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떡볶이와 함께오신 할머니
누군가가 나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먹기 위해 산다.’라고 대답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포만감도 끝내주지만, 우연히 맛본 음식이 옛 추억을 또렷하게 소환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으로 외근이 있던 날이다. 어디를 가든 음식 맛은 물론 매장 생김새까지 똑같은 프랜차이즈 메뉴로 소중한 한 끼를 함부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아 그 지역에서 소문난 전통시장 먹거리를 찾았다. 시장 골목 모퉁이 낡은 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나는 또다시 타임머신에 올라탔다.
고추장을 풀어 만든 옛날 밀가루 떡볶이를 한입 베어 문 순간, 연두색 치마저고리에 하얀 고무신 신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외할머니 앞에 도착했다. 치마 깊숙이 연결돼있는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으로 사주시던 바로 그 떡볶이 맛! 그대로였다. 비닐 덮은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주는 밀떡을 핥아먹고, 다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바닥까지 싹싹 훑어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외할머니가 추억을 한보따리 들고 말이다.
초등학교 하굣길은 식품 야바위 천지다. 1+1의 근원 달고나 뽑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저씨가 찍어준 모양을 오려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내 부러지고 만다. 침을 발라도, 햇빛에 비춰봐도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나만의 홍반장 할머니가 나선다. 할머니 치마 속은 전당포가 들었는지 할머니 손에는 바늘이 쥐어있었고, 이날은 별 모양도 찍어내는 최고의 기쁨을 맛봤다.
신문으로 접은 삼각 용기에 담아주는 번데기도 보인다. 고깔모자만큼 커다란 삼각 용기는 요즘으로 따지면, 낚시마케팅이다. 번데기 아저씨가 능숙한 손목 스냅으로 돌림판을 돌리면, 폭 1cm도 안 되는 작은 칸에 꼬챙이(다트)를 꽂아야 하는데 그럴 리가 없다. 늘 '꽝!'이어도 반곱슬머리, 번데기 색 얼굴에 눈웃음 가득한 인심 좋은 아저씨는 ‘뻔! 뻔! 번데기!’ 하며 가장 작은 삼각 용기에 번데기를 담아 살짝살짝 눌러 준다. 번데기를 다 먹었다고 삼각 용기를 버리면 손해다. 빈 용기에 부어주는 번데기 국물까지 맛봐야 제대로 번데기를 즐긴 것이다. 할머니는 ‘니 번데기가 뭔지 알고 묵는기가?’ 하시며 절대 드시지 않았다. 대신 소라를 ‘쪽쪽’ 빨아 드셨다.
홍반장 우리 할매는 학교 앞 음식도 잘 사주지만, 할머니가 끓여주는 라면또한 나에게 최고의 음식이다. 할머니가 “라면 끼 릴 낀데 니도 묵을래?” 물으면 나는 “맨날 라면이야? 난 라면 안 먹어!” 해놓고 라면 냄새에 홀려 할머니를 굶게 만드는 못된 손주였다. 라면은 나 뿐만 아니라 밥 먹듯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도 할머니 표 해장 라면에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렵던 시절, 엄마, 아빠는 일터에 가고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로는 어둠을 밝힐 수 없던 단칸방에 할머니마저 안 계셨더라면,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어지간히 우울했을 게 틀림없다. 학교에서 집까지 내 손 꼭 붙들고 가방까지 들어주던 할머니. 밖에서 실컷 놀다 와도 늘 반겨주던 할머니다. 부모님 보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아버지께는 존댓말을 했고 할머니께는 반말을 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내 사춘기를 사랑으로 안아준 내 마음속 홍반장 우리 할매가 옛날 떡볶이를 한입 베어 물자 추억을 쏟아붙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