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추천보다 중요한 건 내 미각이 그 향과 화해했는가이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쑥이나 냉이가 땅의 봄을 알린다면, 바다의 봄은 멍게의 붉은 빛깔로부터 시작된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껍질 탓에 바다의 파인애플이라 불리는 이 기묘한 생명체는 많은 이들이 식물성 군집체로 오해하곤 하지만, 사실은 엄연한 동물이다. 심지어 발생학적으로는 척추동물의 조상격인 척색동물에 속한다. 유생 시절에는 올챙이처럼 바다를 헤엄치다 성체가 되면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뇌마저 소화해 버린 채 정적인 삶을 선택하는 멍게. 이 극적인 생애만큼이나 멍게가 품은 맛 또한 강렬하고도 반전이 가득하다.
누군가에게는 천상의 바다 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쌉싸름한 갯비린내일 뿐인 이 극단적인 호불호 사이에서 멍게는 단순히 해산물이라는 분류를 넘어, 한 사람의 미식적 취향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증명하는 척도가 된다. 특히 찬바람이 물러가고 물살이 따뜻해지는 이 시기의 멍게는 겨울내 응축했던 생명력을 폭발시키며 비로소 미식의 영역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하지만 최근 소매 시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멍게의 모습은 종종 미식가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모든 멍게가 그런 것은 아니나, 일부 시장에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손질용으로나 쓰여야 할 비실비실한 개체들이 일반 활멍게의 탈을 쓰고 버젓이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멍게가 가진 당당한 위용을 아는 이들에게 이러한 상품들은 못내 서글픈 광경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꼬박 2년을 바다에서 견뎌낸 정상적인 멍게는 성인 여자의 주먹만한 크기에 알이 꽉 차 있어야 마땅하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껍질을 갈랐을 때 뿜어져 나오는 주황빛 광채는 그 긴 시간을 인내한 생명만이 보여줄 수 있는 훈장과도 같다. 사실 성장이 더뎌 왜소한 개체들은 껍질째 유통되기보다, 공장에서의 정밀한 손질 작업을 거쳐 알맹이만 정갈하게 담긴 가공 제품으로 유통되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다.
이렇게 제대로 자란 멍게를 만났다면 손질은 의외로 간단하다. 멍게의 위아래 돌기 부분을 칼로 과감히 잘라낸 뒤, 몸통의 결을 따라 가위집을 내면 단단한 껍질과 주황빛 속살이 부드럽게 분리된다. 이때 멍게 특유의 향이 농축된 내장과 뻘을 가볍게 제거하고 찬물에 헹궈내면 바다의 정수가 담긴 한 접시가 완성된다.
가장 순수한 즐거움은 갓 손질한 알맹이를 초장에 살짝 찍어 먹는 것이다. 매콤새콤한 초장이 멍게의 쌉싸름한 첫맛을 감싸 안고, 이내 입안 가득 번지는 청량한 바다 향은 그 자체로 봄의 절정이다. 조금 더 깊은 여운을 즐기고 싶다면 멍게 젓갈이 훌륭한 대안이 된다. 소금에 절여 숙성된 멍게는 특유의 감칠맛이 응축되어, 갓 잡은 생물과는 또 다른 농밀한 풍미를 선사한다. 여기에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신선한 채소, 김 가루를 곁들여 멍게 비빔밥으로 즐기는 순간, 멍게는 단순한 안주를 넘어 한 끼 식사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 잡는다.
우리가 산지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멍게의 메카라 불리는 통영과 그 대척점에 선 동해는 같은 양식 멍게라 할지라도 시장의 대우가 천차만별이다. 통영 멍게가 첫맛의 청량함 뒤에 기분 좋은 단맛을 남기며 깔끔하게 마무리된다면, 동해 양식 멍게는 끝맛에서 씁쓸함이 강하게 올라오고 수율 또한 아쉽다. 결국 미식의 정점은 산지의 완숙함과 찰나의 신선함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결국 멍게를 즐긴다는 것은 그 기묘한 외형과 강렬한 향을 포용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름만 같은 양식 멍게라 할지라도 통영의 풍요로움이 빚은 것과 동해의 거친 물살이 빚은 것은 엄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식물처럼 뿌리를 내렸으나 동물로서의 생명력을 품은 이 붉은 생명체가 건네는 가장 빛나는 상태를 포착해내는 것. 그 섬세한 선구안이야말로 멍게라는 독특한 인연을 대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