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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갠 Jun 23. 2017

일본에서 집 구하기

마음고생은 옵션

물론 예전에 일본에 8년 넘게 살았으나,

결국 다시 일본으로 온 내가,

일본과 이들의 시스템이 이해 안 되는 점에 벌써 봉면했다고 하면 너무 이른가?




안 좋은 의미로 낙천적인 성격 탓에 과거의 일들을 좋은 기억만 남겨두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겨놓은 채 왔으니,

일부 뇌 깊은 곳에 숨어있던 답답하고 이상한 부분이 조금씩 회생하면서 약간 실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욜로녀의 단점 중 하나이다.


또한, 대학과 사회생활을 다 겪었던 일본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미화시켜왔던 부분이 없잖아 있다.

여태껏 한국이 너무 거지 같았던 것도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제 겨우 희망의 빛이 보이려고 할 때 즈음, 

나는 또 내 발로 일본으로 왔다.


외국국적의 백인이 아닌 한국인(동양인)의 신분으로 왔기에, 이들에게는 외국인 노동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사실 한국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 그들은 한국인 포함 외국인을 싫어하는 제국주의 할배들이 주)


조금 편했던 것은 부동산을 찾아다닐 때, 외국 국적이라고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그냥 일본인인 줄 알더라.

대부분 일본 사람이 아니었다며 신기하다 몇 년 살았냐 등 늘 비슷한 레퍼토리로 나를 대한다.

예전에 일본에 있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어차피 한국 국적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대형견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에 온 다음 날 바로 핸드폰을 구매('마의 쳇바퀴'로 핸드폰 구매 시에도 맘고생은 덤, 신용카드 필수!)하고, 'At home' 사이트 등 한국의 '직방'같은 부동산 사이트에서 즐겨찾기 해두었던 곳에 일괄 문의를 했다.




일본 부동산 업계의 경쟁이 심해서인지 핸드폰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일단, '애완동물 상담 가능'이라고 쓰여있는 것 중에 즐겨찾기 20개를 선정했다. 그중 대형견이 문제없는지 알아보고, 그다음 외국인이어도 문제없는지, 레이첼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인지, 남편의 작업실로 적당한지, 가까운 역으로부터의 거리, 회사까지 소요시간 등의 순서로 20개 중의 우선순위를 매겼다. 사실 그밖에 고려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나에겐 가격 대비 크기도 나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회사까지의 소요시간을 가장 마지막으로 고려하며 이 요소를 희생하는 만큼 자연(풀냄새 맡으며 산책할 수 있는 환경)과 집 크기(최소 55)가 중요하게 다가왔다.


아무튼 6-7곳으로 자연스레 추려졌다. 이들 부동산에 다 들러서 2-3곳씩 더 추천받을 예정이었다.


첫째 날 간 부동산은 하루세역에 있는 부동산이었는데, 두 곳을 보여주더라. 사실 예전에 혼자 살던 집에 비하면 다들 훌륭했지만... 썩 삘(feel)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곧 한 여름의 폭염이 닥칠 텐데, 20분씩 걸어서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다음 날은 이나다즈츠미(稲田堤)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곳에 있는 부동산. 

사실 이 부동산에서 다루고 있는 집이 한국에서 알아봤을 때(사진상으로 봤을 때)부터 가장 마음에 들었다.

꽤나 무뚝뚝한 느낌의 중개인이 다른 곳을 여러 곳 뽑아줬는데(정말 중개인 첫인상 최악),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곳보고 나서 나머지를 보기로 했다.


아니 웬걸! 사진만큼 매력적인 집을 발견한 것 같다!!!

보통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 간 집은 서향이거나 앞에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답답하거나, 너무 오래돼서 큼큼한 냄새가 나거나 하는데, 아니 웬걸! 괜찮았다.

물론 한국의 신혼집만큼 넓진..


취소!

더 넓은 것 같다(느낌이..).



81.23면 24.5평인데 실평수만 24.5인듯하다. 나에겐 엄청 넓은 집!

일본에서 그나마 큰 집에 산 게 50인데...

그 집도 충분히 넓다고 생각하며 지냈었다.


한국에서도 최근까지 지낸 집이 52m²(14평).

지하에 꽤나 유명한 핫한 클럽이 있고, 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은 번화가이지만,

사실 거의 집에서 일했기에 핫함을 온전히 느끼진 못했다. 밤에 클럽 진동 때문에 시끄러웠을 뿐.

담배꽁초와 쓰레기 더미,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가득한 곳에서 산책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런 곳이었다. 

레이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하튼 마음속에 우선순위 1위의 그 집이 잊히지 않아 이후 본 집들은 죄다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가격이 1-2만 엔 정도 차이나지만, 난 언덕 위의 24.5평, 3층 단독주택이 잊히질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다른 부동산의 방을 보고 다녔지만, 난 결국 우선순위 1위의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이제 시작이다!!

마음고생의 시작!?


일본에서 방 계약을 하려면,


보증회사(보통 월세의 0.5~0.8 정도 세입자가 냄)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 세입자가 월세를 몇 개월치 지불하지 않는 것을 대비하여 요즈음 거의 모든 부동산이 보증회사를 끼고 계약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건 내용상 집주인의 보험이라는 이야긴데, 세입자가 집주인의 보험을 들어준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보증회사를 통한다면 나(세입자)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줄 수는 있겠다. 근데도 이상한 점이 부동산 중개인을 통한다는 것이 그런 중개에 대한 보험인 셈인데...

이중으로 보험을 드는 느낌이 드는 건 뭐지?


일단 보증회사까지는 '요즘 다 보증회사를 통해서 한다.'라고 하니, 그렇다고 하자. 일본법에 따라야지...


그런데, 

보증회사에서 연대보증인을 찾는다!?


'はあ~~~? 너네가 하는 역할은 뭔데!'라고, 생각만 했다.


일단 긴급연락처에 적어놓은 사람이 회사 대표인데,

이때부터 급격히 마음고생...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에서 혼재했다.


'나는 6개월 계약인데...', '이직 활동하기 껄끄러워지는 거 아니야?', '것보다 폐 끼치는 거 싫은데', '친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고', '개인적으로 연대보증인은 어렵겠지?'....



"일단 물어는 보자!"


대답은 개인적으로 연대보증인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너무나도 타당한 대답.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직해야 하는데 큰일 날 뻔했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리가 아파 오려고 하자,

갑자기 타O라는 친구가 생각났다.


무사비(무사시노 미술대학) 동창인데, 가장 친한 일본인 친구 중 한 명이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만났던(일본 여행 올 때마다 꼭 봤던) 내가 사랑하는 친구에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원래 난 친구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거절당할까 무섭기까지 했다.


대답은 흔쾌히

"OK!"


귀찮은 거 싫어하는 녀석이 내가 도움 요청할 땐 대부분 마다하지 않고 들어준다.

너무나 고마웠다.


연대보증인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직업에 따라 케바케이지만, 타O 군은 PV감독이라 수입이 일정치 않다.

(그럼에도 나보다 세 배는 버는 것 같은...)

일단 보증회사에 연대보증인의 이름, 연락처, 주소, 생년월일, 연봉 등을 알려주니, 

- 확정신고 증명서(소득증명용)

를 달라고 한다.


친구가 워낙 바쁜 시기임에도 다음 날 아침에 메시지로 퐁! 하고 던져주더라...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진짜 울었다.


이후 동의서에 날인한 후, 

- 인감증명서

를 동봉하여 다시 관리회사로 보내줘야 하는데,

인감증명서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던 타O이 인감등록 후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준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나의 연대보증을 한 번 해준 적이 있었다.

일시 탈퇴금을 받을 때!


그때도 일시 탈퇴금이 지급이 되면 연대보증인 통장으로 지급이 되는데,

그걸 내 통장으로 한 푼도 빠짐없이 보내주었다.


누가 나에게,

"믿을만한 친구가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2005년부터의 인연인 이 친구를 꼽을 것이다.


물론 아카OO도 있지만 부인과 아이가 있어 부탁하기는 어려웠는데,

이번에 만나서 이 얘기를 했을 때


"나도 해줄 수 있는데..."

라고 하더라.


기뻤다.

일본에 가족이나 친척은 없지만, 충분히 심적으로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게.


이런저런 맘고생을 하고, 나는 나의 주거지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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