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은밀하게 24시간을 20시간으로 바꿔 놓은 게 아닐까?
시간이 정말 빠르다. 특히 월요일을 코앞에 둔 일요일은 마치 12시간처럼 후딱 지나간다. 놈들이 아무리 음모를 꾸민다 해도 호락호락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침대에서 내려오면 해가 중천에 떠있는 일요일이 몹시 아쉬웠다. 궁리끝에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인다는 군대 시곗바늘보다 일요일 시곗바늘이 더 더디게 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았다. 토요일밤 넷플릭스를 꺼두고 저녁 10시 전으로 눈을 부친다음 일요일 새벽 3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면 1박 2일 같은 휴일을 보낼 수 있다.
일출산행 매력에 빠지다.
아내와 나는 한라산 백록담 등정을 목표로 일요일마다 일출산행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수월하진 않았다. 동트기 전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작은 렌턴 불빛에 의지하다 머리가 쭈뼛해지는 공포에 휩싸였는데 아내에게 태연한 척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소리에는 놀라지 않게 됐다. 산행에 여유가 생기자 밤하늘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치 앞 어둠에 사로잡혀 두려웠던 시선을 살짝 들어올리면 북극성이 밝게 빛나고 있고, 북두칠성까지 기본 옵션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날씨 좋은 날에는 '저 별은 나의 별' 전갈자리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행운까지 누렸다. 산 정상에 도착할 무렵부터 동이 트기 시작하고 붉은 태양이 숲 사이사이에서 기지개를 켜면 우리의 발걸음은 더 바빠진다. 기여코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다짐으로 오르막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뭐지 이놈의 해는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나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같은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니" 46억 살 태양의 꾸준함에 감탄을 연발하며 실천보다 계획만 수두룩한 나를 반성했다.
산꼭대기 조식
찬란한 해를 배경으로 우리는 산꼭대기 조식을 시작한다. 사발면, 전투식량, 김밥 등 보편적인 음식도 좋지만, 집에 굴러다니는 간식이나 먹다남은 음식을 배낭에 넣어와도 산꼭대기에서는 꿀맛이 난다. 여름에는 황도복숭아캔을 얼려 가져가면 살얼음 속 복숭아를 맛볼 수 있는데 나는 그날 이후 스타벅스 블렌디드 같은 건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월요병 해소
일요일 새벽 수도권에서 가까운 산을 찾아 다녀온다. 별, 태양, 조식을 마치고 와서 시원하게 씻고 소파에 다리 뻗고 않으면 오전 11시쯤 된다. 이때 주의할 행동이 낮잠이다. 잠이 오기 전 바로 오후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일요일을 길게 즐길 수 있다. 이 재미를 느끼게 되면 월요병이 자연스럽게 치료되는데 다음산행 탐색을 월요일 부터 점찍어두면 설레는 마음으로 한주를 견딜수 있다. 월요병은 설렘을 결코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