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정교하게 짜고자 한 틀이 많은 것을 가둬버렸다.
나는 크게 티 내진 않지만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국영화를 거의 다 챙겨보는 편이며, 그 캐릭터들의 한계에 매번 안타까워하는 관객이다.
'미스터리하지만 흥미진진하진 않은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에 대한 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다. 엄지원, 공효진 배우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는 <미씽>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력이며, 그들이 연기한 '워킹맘'과 '보모'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에 드러나는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보여줬다. 그래도 꽤 많은 부분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눈에 띈다.
하나, 그녀들의 모성(母性)
<미씽>은 이혼 후 혼자 다은을 키우는 워킹맘 지선(엄지원 분)과 중국에서 온 보모 한매(공효진 분)의 목소리로 전개된다. 지선은 한매가 다은과 함께 사라진 후 실종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지만, 전 남편과의 양육권 다툼으로 인해 아이가 실종된 사실을 숨긴다. 이후 지선은 홀로 한매를 쫓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스릴러가 시작된다.
지선과 한매는 출신도 계층도 모두 다른 캐릭터이며, 그 둘을 엮는 것은 오로지 '모성'이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 의해 자신의 아이를 속절없이 잃어야 했던 한매와 힘든 생활 속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오로지 다은이밖에 없었던 지선에게 있어 모성은 환경이 만들어낸 후천적인 결과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두 여인은 절실하게 아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결국, <미씽>의 두 주인공은 모두 피해자였다. 앞서 언급했던 '미스터리하지만 흥미진진하진 않은'이라는 수식어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작품의 서사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매에게 어떤 비밀이 있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게 한다. 허나, 그 비밀이 아이와 관련된 아픔이라는 것은 너무 쉽게 들켜버린다. 그래서 작품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둘, 그녀들의 시간
감독은 두 주인공을 하나로 합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확신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한매의 사진에 적힌 사진관을 찾아 밤새 운전을 하고 간 지선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안갯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는 아이를 안은 여자가 서있고, 그녀는 한매일 것만 같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여자의 얼굴은 지선이다. 다음 씬에서 지선은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고, 앞 장면이 꿈이었음을 암시한다. 보통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서 이러한 장면은 범인에 대한 단서나 사건의 해결을 암시하는 용도로 소비된다. 하지만 <미씽>을 끝까지 본 관객이라면 알겠지만 이 장면과 사건의 해결은 연관이 없다. 그냥 맥거핀일 뿐일까. 그러기엔 너무 아까우리만큼 인상 깊은 신이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이언희 감독이 '지선의 얼굴이 한매의 얼굴을 흡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
다은이 실종된 5일의 시간은 자막으로 하여금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제시되지만 알고 보면 꽤 이상하다. 지선은 다은과 한매가 없어짐을 깨닫고 난 후 하루가 지나서야 경찰서를 찾는다. 이후 그녀는 한매의 외국인 등록증에 적힌 주소를 통해 한 중국 여성을 찾아가고, 쫓겨난다. 그리고 다음 신에서 잠에서 깬다. 이 부분의 밤낮을 찬찬히 체크해보면, 이 작품은 판타지적 시간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미씽>을 두 번째 봤을 때서야 시간 흐름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꼈고, 이후 감독의 인터뷰를 확인하고 나니 그녀가 집중했던 것은 사건과 서사의 전개가 아닌 두 캐릭터의 연결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지선과 한매의 시간은 오로지 둘의 심리가 가까워지는 것에 맞춰져 있다.
가끔 맥주를 먹고 싶은데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과일소주, 이슬 톡톡이나 부라더 소다 등 술맛 나지 않는 술이 꽤 많다. 이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이싱이다. 우선 자몽부터 청포도, 소다맛 그리고 시즌 스페셜 수박까지 다채로운 선택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날씨가 좋을 때 학교 노천극장에서 친구들과 빨대를 꽂아 마시던 추억도 함께 있다.
왠지 과일소주나 부라더 소다는 잔에 따라 마셔야 할 것 같아 너무 거추장스럽고, 목은 마르고 달달한 건 마시고 싶은 밤에 제격인 음료다. 달달하고 시원하고 톡 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없을 것 같은 막걸리다. 물론 아이싱을 취할 만큼 마셔본 적도, 그럴 생각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미씽>을 혼자 집에서 보고 관련 글을 몇 개 읽어본 후,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번 멈춰가며 작품을 보는 동안 아이싱을 마셨다. 딱 그거였다. 목은 마르지만 꽤 깊은 생각을 요하는 작품이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켤 순 없었던 순간.
이언희 감독은 <미씽> 개봉 후, 한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응당 이래야 한다'는 편견과 싸우고 싶었다고 밝혔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녀가 싸우고자 했던 편견이 <미씽>을 살짝 가둬버린 것 같다. 또,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여성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베테랑>과 <마스터> 같은 한국 영화(액션씬 가득한 오락영화)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웃으면서 볼 수 있게! 아마 크게 망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