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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12. 2018

단편영화와 모닝 맥주

<몸값><완벽한 도미 요리><서울집>

요 몇 주 동안, 가는 주말을 잡아두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아침 일찍 조조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미뤄뒀던 전시를 둘러보며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번 달의 첫 휴일에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보겠다는 패기로 대구행 KTX에 몸을 싣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잘만 갔다. 가는 시간이 안타까워 시계를 자주 보면, 볼 때마다 훌쩍 시침은 크게도 움직였다. 시간을 의식하지 말자며 잠깐 눈을 감으면, 긴 낮잠에 빠져 해 지는 것도 못 보기 일쑤였다.

고군분투 끝에, 주말의 시간은 더 빨리 간다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 주 일요일,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일엔 절대 할 수 없는 걸 해보자고 결심했다. 눈 뜨자마자 맥주 마시기.


지난 주 일요일, 침대에서 눈 뜨자 마자 마신 맥주


주말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단편영화 몇 편을 다시 보고, 무의식적으로 다음에 이어질 대사와 장면을 곱씹다가 낮잠에 빠졌다. 결국 이번에도 일요일의 해가 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




단편영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영화제에서 단편섹션을 관람하고 나면 상영 중간중간에 박수를 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상영관에서, 모든 관객들이 그러진 않지만) 깜깜한 상영관 안에서, 각 작품의 엔딩크레딧에 맞춰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는 그 소리가 이상하게 참 좋다.


정말 잘 만든 단편영화를 만나면, 짧게는 무려 10분 만에도 엄청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 아는 내용인데도, 꼭 다시 보고 싶은 순간이 온다. 어디서든 잠깐 짬만 내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세 작품을 추천해본다.


1. <몸값>(2015), 이충현 감독

14분 정도 되는 이 작품은 원테이크로 완성됐다. 언젠가 감독이 GV를 통해 사실 한 번 끊고 갔다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작품에선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 사실 작품이 끝나고 나서야, '헐 원테이크였네?' 싶기도 하다

대놓고 처녀를 원하는 남자와 모텔 방에서 몸값 흥정에 들어간 여고생. 제목부터 원테이크까지. 단편 영화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다.

유수의 영화제에 이름을 올린 탓(?) 덕(?) 일까. 현재 온라인에서 스트리밍 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2. <완벽한 도미 요리>(2005), 나홍진 감독

재능 없는 장인의 무한 도전 공포물. 부디 장인이 도미 요리를 완성할 수 있길 바라면서도, 웬만하면 이제 그만했으면 싶기도 한 아이러니. 진짜 무서운 건, 내 안에 있는 열정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메시지를 남긴다.

유에포(youefo)에 가면 나홍진 감독의 이 완벽한 9분 스릴러를 볼 수 있다.

*<완벽한 도미 요리> 보러 가기 >> http://www.youefo.com/film/707



3. <서울집>(2013), 조현훈 감독

<서울집>은 <꿈의 제인>의 프리퀄같은 느낌을 준다. 주인공 '선경'(박주희 분)은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이민을 서두르자, 수시 시험 때문에 잠깐 머물렀던 '오빠' 가 사는 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빠의 전처에게 편지를 쓴다.

선경의 편지는 <꿈의 제인>의 '소현'(이민지 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까지 네이버 인디극장에서 볼 수 있었는데, 현재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플레이되는 듯하다.

*<서울집> 하이라이트 영상 >> http://tv.naver.com/v/279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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