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씁쓸하다.
최고의 로비스트가 만들어내는 통쾌한 정치 드라마를 상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씁쓸했다면, 슬로운에 공감하지 못해서일까 혹은 너무 많이 이입해서일까. 그녀가 만들어낸 2시간 12분간의 드라마는 촘촘한 짜임새와 속도감을 자랑했고, 이 정도 속도로 결승점을 통과한다면 그 짜릿함이 엄청날 것만 같은데, 생각보다 허무했다. 그래도 제시카 차스테인이 숨 막히게 끌고 가니, 몰입에 대한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작품이다.
하나, 일당백 차스테인
영화의 초중반까지 작품 몰입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작품이 총기 규제라는 큰 논란을 다루는 정치 드라마인 데다가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 외에도 대여섯 명의 핵심 인물을 파악해야 했고, 그들이 마구잡이로 뱉어대는 전문용어가 담긴 대사들도 한 몫했다. 허나, 어느 정도 인물들의 관계가 파악되고 극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서부터, <미스 슬로운>은 완벽한 흡입력을 보여준다.
<미스 슬로운>은 아주 빠른 영화다. 슬로운의 발성부터 완벽한 대사와 쉴 틈 없이 타이트한 신들의 연속이 극에 가속도를 붙인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과 다소 무거운 주제, 어쩌면 예측 가능했을 반전에도 불구하고 <미스 슬로운>을 지루하다 평하지 않는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슬로운은 흠잡을 데 없는 승률과 전적을 자랑하는 로비스트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달려드는 인물이다. 고용주의 목적 달성을 위해 준법과 위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반드시 목적을 이뤄내고야 만다. 총기 규제에 대한 이견으로 현 직장을 나오고, 자신의 신념에 맞는 곳에서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작전을 수행한다. 슬로운 역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의 걸 크러쉬를 전면에 내세울만한 내용이다.
둘, 여성을 내세운 이 작품이 여성을 그려내는 방법
<미스 슬로운>이 '미스터 슬로운'이었다면 어땠을까. 작품은 크게 달라졌을까. 작품은 슬로운이 총기 규제라는 문제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겪게 되는 일들과 그 끝을 맞이한 슬로운의 모습까지를 그려낸다. 빠른 속도로 군데군데 빠짐없이 잘 묘사하지만 정작 슬로운의 그 '신념'에 대해서만 유독 인색하다. 단지 그녀가 '옳은 일'이라고 믿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라는 설명뿐이다. 매춘을 하고 약물을 복용해 가면서도 그녀가 이토록 승리하려고 하는 이유를 그녀의 신념이라기보다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정도다. 이로 인해 그녀는 그녀의 동료들마저 수단으로써 이용한다.
성공을 위한 일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매춘을 일삼는다는 설정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리 성공이라는 욕망에 매진하는 여성이라 한들 성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는 이야기일까. 이토록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도 남성의 부재는 견디지 못한다는 메시지일까. 아니면 여성이 이만큼 성공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설정일까.
또, 작품에서 배신자는 계속 여성이다. 남성들은 극 내내 음모를 꾸미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배신을 일삼진 않는다. 또한 직장을 잃은 슬로운에게 도움을 준 슈미트와 위기에 처한 에스미를 구해준 남성, 재판 중 슬로운의 도덕성을 지켜준 남성 매춘부를 보면 알 수 있듯, 극 중 남성은 '구원자'로 드러나기까지 한다. 그래서일까, 배신자를 척출하고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슬로운은 남성의 옷을 입은 여성으로 보인다.
섣부른 욕심이 낳은 씁쓸함과
싱거워도 꼭 필요한 위안
미국 여행 당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던 유명한 가게에서, 계획엔 없었던 브루클린 브루어리에 꼭 방문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줄을 길게 서야만 맛볼 수 있다는 유명한 스테이크 집에서, 고기보다 맥주에 흠뻑 반하고 왔다. 나는 맥주를 좋아는 하나 잘 알지는 못한다. 그냥 먹어봤던 맥주는 '이런 맛이더라'를 기억할 뿐, 맥주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에 브루클린 브루어리가 그토록 유명한지도 모르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왔으며, 메뉴판에 브루클린 라거가 있길래 '브루클린에 왔으면 먹어봐야지!'하고 한 잔 시켰을 뿐이었다.
라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왠지 페일 에일에 가까운 맛이었다. 색깔은 진한데 맛은 가벼웠고, 시큼한 향이 살짝 나면서도 그 향 조차 무겁지 않았다. 평소 에일을 좋아하는 터라, 빠르게 한 잔 마시고 한 잔 더 마셔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가 다다음날인가 브루클린 브루어리에 갔다.
브루클린 브루어리에서 패기롭게 코인을 많이 바꾸고, 여기 있는 맥주를 다 먹어볼 테다!라는 생각으로 맥주를 시켰다. 마감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터라, 더 많은 맥주를 먹어보기 위해서는 손과 입을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게다가 여기는 길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현지에 사는 친구의 말 때문에, 앉은자리에서 다 못 마시면 이제 못 먹어볼 맥주가 될까 봐 열심히 속도를 냈다.
그래서일까 브루클린 라거를 한 잔 마셨을 때처럼 오호라 싶을 만큼 기억에 남는 맥주가 없다. 오후 다섯 시쯤 브루어리에서 쫓겨나자, 취기는 잔뜩 올라있고 숙소는 멀고 에라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딱 한 잔만이라도 천천히 마셔볼 걸 그랬다. 이것저것 섞어가며 마시느라 무슨 맛인지 기억에 못 남길 바엔 말이다. 그래도 브루클린 라거가 만들어 준 새로운 여행코스였다는 것을 위안삼아 씁쓸함을 달래 본다. 다음에 꼭 다시 가야지.
결국 슬로운은 성공했지만 <미스 슬로운>은 왠지 모르게 씁쓸한 엔딩이다. 교도소에서 나온 그녀가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껏 관객들에게 인색하게 굴었던 그녀의 삶과 신념에 대해 그녀조차 이제야 생각해보려고 하는 듯한 의지가 보이긴 한다. 그걸로 역시 씁쓸함을 조금 달래야겠다.
미국 동부에 다시 간다면 브루클린 브루어리에서 하루 종일 맥주를 천천히 마셔볼 것이며, 바쁜 일정에 쫓겨 겉만 핥았던 워싱턴도 제대로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