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밝을 무렵 산꼭대기 조식
호텔 조식이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아
비 소식이 없는 일요일은 산꼭대기에서 아침을 먹는다.
삶은 계란을 기본으로 사발면, 오이, 초코바, 떡 등 냉장고 사정에 따라 메뉴를 준비한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육수가 줄줄 흐르는 여름 산행에는 복숭아캔을 냉동실에 두었다가 배낭에 넣어가면 든든하다. 정상에서 캔 뚜껑을 뜯으면 알맞게 살 얼금 가득한 복숭아를 맛볼 수 있는데 스타벅스 블랜디드 같은 건 갖다 대지 못할 만큼 맛있고 시원하다. 아내는 산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는 산에서 먹는걸 6:4 비율로 좋아하는 것 같다.
산꼭대기 조식은 집에서 1시간 이내 관악산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과천향교 코스, 서울대입구 코스, 사당 관음사코스 관악산은 어디에 던져놔도 연주대 정상을 찍고 올 수 있다. 늘 관악산만 고집하다가 오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산을 찾아봤다. '이번 주 일요일은 어디서 조식 먹을까?' 우리는 욕심이 생겼고, 집 반경 100km 안에 있는 산을 모조리 다녀보자는 의기를 투합했다. 지금은 경기북부, 충청, 강원도까지 세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우리가 새벽 등산을 시작한 건 산꼭대기 조식이 아니라 마스크 때문이다. 상체는 무겁고 하체가 부실한 나는 평균 이상 산소공급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스크는 큰 곤욕이었다. 새벽에는 등산객이 많지 많아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일탈이 주어진다. 새벽산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들여마시며 정상에 모르면 5성급 호텔 조식보다 맛있는 산꼭대기 조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날씨가 따라줘야 겠지만, 조금 서둘러 씩씩하게 올라가면 정상에서 아름다운 태양을 볼 수 있다. 일출은 야외 마스크 착용이 자유로워진 것과 상관없이 새벽산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됐고, 날 밝을 무렵 일요일 산꼭대기 조식은 '후천성 월요일 면역 결핍증'으로 힘겨웠던 나를 말끔히 치료하는 보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