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일깨워준 결혼 25주년 특집 선물
코로나가 준 특별한 선물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면서, 다리까지 욱신욱신거렸다. 파란 하늘과 멋진 구름, 아름다운 토요일 오후를 이불 싸매고 '덜덜덜' 떨고 있으려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안 좋을 땐 한 숨 푹 자고 나면 회복되는 체질이라 식은땀이 흐르는 와중에도 어디서 가을구경을 해야 할지 이곳저곳 단풍 스폿을 찾아봤다.
'아빠! 열나고 몸살 나면 자가진단 해봐야지?" 며칠 후 공모전 발표가 있는 큰딸이 다급하게 검사를 권유했다. 주변 사람 모두 코로나에 감염됐어도 나는 피해 갔었기 때문에 슈퍼항체 보유자라며 우쭐했었다. 질병관리청에서 '나 같은 사람 연구하지 않고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만만했던 나였기에 이번에도 지나가는 단순 감기라 생각했다.
"뜨악!" 자가진단 킷트는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작대기 하나를 더 긋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그 즉시 방으로 격리됐다. 방으로 들어갈 때 일제히 마스크를 챙겨 쓰는 가족들의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다가왔다. 혼자 방을 쓰고 아내가 방문 앞에 물과 식량을 1회용 그릇에 담아 노크하면 5분 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나름 방역에 힘썼다. 코로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불편한 바이러스였다. 욱신거림은 다리에서부터 허리, 어깨, 온몸을 강타했고 특히 따가운 목 때문에 침 넘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열이 올라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됐다.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콧구멍을 내줬는데 역시나 확진이다.
'1주일간 격리'
우선 공모전 발표가 있는 큰딸은 자취방으로 거취를 옮기기로 했고, 그 방을 와이프가 썼다. 나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채 마스크, 비닐장갑, 손소독제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조심해 봤지만 로나가 한 발 앞서 행동을 개시한 다음이었다. 이튿날 아침 와이프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1주일 동안, 그러니까 168시간을 같은 방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는 질병관리청 명령을 따라야 했다. 뜻하지 않게 아내가 확진받은 다음날이 결혼 25주년 기념일이다. '은혼식'이라고 기대를 잔뜩 하고 있던 김여사는 온몸이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쑤시고 열까지 난다고 했다. 결혼기념일 당일에는 수능 준비 뒷바라지는커녕 우리의 식사와 물을 챙겨주던 아들마저 확진됐다. 바이러스 투성이가 돼버린 우리 집에 초등학교 6학년 막내딸만 꿋꿋이 버티고 있다. 학교 갈 준비도, 밥도, 설거지도 혼자 해내고 있는 막내딸이 대견하다.
아프고 힘든 상태로 방 안에 갇혀있는 경험은 답답하고 불편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 도 없는 까닭에 우리는 긍정의 힘을 빌려오기로 했다. 죄짓고 몇십 년을 좁은 감방에 갇혀있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집 우리 방에서 '1주일' 까짓 거 즐겨보자 했다. 아등바등 살아내느라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본적도 없지 않았는가? '코로나가 가져다준 특별한 선물'이라 생각했다. 약을 먹으면 잠이 오기 때문에 그동안 쌓인 피로를 실컷 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25년 차 부부, 그 여정에 태어나준 아들과 각종 배달음식을 펼쳐놓고 먹는 것도 재미있었다. 코가 막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데 맛 평가 리뷰 올리고 서비스 음식을 받아내는 작은 일탈도 즐거웠다. 마음을 비워서 그런가? 업무 전화가 많지 않았던 것도 행운이다. 업무 관련자들에게 연락이 오면 코로나 확진 소식을 전해야 하나 부담스러웠는데 잘된 일이다.
격리 5일째 큰딸이 청심환 마시고 공모전 발표장에서 대기 중이라며 톡을 보냈다. 방문 밖으로는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막내딸 헤어 드라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오늘만 지나면 내 격리 시간은 하루가 남는다. 와이프는 이틀, 아들은 사흘이 남았다. 격리 해제 후 다음날 수능을 치러야 하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평소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을 몹시 싫어했던 나를 반성한다. 아침 식탁에서, 오후 삶의 터전에서, 저녁 거실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우리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란 걸 깨닫게 해 준 '결혼 25주년 특집 선물'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