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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갠 Jul 08. 2018

감정의 쓰레기통

공감에 대한 오해

20대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기 바빴다. 


나도 물론 그들이 공감해주길 바랐고, 

내가 생각하는 매너와 배려의 기준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을 때에는 기분이 상하는 일도 많았다.


이기적 이게도 내가 진실한 만큼 그들도 나에 대해 진실된 마음으로 공감해주기를 바랐으며, 

그들이 그러하지 못했을 때엔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그저 영혼 없는 ‘맞장구’라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 서른 중반이 넘은 지금,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다른 이에게는 적당한 ‘맞장구’와 진실된 마음으로 경청하며 공감하려는 마음은 갖되, 스스로 기준을 너무 높이 잡으며 자책하거나 부담 갖지 않기로. 또, 그들의 감정이 너무 네거티브하거나 일방적일 시에는 과감히 단절시키고, 나는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기로.


이제와 느끼는 것이지만, 누군가의 고민을 일방적으로 경청하는 것이 지치기 시작했다. 

'감정소비'라는 단어조차 모를 때는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소비였다.

그렇다고 내 감정을 소비하기 싫으니 그들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흘려듣고, 가려듣고, 스스로 네거티브한 감정으로 몰아가지 않는 법을 깨닫는 것이 

나를 위해 좋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지나치게 소모하지 않는 기술을 익히고 싶었다.


적어도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일본 사회는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하되, 과하다 싶으면 적당히 흘려들으며, 

자신의 감정이 다치지 않을 만큼 맞장구치는 것 말이다.


각기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뜨거운 감성과 오지랖을 지닌 한국인은 

남의 일도 내 일처럼, 내 일도 남이 공감해주고 내 감정에 대해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다.


나도 물론 그랬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내가 상대방의 ‘감정 쓰레기통’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그들의 힘든 얘기를 전화통화로 수십 분 동안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소진되면서 녹다운되는 기분이 들었다. 뿐 아니라, 

나에 대한 진심 어린 충고, 나에 대한 걱정, 나에 대한 오지랖이 너무나도 불편하게 다가왔다.


'진심 어린 충고 고맙지만 사양할게.

나에 대한 괜한 걱정, 다 걱정해주려고 하는 말인 건 알겠지만 사양할게.'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그래 내 생각해주는 건 너밖에 없다"


하며, 우정이나 관계에 금이 갈까 봐 지레 겁을 먹고 겉과 속이 다른 발언을 하고 있는 나 자신,

나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그냥 별 뜻 없는 그들의 오지랖인 것,

을 깨달았다.


'본인 걱정이나 잘 하시고,

난 네가 걱정할 만한 인물은 아니며,

너의 충고는 개나 줘버려!'


라고 그들에게 드는 음(-)의 마음이 명확해질수록

기운이 빠지면서, 내가 만든 우울한 우물 속으로 스스로 가두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점점 그들과의 사이가 멀어져 갔다.


10년 우정, 20년 우정이건 그들은 그들만 위안받고자 했으며, 

나는 마치 그들의 검은 감정을 세탁해주는 세탁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들의 감정을 나에게 전가시키는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네 덕분에 마음이 좀 편해졌어"


생판 모르는 그들 회사 주위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충고,

그들이 나를 위로하며 느끼고자 했던 상대적 우월감.


다 필요 없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거품만 남은 인간관계와 이별할 수 있었고,

나 스스로의 감정에 어느 정도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특히 UX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공감능력(Empathy)’을 가끔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공감능력은 어떠한 문제 해결에 앞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능력'이지,

동정(Sympathy)하거나 비위만 맞추는 공허한 맞장구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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