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다는 것까지 상정한 미래,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 흔한 액션신 하나 없는 SF영화가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울림을 남겼다. <컨택트>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잘 합쳤다. '외계인'하면 <에이리언> 시리즈와 '전투'의 이미지부터 생각해내는 나는 <컨택트>에서 <E.T.>의 자리를 넘보려는 위압감을 느꼈다. <E.T.>보다 조금 복잡한 화법을 선택했지만 난해하지 않았다.
하나, 소통의 전제가 언어가 아님을
<컨택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소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
일단 <컨택트>는 소통의 전제가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와 이안(제레미 레너 분)이 헵타포트와 소통하기 위해 전제한 것은 '시도'이다. 루이스는 헵타포트 뿐만 아니라 헵타포트를 적대시는 사람들과도 소통을 시도한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대책을 목표로 뭉친 전 세계 사람들은 화상회의를 하며 각각 분할된 화면에 잡히고,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모였지만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진다. 헵타포트어 해석이 지지부진하자 결국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교신을 끊어갔다. 언어로써 소통한다는 것, 우리가 헵타포트어를 해석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상정한다. 하지만 루이스와 일행들은 언어를 언어로만, 타자를 타자로만 바라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며, 그 시도는 결국 장벽을 넘어선다.
둘,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미래
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것이다. 세 가지 문장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은 각각 다르다. 우리는 별 다른 설명이 없어도 세 문장이 나타내는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언어에 드러나는 시제의 차이이다.
영화는 현재 진형형의 시제로 흘러가기에, 관객들은 헵타포트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루이스의 고군분투기의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장면을 보며 그녀의 회상이겠거늘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딸을 잃은 안타까운 과거를 지녔다고 짐작한다. 허나, 이것은 회상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과거가 아니었다. 회상이란 한 번 경험한 일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그 모든 신들은 루이스의 회상은 맞지만 과거는 아니다. 미래의 경험이다.
'미래를 회상한다' 가능한 문장인가. 처음엔 그녀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 판단했으나, 그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닌, 이미 경험한 일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본다'라는 말보단 '미래를 회상한다'라고 하는 게 맞다. 그녀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 어디인지도 불명확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예측하기 어려운 시제 속에 있다. 그녀는 헵타포트와의 소통에 성공하며, 시간의 처음과 끝을 명확히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딸에게 'Hannah'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이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설명한다. 결국 처음과 끝이 같은 한나의 이름처럼, 그녀가 존재하는 시간은 순차적이지 않고 동시적이다. 그리고 그녀는 미래를 알고도 현재를 선택한다. 담담히 견뎌낼 준비를 한다. 운명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다. 이에 좌우되지 않는 단단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게 이름이 뭔지가 무슨 소용이겠니!
수제 맥주집이라는 곳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Weizen'이라고 쓰인 메뉴를 보고, 친구와 뭔지 모르겠지만 마셔보자고 합의했다. 한 잔을 마신 후, '원래 맥주는 보리가 주인데 밀로도 만든대! 밀맥주는 더 가볍고 향도 좋다더라! 여기도 밀맥주가 있지 않을까?'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된 일이라 흐릿하지만 주변 테이블은 꽉 차있었고, 치기 어린 스무 살 우리는 참 시끄럽게도 대화했다.
그 후 다른 친구와 다른 수제 맥주집에 갔을 때, 'Weizen'이라는 메뉴 옆에 '바이젠, 상면발효 독일 밀맥주'라는 친절한 설명을 봤다. 왜 저번 맥주집의 메뉴판은 그렇게 불친절했는지 원망스러웠다. 물론 밀맥주에 대한 지적 수준이 그 친구와 비슷했다는 점은 크게 다행이었다.
바이젠은 '흰 맥주'라는 뜻의 독일어 '바이스비어(Weissbier)'라고도 불린다. 주로 길쭉한 잔에 따라 마시며, 다른 갈색빛의 맥주에 비해 색깔이 연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이젠이 밀맥주라는 것을 몰랐던 때의 펍에서는 그렇게 맥주가 맛있더니, 이를 깨닫게 된 펍에서는 한 잔 이상 마시기가 싫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바이젠이든 밀맥주든 바이스비어든 뭐가 중요하겠나 싶다. 물론 상당히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마셔보고 싶었던 밀맥주를 생각지도 못한 때에 마셨었고(물론 밀맥주 인지도 몰랐지만), 참 맛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거면 된 거지!
안녕하세요든, 헬로우든, 니하오든, 구텐탁이든, 봉주르든 중요치 않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려는 표정과 손짓에서 우리는 이미 시도라는 것을 한다. <컨택트>는 바로 그것이 소통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전제임을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