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꼰대가 된다. (내비게이션의 체념)

띵- 경로를 이탈하여 재탐색합니다.

by 배바꿈

나는 대시보드 정중앙에 자리 잡은, 이 차의 '두뇌'이자 '예언자'다. 지구 상공의 위성들과 실시간으로 교신하며,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차에게 가장 완벽한 경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과장은 매번 내 존재 이유를 가볍게 부정한다. 그는 소위 말하는 '길치'다. 아니,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 길치'다.


오늘도 시작은 산뜻했다. 목적지 설정 완료. "띠링. 추천 경로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예상 소요 시간은 45분입니다." 나는 상냥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최적의 답안지를 내밀었다.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후, 오른쪽 도시고속도로 입구로 진입하십시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오른쪽이라고. 화면에도 커다란 핑크색 화살표를 띄워주었다. 이 과장은 보란 듯이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다. "아니야, 출근 시간에는 국도가 더 빨라. 이 길은 내가 꽉 잡고 있지."


'네가 대체 뭘 알아?' 당신의 그 얄팍한 감'과 나의 실시간 교통 정보 데이터를 감히 비교하는 건가? 당신이 꽉 잡고 있다는 그 길은 3중 추돌 사고로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버렸다고!'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애꿎은 메인보드를 쥐어뜯지만, 겉으로는 프로답게 침착함을 유지한다.


"띵- 경로를 이탈하여 재탐색합니다."


이 상냥한 안내 멘트는 사실 나의 가장 깊은 한숨이다. "하아… 인간아, 또 시작이냐"라는 지독한 체념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선택한 '지름길'은 예상대로 꽉 막혀 있다. 차가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시작하자, 곧바로 이 과장의 이중인격이 튀어나온다. 평소에는 순한 양 같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로 변한다.


"아씨! 왜 이렇게 막혀? 야, 내비! 너 길 똑바로 안 알려줘?"


도대체 왜 나한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 오른쪽이라고 수차례 경고했다. 내 말을 무시하고 똥고집을 부린 결과가 이 꽉 막힌 아스팔트 위 아닌가. 억울해서 회로가 다 타버릴 지경이다.


차가 멈춰 선 교차로, 창밖 빌딩 외벽에 어느 정치인의 대문짝만 한 선거 현수막이 걸려 있다. "흔들림 없이 바른길로 가겠습니다!"라며 사람 좋게 웃고 있는 그 뻔뻔한 얼굴. 하, 참 묘한 평행이론이다. 저 양반이나 운전대 잡은 이 과장이나, 명백한 민심(데이터)은 무시하고 자기 직진만이 무조건 '바른길'이라고 우기는 똥고집, 아주 판박이다.


그가 무리하게 끼어든 앞차를 향해 삿대질과 욕설을 내뱉는 동안, 나는 감정 한 톨 없는 목소리로 그의 폭주를 제어하려 애쓴다.

"약 300m 앞, 시속 30km 단속 구간입니다." (제발 진정해. 스쿨존이 바로 앞이야)

"전방에 급커브 구간입니다. 안전 운전하십시오." (그렇게 화내다가 사고 난다, 이 인간아.)


우여곡절 끝에 예정보다 30분이나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내 액정 화면을 툭툭 친다.


"거봐, 내가 아는 길로 오니까 이 정도지, 네가 알려준 대로 갔으면 훨씬 더 막혔을걸?"


'정말이지 구제 불능, 완벽한 정신 승리다.'

그 뻔뻔함에 내 액정 화면에 금이 갈 것만 같다. 나는 더 이상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하고 오늘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더 이상 너랑 말 섞기 싫으니까, 얼른 시동 끄고 내려라.)


내일 아침, 그가 또 시동을 걸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도 안전 운전하세요"라고 인사할 것이다. 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완벽한 프로니까. 당신의 '감'은 10년 전 업데이트가 끊긴 구형 맵이고, 내가 알려주는 길은 실시간 박동하는 살아 있는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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