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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21. 2017

우리들과 요구르트 막걸리

분명 나의 전부였던 우리들.


대학 진학 후 여러 가지 일을 이유로 중고등학생들과 함께할 기회가 많았다. 국영수를 목적으로 만난 사이였지만 서로의 일상을 더 궁금해했다. 그 덕분에 바라보기만 했던 교단에 서보기도 했고, 어느새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는 무겁기만 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낯설지 않을 정도였다. '다름'을 나누면서 친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르기에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한 뼘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달라서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능을 치른 다음날, 교실에서 미래를 고민했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진 것이 없다.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잠들기 전에 몰래 먹던 라면이 원룸에서의 맥주 한 캔으로 바뀌었고, 겨우 눈을 떠 급식실로 아침을 먹으러 가던 발걸음이 발 디딜 틈도 없는 지하철 속에서 사라져 버린 정도. 그런 내가 그 라면도 발걸음도 잊어버리지 않고 곱씹을 수 있었던 건, 지금껏 만나온 많은 학생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참 운이 좋았다.



하나, 분명 나의 전부였던 우리들.

나를 선생님이라 칭하는 아이들에게 "그땐 다 그래",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내게 <우리들>을 보기 전으로 돌아가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저 위선적인 말들을 주워 담는 것이다. 내가 '별 것'이라고 칭했던 모든 것들이 내게도 우주였다.



윤가은 감독은 첫 장편으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뒀다. 작품을 끝까지 본 후 왠지 감독이 일필휘지로 이 작품을 완성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윤가은 감독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품을 후벼 팠다고 한다. 감독은 한 지면을 빌려, 급하게 쓴 트리트먼트가 좋은 프로젝트에 당선되었고 이 덕분에 <우리들>이 탄생했다며 많은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그 지면 덕에 나는 윤가은 감독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감독은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 너무 사사로운 것만 다루는 것은 아닐까를 고민했었고, 그 끝에 결국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그 사사로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그 사사로움이 우리의 전부임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었을까.



<우리들>은 내가 좋아하는 여타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관객들로 하여금 오프닝 시퀀스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를 확신하게 한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선'의 표정과 아이들의 가위바위보 소리를 통해 우리는 선이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한다. 카메라는 편협적으로 선만을 비추지만, 우리는 선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느낀다. 극이 진행되면서 그런 선에게 '지아'라는 친구가 생긴다. 그리고 그들이 빠르게 서로에게 마음을 내주었다가, 그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도 그랬었다. 내일의 등교를 고민하며 숱한 밤을 보냈었고, 쉬는 시간에 내 짝꿍이 앞자리의 친구와 단둘이 복도라도 나가는 날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는지 전전긍긍했었다. 내 방보다 조금 더 큰 교실이 내 우주였었고, 우주를 나누고 있는 이들의 모든 행동에 주목했었다. 자칫 나만 공전(公轉)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고, 선생님의 말씀보다 그 흐름을 이끄는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둘, 여전히 나의 전부인 그 사사로움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촌동생은 지난겨울 방학 동안 잠깐 내 자취방에 머물렀었다. 동생의 '오빠들'을 만나겠다는 목적 덕분에 나와도 많은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한 달 전 동생의 가장 큰 고민은 다가올 새 학기의 반배치였고, 매일 밤 어떤 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 어떠한 일 년이 펼쳐질 지에 대해 설레어하고 걱정했었다.

동생과 그 시간을 보내기 전에 <우리들>을 만났었다는 것에 크게 감사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면접의 굴레에 갇혀있던 내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동생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었다. 내게 <우리들>이라는 경험이 없었다면,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한 채 "그래, 그땐 다 그렇지 뭐"라는 한 마디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을 것이다.


누군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그거 별거 아냐'라는 성의 없는 말을 뱉는다고 생각해보라. 내 경우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 생각은 지극히 부정적인 결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단지 더 많은 시간을 살아봤다는 이유로 이런 짓을 범해 왔다.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감히 사사롭다 칭했다.

앞으로도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고 이러한 기억의 농간도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하나보다. 조금만 흐른 뒤에 뒤돌아보면 지금의 걱정이 사사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도 가능한가 보다. 그래도 결코, '그땐 다 그래'라는 말을 뱉진 않겠다 다짐했다. 그 시간을 지나와봤다는 이유로 다시 그 말을 뱉는다면, 내가 그토록 인상을 찌푸리는 바로 그 '꼰대'의 적나라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고, 훗날의 내가 사사롭다 칭할만한 고민도 반복될 것이고, 그때의 나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 그 사사로움이 전부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사로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면
걱정 말고 마셔도 좋을 것!



앞서 말했던, 기숙사에서 잠들기 전에 습관처럼 라면을 먹던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사감 선생님에게 걸리지 않을까를 고민했었고, 혼나지 않은 날이면 사감 선생님이 모르는 척해주는 줄도 모르고 함께 뿌듯해하던 친구들이다. 여러모로 많은 감정을 나눴던 아이들이고, 여전히 습관처럼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감정을 나누고 있다.


성인이 되고 마음껏 술을 먹어도 된다는 것에 익숙해지기 전에, 그들과 함께 건대에서 요구르트 막걸리를 마셨던 적이 있다. 내가 이쯤 되면 취하는 구나라는 깨달음의 근처에도 가보기 전이었고, 그 덕분에 도대체 집에는 어떻게 갔는지 처음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던 날로 기억한다. 물론 이 기억도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에이 이게 무슨 술이야!'라는 치기 어린 발언이 이어졌고, 이럴 거면 그냥 잔에 따르지 말고 통째로 들고 마시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쉴 새 없이 막걸리를 마셨었다. 덕분에 숙취 중에 으뜸은 막걸리구나 라는 사실을 체득했고,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을 겪어봤다.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가며 친구들과 어제의 무용담을 나눴다. 그중 한 명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자신이 불효자라며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 시끄럽다는 옆 테이블의 컴플레인에 싸움이 날 뻔했다는 이야기.

기억을 온전히 잃었다는 무서움보다는 이 대화 속에서 찾아가는 어제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설사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도 이들과 함께라면 마냥 웃고 떠들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그래도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헤어졌던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이 다짐은 계속되고 있지만.



대학에 다니며,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던 많은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나눌 수 있었음에 운이 좋았던 것처럼, <우리들>을 혼자 아트나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은 기회였다. 큰 예산과 스타 배우들을 앞세운 영화가 거의 대부분의 스크린을 차지해버리는 실정 속에서, 최소 예산과 숙련된 스텝, 배우들의 헌신적인 노력 속에 태어난 보물 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들>을 엔딩크레딧까지 챙겨보신 분이라면 윤가은 감독이 쓴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우리들> 제작기: https://goo.gl/xrZQ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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