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옛 초량동 골목의 마지막 기록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의 추억을 화석처럼 새기고자 이 글을 써 보려 한다.
몇 해 전 겨울방학 끝자락에 남편의 고향,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이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아들들과 고향을 둘러보고 싶어 했다. 특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즈음에 살던 집과 그 동네를 그리워하며 아들들과 어릴 적 아빠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 갑자기 서둘러 온 가족이 부산을 방문했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여행이 아닌 방학이 끝나기 전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어 즉흥적으로 결정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백팩을 메고 기차로 출발했다. 수서역에서 출발, 부산역 도착 후 초량동, 자갈치시장, 남포동, 국제시장, 해운대 등을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출장으로 부산에 가끔 내려갔지만 처음 가는 가족여행은 의미가 남달랐다. 최대한 간편하게 각자의 짐을 백팩에 넣어 메고 다녔다. 걸어다니는 여행이 수월하게 하고 애들도 자기것은 스스로 챙기게 했다.
부산여행은 일부러 초량동을 추천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초량동에 갔을까?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단지 남편의 고향이라서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도 남편의 추억 속에 있던 초량동의 옛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며 그 기록을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부산에 살았다. 남편의 어린 시절은 살던 집과 개 이야기가 있었다. 마당에 커다란 개를 한 마리 키웠고 남편은 몸이 가볍고 날렵해서 마당 옆 담장을 뛰어넘어 다녔다고 했다. 남편의 추억 속 담장과 마당이 있는 집 이야기는 머릿속에 그려졌고 기회가 있다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남편은 수십 년 전 떠난 이후 처음 가 본 초량동의 추억으로 남아있던 증거들을 두 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초량동은 부산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기에 우리는 그곳까지 걸어갔다. 나 역시 그 시절 그 동네를 실물로 보면서 그동안 말로만 듣던 장면과 오버랩되어 머릿속 미완성의 장면들이 마침내 퍼즐을 맞추듯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동네 전경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처럼 오래된 동네였지만 여기저기 정감이 가는 풍경이 가득했다. 우린 몇십 년 전 모습을 재현한 박물관에 구경온 것 같았고 남편은 추억과 연관된 장소와 풍경들을 아이들에게 가리키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워 보였다.
도시화될수록 사라지는 정감 있는 마지막 모습들이 그날의 초량동에 있었다. 지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굴뚝이 있는 목욕탕도 있었고 좁은 골목들도 볼 수 있었다. 남편이 살 때부터 있었던 집 근처의 미용실도 그대로 있었다. 남편 말로는 그 당시 살았던 집으로 통하는 골목의 풍경도 그대로라며 가슴 뭉클해했다. 그동안 초량동은 묵묵히 수십 년을 지키고 있었다. 어쩜 이 날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가끔 어릴 때 살던 집이라던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섬네일 같은 장면 외에는 더 깊숙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었다. 남편은 아마도 그런 답답한 기억을 현실로 모두 소환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개운했을 거 같다.
살던 집과 추억의 담장이 그대로 있다 보니 마치 옛날 영화 장면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들만큼 신기하고 설레기도 했다. 담장 높이는 지금 봐도 꽤나 높았다. 초등학생 때의 키는 담장을 넘어다니기에 훨씬 더 작았을 텐데 날렵하고 제비 같던 그 소년은 거뜬히 잘 넘어 다녔다고 한다.
두 아들에게 곳곳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편의 표정도 들떠 보였다. 마치 역사책 속으로 들어간 듯 아빠의 어릴 적 살던 집과 동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등굣길에 학교까지 뛰어갔을 좁은 골목을 아빠 등 뒤로 두 아들이 한 줄로 뒤따라 가는 모습이 정겨웠다.
아빠가 학교로 갔던 그 길을 따라 도착한 뒤 학교 전경을 함께 바라보는 세 남자의 뒷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남편은 동행한 아들들보다 어렸던 자신이 그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모습을 떠올렸을까?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인 옛집 대문 앞에서 두 아들과 함께 한컷, 옛날 그대로인 미용실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한컷으로 과거의 모습을 배경으로 현재 여행의 인증숏을 남길 수 있었다.
동네를 거의 다 둘러보고 나오다 보니 동네의 입구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다. 이 지역 재개발 계획을 알리는 글이 보였다. 서울에서 많이 봤던 재개발 안내 현수막과 달리 이곳에서 만난 그날의 현수막은 왠지 아찔했다.
"경축, 초량 1 구역 관리처분 인가 완료"
워낙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그 지역 주민들에게 재개발은 경축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 우리에겐 남편의 추억이 현실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것 같아 가슴 시리게 서운했다.
우리의 여행이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어땠을까?
남편의 어릴 적 궤적을 직접 보거나 가족이 함께 남편 추억의 장소를 공유하는 게 영영 불가능했을 뻔했다. 남편의 추억과 함께 마지막 인증숏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마침 그날 그곳에 갔기에 그것으로도 정말 행운이었다.
그날 이후 남편 어릴 적 추억의 동네는 가족여행이라는 더 새로운 추억 속에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은 새로운 도시로 변모했을 남편의 고향 초량동! 언젠가 다음 여행으로 다시 가 보길 기대해 본다.
우리는 초량동에서의 새로운 추억 만들기를 뒤로하고 다음 여행 일정을 위해 전철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붕어빵 장사를 만나 갖구운 붕어빵 한 봉지 가득 든 채 맛있게 먹으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주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집에 대해 어떤 추억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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