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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28. 2017

여교사와 크림생맥주

파격보단 충격, 발칙보단 흉측


<여교사>는 김하늘과 유인영의 파격 노출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작품이었다. 대다수의 관객이 제목과 카피를 보고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두 여배우의 직접적인 노출은 없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다. <거인>을 비롯한 그의 필모를 고려했을 때, 이 안엔 분명히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물론 그것이 희미하게 읽히긴 하는데, 또렷하지 않아서 난감하다.





하나, 효주와 혜영의 표정

효주(김하늘 분)는 무서우리만큼 표정이 없다. 계약직 교사로 근무하는 그녀는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는 작가 지망생 남자 친구(이희준 분)와 함께 산다. 그녀가 그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옅게나마 짐작할 수 있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가 짐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기도 힘든 효주의 벅참은 어두운 표정을 통해 드러나고, 그런 그녀는 혜영(유인영 분)의 생기 넘치는 표정이 미웠을 것이다.

효주의 학교로 발령받아 온 신임 교사 혜영은 학교 이사장의 딸이다. 그녀는 걱정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 마냥 밝기만 하다. 효주가 학교 선배임을 알고는 그녀에게 근거 없는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허나, 그 근거 없음은 효주에게 화살로 다가왔고, 효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혜영에게 메몰차게 군다. 나는 이렇게 세상이 벅찬데 너는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고 울부짖는다.



효주의 '너는 왜'라는 생각은 결국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방향으로 나아간다. 효주는 혜영에게서 재하(이원근 분)라도 빼앗아 보리라 다짐한다. 효주가 생각하는 '스승과 제자의 바람직한 관계'를 내세워 보다 흉측한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효주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효주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혜영의 것을 빼앗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 끝에서 결국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지금껏 범해 보지 못했던 가장 흉측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엔딩 시퀀스에서 효주의 표정은 극의 어떤 장면에서보다 무덤덤하다. '표정이 없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표정이다. 자신의 위치가 이 정도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임을 알고 있다는 듯이.



둘, 그럼에도 효주가 이긴 것이 아니다.

내 멋대로 추측해보자면 김태용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계급적인 갈등(금수저와 흙수저로 칭해지는)을 감정의 문제로 풀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목표가 실현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하라는 캐릭터의 애매모호함이다.



체육관에서 재하가 잠결에 효주에게 키스하는 것을 목격한 관객들은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재하가 사랑했던 상대는 혜영뿐이며,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효주를 사랑한 척한 것이었다. 하지만 재하가 효주가 아닌 혜영을 사랑한 것에 그녀들 간의 계급차가 영향을 끼친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재하와 혜영의 사이에 열렬히 사랑에 빠질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혜영은 자신의 계급과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해 효주와 재하를 가지고 놀았으며 그 덕에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다시 엔딩으로 돌아가면 결국 효주가 원했던 것은 재하가 아니었음을 관객도, 그녀도 알게 된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을 혜영의 위치를 탐한 것이었다. 그리고 감독은 이것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환기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관객이 처참한 혜영의 얼굴을 목격하였더도, 그것에 비해 효주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였더라도, 효주가 이긴 것이 결코 아니다.



크림과 거품의 한 끝 차이



2-3년 정도 전인가, 크림생맥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물론 지금도 꽤 많은 펍에서 크림생맥주를 팔긴 한다만 인기는 시원찮다. 크림생맥주라는 것이 나오기 전에는 주로 2000cc 혹은 3000cc의 맥주를 시켜서 잔에 나눠먹었다. 맥주를 나눠 따를 때, 거품이 많이 나지 않아야 친구들의 야유를 피할 수 있었다. 맥주는 가득히 그리고 거품은 얇게 한 줄만! 이렇게 맥주를 따를 때마다 'A급'이라는 우리만의 칭찬도 오갔었다.

크림생맥주가 한참 유행할 때는 2,3000cc의 맥주를 시키는 일이 드물었다. '여기 크림생맥주 몇 잔이요!'라는 주문이 익숙했고, 각자의 컵에 크림이라고 불리는 거품이 꽤 두껍게 얹어진 것을 행복하게 마셨었다. 이제 거의 그것을 마시지 않는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크림과 거품은 도대체 무슨 차이였을까. 만약, 그냥 생맥주를 주문했는데 거품을 두껍게 얹어줬다고 생각해보라. 여기 알바생 맥주 참 못 따르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기존의 맥주 탭을 미세한 거품을 내는 것으로 바꿔서 거품을 얹은 것이 크림생맥주이다. 부드러운 거품이 좋은 촉감을 주어 꽤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하게 기린 프로즌 나마 역시 슬러시 형태의 거품으로 한때 큰 인기를 누렸었지만, 지금은 둘 다 시들하다.


작은 차이가 많은 변화를 불러온다. 같은 거품도 어떤 탭으로 따르느냐에 따라 크림이라는 이름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사실 재하라는 캐릭터만 조금 바뀌었어도, <여교사>에 대한 평은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홍보 초창기에 쓰인 '김하늘과 유인영의 파격 노출'이라는 카피만 없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거인>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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