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풍미와 부가가치 측면에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기능성 국산쌀을 첨가한 맥주, 도담도담은 전체 맥아량 중, 최대 40%를 국산쌀로 사용하면서 맛과 향은 대중을 사로잡았다. 2019년 호주국제맥주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으로 이를 증명하기도 했다. 다양하게 육종된 기능성 쌀의 상업화와 실용화를 위해 맥주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일반적인 어드정트 라거와 달리 도담도담은 상면발효맥주인 에일(ale)이다. 필스너 맥아를 기본으로 뮤닉, 카라아로마 맥아가 사용된, 브라운 에일 스타일인 도담도담은 5.4% 알코올을 가지고 있으며 밝은 갈색인 앰버(amber) 색을 띄고 있다. 맥아에서 오는 건포도, 코코아, 나무 향이 뭉근히 올라오며 효모에서 나오는 과일 에스테르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뒤에 살짝 나오는 바닐라 힌트는 반전과 같은 매력.
낮은 톤의 쓴맛과 단맛은 이 맥주를 마시기 쉽게 하며 가벼운 바디와 질감은 어느 음식과도 어울릴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한다. 실제 도담도담은 일반적인 음용에도 나무랄 데 없지만, 삼겹살구이, 족발, 잡채와 같은 한식과 매우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도담도담은 도담쌀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랑스럽게 자라는 모습을 뜻하는 순 우리나라 말이에요. 도담도담 맥주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아 국산 쌀 진작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바네하임 김정하 대표는 도담도담을 통해 크래프트 맥주의 가치인 로컬러티(Locality)를 지향하고 싶다고 말했다. 맥주의 재료를 모두 국산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지만, 국내 농산물의 적극적인 사용은 국내 크래프트 맥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자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해야하는 일이다.
농업은 우리에게 여전히 1차 산업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기초적인 산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하지만 농업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여러 방법 중, 술은 농업의 가치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분야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좋은 술문화가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
맥주는 가장 대중적인 술로 이제 올바른 술문화를 만들고 선도해야한다. 도담도담과 같은 크래프트 맥주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다. 농업이 4차 산업적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소비지향적인 맥주문화가 아닌, 사회공동체적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맥주문화를 만들기 위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품은, 국산 농산물과 맥주들의 맛있는 만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