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리면서 물을 쏟아붓던 날
스타크래프트 배틀이 유행처럼 번지고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던 때,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는 저그 VS 테란 대신 전무 VS 차장 경기가 연일 펼쳐지고 있었다. 그 당시 직장문화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계급이 깡패였던 시절이라 결국 젠틀한 차장이 GG(게임의 패배를 인정하고 포기할 때 쓰는 ‘항복선언’)를 선언하고 사표를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송별회가 있은 후 몇 달 뒤, 그는 프랜차이즈 PC방을 오픈했고 앉아서 돈 세는 게 일이라는 소문을 돌았다. 구린내 나는 전무의 천한 행동과 괴팍한 성질은 나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여기를 계속 다녀야 하나?' 전무는 내 엉덩이까지 들썩들썩하게 만들었던 터라 그가 닦아놓은 PC방 창업은 내 머릿속으로 쏙 들어왔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나는 결국 일을 저질러 버렸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프랜차이즈 보다 비교적 저렴한 업체를 찾아 창업한 뒤 PC방 운영 경험을 쌓은 다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 보자'는 '욱' 하는 마음을 먹어버렸다. 게다가 멀쩡하게 회사 생활 잘하는 친구를 꼬드겨서 동업을 시작했다. 장소를 물색한 끝에 월세가 저렴하고 공간이 넓은 지하를 임대했고, 고사양 PC와 깔끔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꾸몄다. 넓고 쾌적한 PC방이 들어왔다는 입소문을 타고 OPEN후 3개월 동안 은행에 현금 입금하는 재미로 살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마른장마가 이어지다가 하늘에 구멍이 뚫리더니 물 폭탄을 쏟아부었다. 건물 지하에는 애당초 화장실이 없었는데 손님 편의를 위해 큰돈을 들여 화장실을 지어놨었다. 간이 정화조에 오물이 차면 센서가 신호를 보내고 지상에 있는 메인 정화조로 펌프가 작동하는 방식인데 센서와 연결된 두꺼비집(전기분전함)이 차단되면서 큰 화근을 불렀다. 물 폭탄은 1층 계단을 폭포로 만들었고 PC방 곳곳으로 물을 들여보냈다. 순식간에 간이 정화조의 오물과 섞인 물이 매장으로 흘러들어와 고여있던 물까지 누렇게 물들이는 판국이 됐다.
전날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던 동업 친구가 잠도 못 자고 달려왔다. 마침 PC방으로 놀러 왔던 친구와 함께 물을 퍼 날랐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물과 섞인 누런 물이 점점 차오르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 나와 동업 친구는 의자에 털썩 앉아 '망했다 망했어'를 연발했다. 그때였다. 놀러 왔던 친구 녀석이 성질을 내며 '야 내가 나가보니까 비 그쳤어 이렇게 포기할 거야?' 하며 물을 퍼내는 게 아닌가?
그 친구의 말은 우리 둘에게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멍하니 잃고 있던 정신을 깨워주었다. 다시 힘을 냈고, 함께 물을 퍼내며 가벼운 농담까지 주고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웃음을 나누는 사이 지하시설 피해 점검 공무원이 '모터펌프를 대여하고 있다'며 찾아왔다. 그 순간, 친구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누런 물속으로 우리의 희망을 빠뜨릴 뻔한 상황에서도 자기 일처럼 거들어준 친구 덕분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힘을 합쳐 물을 퍼내고, 관공서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면서 물을 쏟아붓던 날 녀석과 우정이 더욱 깊어졌다. 지금도 그 친구와는 36년 지기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날 녀석이 없었다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소중한 동반자,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 고마워 친구! 건강하고 행복하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