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결 Feb 04. 2021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출근하지 않는 날 이른 새벽 동해바다를 향해 길을 나선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날수록 초록은 깊어지고 바다의 향기가 가까워진다.  


 차가운 바닷바람에는 벚꽃향과 고양이 수염 끝에 매달린 나른함이 숨어 있다. 나는 바닷가에 가면 거북이가 되어 가만히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파도는 사르륵 사르륵 귓가에 속삭인다. 해변의 파도는 밀려와 어김없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파도는 천천히 모래를 한 줌씩 옮겨서 긴 세월동안 긴 모래 언덕을 만든다. 바람이 불어 쌓아올린 모래를 흩어 놓아도 파도는 초승달이 뜨는 밤에도 별빛이 쏟아지는 새벽에도 멈추지 않고 허물어진 모래를 쉼 없이 쌓아 올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단단한 모래언덕과 드넓은 모래사장을 펼쳐 놓는다.     


 하루하루 인생을 산다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높이 쌓은 모래성도 언젠가는 파도에 휩쓸려 한 순간에 사라진다. 우리는 결국 사라질 것을 알지만 모래성 쌓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파도는 나에게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 특별하고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나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라고 속삭인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도 좋다. 지금까지 똑같은 파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 또한 하루하루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삶을 생각한다. 바다는 모든 강물을 품고 더 원대해진다. 인생도 아프고 힘든 경험을 품고 더 깊어질 것이다.  


  커피향을 뒤로 하고 양양의 남대천 생태숲길로 발길을 돌린다. 남대천에서 바다와 강이 만나는 풍경을 본다. 지금 강은 단단하게 얼어 붙어 있다. 봄이 오면  얼어붙은 강은 바다에 품에 안겨 하염없이 풀어질 것이다. 살다가 상처입고 응어리진 가슴은 결국 봄날의 강물처럼 서서히 풀어질 것이다. 숲길을 따라 억새가 서걱거리며 바람에 흔들린다.


    


 


 

  

  

작가의 이전글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면 떠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