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모르고 덤벼든 지리산 당일치기 일출산행 도전기
나는 숟가락과 연필은 오른손이 좋고, 운동은 왼손이 편한 사람이다. 골프를 취미로 삼아보려 했다가, 만만치 않은 비용과 우타 중심인 대한민국 골프계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접어야 했다. 실력도 역부족인 데다가 양쪽 구석에서 벽을 바라보며 연습해야 하는 설움, 좌타 스크린골프장을 찾아 예약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골프는 내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하루 종일 불편한 것처럼, 취미도 나와 맞아야 꾸준히 즐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반면 등산은 달랐다. 등산화 끈을 조여 매기까지 큰 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산꼭대기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자연산 풍경을 눈에 담아 내려오면 상쾌한 기분이 며칠 동안 감돌았다. 아내 역시 등산을 좋아했기에, 등산은 우리 부부에게 안성맞춤 취미로 자리 잡았다.
아내와 나는 목요일 오후부터 카톡 메시지를 분주히 주고받는다. "이번 주에는 어디 갈까?", "OO 산 정상 뷰가 그렇게 좋다던데?", "여기는 지금 꼭 가봐야 한대" 하면서 매주 일요일 조식은 산꼭대기에서 먹고 오는 것이 일상이 됐다.
▶설날 새벽 지리산으로
"당일치기 지리산?", "진짜?", "좋아 딴말하기 없기다!' 어느 정도 체력에 자신이 붙었다고 생각한 우리는 느닷없이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자며 날짜를 잡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큰 딸도 함께 가겠다며 따라붙기로 했다. 설 연휴,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설 차례를 하루 앞당겨 지냈다. 잘 구워진 조기에 젓가락을 올려드리면서 '이번 설에는 다른 사람들 식사하러 떠난 사이 널찍해진 천국에서 두 분 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겨보시라'라고 얼버무렸다. 그렇게 섣달그믐날 밤 11시 50분, 나와 아내, 큰딸은 비장한 각오를 차에 싣고 집을 나섰다.
세 시간 사십 분을 달려 지리산 백무동 탐방센터 앞에 도착했다.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설맞이 일출을 찍어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고 싶었으나 날씨는 흐렸다. 배가 아프다는 아내와 큰딸은 주차장 화장실에서 산행 준비를 철저히 해냈다. 오전 4시, 탐방로 문이 열리고 우리의 지리산 도전이 시작됐다. 오르는 속도는 치악산 등반 때 보다 훨씬 느렸던 반면,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딸이 흔들리는 랜턴 불빛에 속이 울렁거린다고 투덜거릴 때쯤, 숲 사이로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보였다. 크고 밝은 별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해서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힘든 호흡을 위로해 주는 것 같은 별을 보고 나니 '멋진 일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산에 오른 지 세 시간 반, '장터목 대피소까지 700M'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바로 그때, 아내에게 비상신호가 감지됐다. 차례상에 올렸던 생밤을 잔뜩 씹어먹은게 잘못되었는지 아랫배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발 전 화장실에서 용감하게 싸워봤으나 실패했단다. 고약한 생밤은 하필 지리산 중턱에서 아내의 대장을 자극하고 있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공기는 차가워졌고, 바닥에는 녹지 않은 눈이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급히 아이젠을 착용한 아내는 있는 힘을 다해 장터목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리도 뒤질세라 열심히 따랐는데, 아내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설상가상 내 무릎 뒤쪽 오금 근육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나보다는 딸이 너무 놀라 내 다리를 펴서 눌었다가 주무르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십여 분 휴식을 취한 후 걸을 수 있었다. 버텨준 다리에 감사하면서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드디어 대피소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장터목대피소는 혹한기 행군을 마친 끝에 마주한 따뜻한 쌀밥과 고깃국 보다 더 반가웠다. 딸이 대피소 의자에 엄마가 앉아 있다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아내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다. 급하게 올라오다 아이젠에 등산화 끈이 걸리면서 넘어졌다고 했다. 이마와 무릎을 얼어붙은 지리산과 심하게 박았는데, 두꺼운 방한모가 아니었더라면 기절했을 거라고 했다.
아내의 이마는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넘어지는 순간 참고 있던 용변이 긴장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과 크게 넘어진 것에 비해 많이 다치지 않았다며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난 잠시 지리산 눈밭에 누런 물을 들인 채 기절해 있는 아내를 상상했다가 얼른 지웠다.
우리가 품었던 커다란 계획에 따르면, 세 시간 반 안으로 천왕봉에 올라 해돋이를 감상하고 장터목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근육이 올라오는 불안한 내 다리와 놀란 아내의 마음을 달랠 겸, 장터목에서 쉬었다가 천왕봉에 가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취사장에서 라면을 꺼내고 있는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태양을 감상하고 사발면에 물을 부었다. 장터목에서는 돌을 삶아 먹어도 맛있을 줄 알았지만, 큰일을 겪고 긴장한 탓인지 라면 맛이 기대 이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힘을 냈다. 장터목에서 정상까지 1.7km 구간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도 미안했던지 곰탕 같던 구름을 잠시 걷어내고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틈을 놓치지 않고 사진을 잔뜩 찍었다. 마침내 천왕봉 도착!, 서둘러 100대 명산 인증을 마치고 발아래 펼쳐진 지리산의 장관을 감상한 후 다시 장터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등산객들이 굽는 고기냄새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백무동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을 더 힘겨워하는 딸과 발걸음을 맞추며 내려오다 보니 나도 지쳐갔다. 밤새 운전한 탓에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먼저 내려가. 차에서 눈 좀 붙이고 있어" 아내가 등을 떠밀었다. 나는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하산을 서둘렀다. 네 시간이 넘는 길고 험한 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골반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얼른 차에 들어가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누웠는데, 5성급 호텔이 따로 없었다.
차에 누워있을 때 집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예요? 엄마는요?" 안부전화를 받던 중 산악 구조 대원들이 줄지어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설마!' 하는 생각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들과 전화를 끊고 등산 입구로 가보려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다행히 훈련 중이었는지 구조 대원들은 다시 내려왔다. 만약 아내와 딸에게 무슨 사고가 났다 하더라도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웠다. 위대한 자연을 얕잡아보고 고작 이 체력으로 지리산에 가족을 데리고 오다니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저 아내와 딸이 빨리 내 눈앞에 나타나길 바라며 탐방로 입구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분명 우리보다 뒤처졌던 사람들이 먼저 내려오는데 아내와 딸은 보이지 않았다. 4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두 사람의 등산화가 눈에 들어왔다. 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밥 먹을 힘조차 떨어진 우리는 찾아둔 맛집 탐방을 뒤로하고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귀경길 정체가 시작됐는지 내비게이션 창에 집도착까지 7시간이 찍혀있었다. 가는 도중 한계를 뛰어넘는 졸음이 몰려와 졸음쉼터에서 시트를 눕혔는데, 40분 동안 5시간 같은 꿀잠을 잤다. 이후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달려왔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옷을 벗어던지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동안, 인생 최고의 행복이 나를 흠뻑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