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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28. 2017

미녀와 야수와 버드와이저

중요한 것은 어디서 맛보느냐의 문제.


<미녀와 야수>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간다. 예쁜 여자가 야수에게 사랑의 키스를 전하자 야수는 멋진 왕자님으로 변했고,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동화 같은 이 이야기가 (물론 동화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왔다.




하나, 관습에 대한 균열의 시도

익숙한 것을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 중점은 무엇일까. 빌 콘돈 감독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이용했다. <시카고>와 <드림걸즈>로 빛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미녀와 야수>로 이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곡들, 특히 Be Our Guest는 소름이 돋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노래들에 발맞춰 서사는 차근차근 진행된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벨(엠마 왓슨 분)은 보다 넓은 세계와 모험을 꿈꾼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괴짜'라는 칭호를 붙이지만, 벨은 세탁기를 발명하고 어린 여자아이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는 등 자신을 '괴짜'라 칭하는 당대의 관습에 대항한다. 전쟁 영웅인 개스톤(루크 에반스 분)의 구애에는 관심도 없다.

야수는 지적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을 매개로 야수와 벨은 친해지고, 그는 노래로써 그녀에게 구애한다. 또한, 벨의 아버지인 모리스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개스톤의 벗인 르푸는 동성애자로 그려진다.



작품 내 여러 가지 설정을 통해 관습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미녀와 야수>를 관객들이 다시 봐야만 하는 이유를 작품 내적으로도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둘,  그래도 '스톡홀름 신드롬'

<미녀와 야수>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전형이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의 상황을 유발한 상대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하며, 스톡홀름 지역의 은행강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강도는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고, 6일 뒤 풀려 났을 때 그들은 강도의 편을 들었다. 인질이 된 직원들이 범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며 그들을 옹호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대신 야수의 인질이 되기로 결심한 벨은 야수와 감정을 나눈다. 처음엔 두려움에 사로잡혀 성을 탈출하고자 하지만 늑대 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야수를 놓고 갈 수가 없었다. 과연 벨이 야수의 인질이 되지 않았다면, 까칠하고 도도한 그녀가 야수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스톡홀름 신드롬을 이용한 작품은 꽤 많다. 하지만 범인과 인질의 감정적 공유라는 소재를 동화적으로 풀어낸 <미녀와 야수>처럼 성공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맛보느냐

 


지난겨울에 뉴욕으로 여행을 갔었다. 여행을 가서 현지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 유독 뉴욕엔 도착하자마자 닭발과 순댓국 생각이 났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밤 야식을 먹었다. 한국에서 고이고이 싸간 라면과 버드와이저! 내 뉴욕 여행 파트너였다.

전 세계 판매량 30위에 드는 버드와이저는 한국에서도 숱하게 마시는 맥주이다.  군더더기 없는 청량감과 탄산은 맑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뉴욕이라는 장소가 주는 생소함과 낯섦이 큰 영향을 끼쳐 매일매일 색다른 맥주를 마시는 듯했다. 물론 한국에서 판매하는 버드와이저는 OB맥주에서 제조되기에 뉴욕의 그것보다 훨씬 맛이 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맛보다 더욱 중요했던 건 내가 어디서 맥주를 마시고 있느냐였던 것 같다.


<미녀와 야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꼭 극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웅장한 사운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고리타분한 관습이나 복잡한 이야기들은 미뤄두고, 연인과 손을 잡고 보기 좋은 작품이다. 마주 잡은 손을 다독거리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같이 느끼기에 적당하다. 영화는 체험의 예술이기에, 결국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그때의 상황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 즐기느냐의 문제이다.

날이 좋은 오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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