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스타일의 맥주를 상상해보자
브라우어가 양조했던 미술의 풍미는 세상 사람들사이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The flavour of Brouwer’s art that Brouwer brewed, Will long be remembered by the world)
동그랗게 뜬 눈, 흰 연기를 뿜는 입, 과장된 표정을 짓는 남자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한 손에 담뱃대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입에서 나오는 건, 담배 연기다. 발밑 단지(jar)와 반쯤 열린 슈타인 글라스 속에는 아마 맥주가 들어 있을 것이다.
이 남자와 함께 있는 동료들도 범상치 않다. 옷차림으로 보아 상류층이지만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짙은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왼쪽 남자는 한쪽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뿜고 있고 중간에 있는 두 남자는 하늘을 보며 연기를 뱉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검은색 옷의 남자는 살짝 부끄러운 듯 엷은 미소를 짓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허름한 선술집에 모여 술담배를 즐기는 남자들의 시선은 사진처럼 우리를 향해 있다. 마치 엊그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셀카를 찍는 내 모습 같다.
아드리안 브라우어(Adrian Brouwer)의 대표적인 작품 ‘흡연자(The Smokers)’는 핸드폰 사진처럼 생생하다. 다섯 남자의 장난기 어린 표정과 행동은 이들이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알려준다.
아드리안 브라우어는 이 작품 속에서 예술가 길드인 성 루크 길드의 동료들을 묘사했다. 코로 연기를 뿜는 남자는 화가 얀 코셔(Jan Cossiers)이며 오른쪽 수줍은 표정의 남자는 화가 얀 다비츠(Jan Davidsz)다. 뒤에 있는 인물은 얀 리에븐스(Jan Lievens)와 유스 반 크래스빅(Joos van Craesbeeck)이며, 가운데 가장 방정맞게 앉아있는 남자는 바로 아드리안 브라우어 자신이다.
아드리안 브라우어는 17세기 초 현재 벨기에 플랜더스의 동쪽 지역인 오우데나르데에서 태어났다. 브라우어(Brouwer)라는 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몸에는 양조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아드리안 브라우어가 활동한 17세기 유럽은 격랑의 시기였다.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격한 대립은 결국 30년 전쟁으로 이어졌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절대 왕정이 굳건해지고 있었다. 또한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상인 부르주아가 새로운 계급으로 성장했다.
미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법, 이런 변화는 15~16세기를 풍미하던 르네상스 미술을 밀어내고 바로크라는 새로운 화풍을 낳았다. 바로크는 포루투칼어로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르네상스가 이성, 비례, 균형을 기준으로 삼는데 반해 빛과 색, 과장과 역동을 강조한다. 르네상스, 즉 진주를 비하하는 용어로 쓰이다 하나의 사조로 굳어졌다.
종교 개혁으로 상처를 입은 교황은 감성을 바탕으로 가톨릭의 교리와 권위를 전달하고자 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종교 미술을 이용해 흩어진 가톨릭 세력을 규합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바로크적 흐름은 가톨릭 중심국 이태리, 스페인 그리고 플랜더스 지역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비로 대상을 강조하고 역동적인 표정과 움직임으로 감정에 호소한 바로크 스타일은 짧은 기간 유럽 전역에서 대세가 된다. 그러나 가톨릭 국가와 달리 칼뱅교를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바로크를 다른 방식으로 소화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의 기지개를 켜고 있던 저지대 지역 화가들은 일상생활과 풍경을 바로크 스타일로 녹여냈다.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 같은 장르화의 탄생이었다.
17세기 플랜더스는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던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플랜더스 예술가들이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다. 화가들에게 자유로운 화풍과 그림을 구매할 부유한 상인들이 있는 네덜란드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아드리안 브라우어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램브란트, 반 다이크 같은 대가를 만나 교류했고 1626년 하를렘에서는 거장으로 인정을 받는다.
1631년 다시 플랜더스 앤트워프로 돌아온 아드리안은 성 루크 길드의 마스터로 활동하며 예술의 꽃을 피웠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와 램브란트도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반 다이크는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드리안 브라우어는 1638년 단 65점의 작품만 남긴 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겨우 33살이었다.
짧은 생애였지만 아드리안 브라우어는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세계는 하층민의 시공간으로 가득하다.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카드 게임을 하거나 싸움을 벌이는 군중들, 도축일에 모여 잔치를 벌이는 모습 등 일상을 사는 서민들이 주인공이었다. 뚜렷한 음영과 역동성을 통해 바로크 화풍을 충실히 반영했지만 카라바조와 루벤스처럼 압도적인 느낌은 아니다. 대신 부드러운 터치 속 군상들이 친근한 얼굴로 섬세한 호흡을 하고 있다.
그가 묘사한 사람들은 마치 김홍도의 그림을 보는 듯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이런 느낌을 받는 건, 개개의 인물들이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 즐거움, 분노, 질시, 비난 등 온갖 감정들이 그림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이렇게 과장되거나 생생한 표정을 표현하는 장르를 트로니(tronie)라고 하는데, 아드리안 브라우어는 이 분야의 최고봉 중 하나다.
평민의 일상을 두둑이 남긴 아드리안 브라우어 덕분에 우리는 당시 선술집의 풍경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민중의 와인, 맥주에 대한 흥미로운 구석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아드리안 브라우어가 양조한 미술 작품 중 대표적인 몇 점과 함께 17세기 맥주 문화 여행을 떠나보자.
선술집의 풍경(Tavern scene)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남자의 머리채를 쥐고 있다. 얼굴을 찡그리며 내뱉는 그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떨어뜨린 잔에는 미처 마시지 못한 맥주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남자의 손을 보니 머리카락이 모두 뽑혀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남자의 고통과 무관하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즐거워 보인다. 작은 창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노인과 한쪽에서 술을 먹고 있던 신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낄낄대고 있다. 이런 소란에도 요지부동하며 즐겁게 대화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남녀와 대비되며 왁자지껄한 선술집의 풍경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그림에서 치욕을 당하는 여인은 주인일 가능성이 높다. 선술집은 남편을 잃은 미망인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여관을 운영하고 맥주와 음식을 팔면서 생계를 꾸리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꽤 고급 선술집 같다. 손님의 행색도 농부가 아닌 중산층 이상으로 보인다. 흰 모자를 쓴 남자의 한 손에는 주철 재질의 자(jar)가, 다른 손에는 유리잔을 볼 수 있는데, 평범한 술집에는 보기 힘든 고급 제품들이다.
술집에서 잠든 노인(Old man in a tavern)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 조용히 잠이 들어있다. 발밑에는 맥주잔이 보인다. 거나하게 한 잔 하신 게 분명하다. 이 노인이 평민이 아니라는 것은 옷차림뿐만 아니라 맥주잔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잔은 탱커드(tankard) 또는 슈타인 글라스(stein glass)라고 불린다. 아름다운 장식이 부조된 세라믹 재질에 주철 뚜껑이 달린 이 잔은 상류층의 소유물이었다.
뒤에는 노인이 잠들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놀이에 빠진 남녀가 보인다. 여인은 느끼한 표정으로 유혹하는 남자가 싫지 않은 내색이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항아리가 있다. 저그(jug)라는 이름의 이 잔이 평민들이 흔히 사용하던 맥주잔이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돈만 있으면 같은 공간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양반과 평민이 겸상하지 않던 우리 문화와 사뭇 달라 흥미롭다.
동네 이발소 (village barbershop)
필경 이곳은 술집이다. 한쪽에는 술병과 잔이 보인다. 하지만 남자가 하고 있는 건 치료다. 발을 다친 남자는 고통으로 신음을 뱉고 있다. 셔츠에 뭍은 피를 보니 심각한 것 같다. 반면 한 구석에는 다른 사내가 수건을 두른 채 고개를 들고 앉아 있다. 희미하지만 면도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림에서 보듯이 선술집은 단순히 술만 마시는 공간이 아니었다.
유럽 선술집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제국 사이에 도로가 놓이고 장거리 여행이 가능하게 되자 중간중간 숙박과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등장했다. 중세를 지나며 마을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잔치가 벌어지거나 공연과 피로연이 열리기도 했고 그림처럼 이발과 치료를 하기도 했다.
18세기 산업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각각의 역할은 분리되기 시작했다. 숙박, 술, 음식, 치료, 이발, 공연이 모여 종합선물세트 같던 공간이 여관, 레스토랑, 펍, 병원, 이발소 같이 전문성을 갖춘 시설로 구분되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유럽에는 가스트호프(gasthof) 또는 가스트하우스(gasthaus)같이 여전히 옛 흔적을 간직한 곳이 있다. 당연히 그 지역의 맛있는 맥주도 마실 수 있다.
아드리안 브라우어의 고향 오우데나르데에는 벨기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양조장이 있다. 무려 1545년부터 14대째 이어온 로만 브루어리다. 1950년대 필스너를 만들며 큰 성장을 했지만 90년대부터 벨기에 스타일 맥주에 집중하며 정체성을 확립했다. 로만 브루어리는 맥주 속에서 아드리안 브라우어를 부활시켰다.
아드리안 브라우어 다크 골드는 8% 알코올과 불투명한 마호가니 색을 지닌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이다. 옅은 초콜렛 향 뒤로 흑설탕과 캬라멜 힌트가 묻어난다. 살짝 온도를 올리면 벨기에 효모가 창조하는 향신료와 건자두 향이 올라온다.
쓴맛과 단맛은 묵직하지만 균형을 이뤄 마시기 편하다. 입 안을 채우는 바디감은 얼핏 무겁지만 목으로 흐르는 느낌은 깔끔하다. 양조사의 피가 흐르는 아드리안 브라우어가 맥주를 만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아드리안 브라우어라면 맥주에도 감정과 해학을 표현했으리라.
바로크 스타일의 맥주를 상상해 보는 것, 그의 그림을 보며 아드리안 브라우어 맥주를 마시면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아드리안 브라우어가 21세기 초연결 시대에 던져주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