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입원기2

by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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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아침부터 피를 뽑았다. 주사기를 통해 내 몸을 빠져나간 피는 실린더에 가득 담겼다. 간호사는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아마도 피를 더 뽑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몸 속에 피가 있다는 사실은 가끔 뽑아야 알 수 있다. 내가 숨을 쉰다는 것도 숨가쁘게 달리기를 해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내가 생각하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인지, 일을 할 때 살아 있는 것인지, 살아 있다고 말해야 살아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가끔 내가 살아 있는지 의사에게 묻는다.(의사는 내가 이상한 질문을 한 것처럼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의사도 사실 본인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을 아직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가끔 화를 낸다.)


나는 오늘 엑스레이도 찍었다. 나는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엑스레이 사진은 묘한 매력이 있다. 언제인가 영국박물관에서 본 미라의 형상과 내 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내가 인류 역사에 한 부분이라는 믿음을 준다. 나는 두개골 사진도 한 장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쉽게 가슴 사진만 찍었다. 사실 두개골 사진을 부탁하고 싶었지만 기사가 쉽게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이 함께 찍은 엑스레이 가족 사진을 갖고 있지 않은지 모른다.)


병원은 언제나 분주하다. 마음이 분주한 사람들은 환자들이고 몸이 바쁜 사람들은 간호사와 의사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바빠서 환자를 만날 시간이 없다.(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너무 바빠서 학생을 만날 틈이 없고 회사에서 직원은 서류더미에 묻혀 고객을 만날 시간이 없다.) 의료진의 표정은 언제나 심각하고 무겁다. 마치 중형을 선고하려는 판사의 얼굴이다. 그래야 환자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쉴새없이 불러대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지쳐 있고 교대시간을 애타게 기다린다. 주사바늘을 찌르며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성적인 병에는 사실 약이 효과가 없다.(그것은 의사와 환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약을 써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끊임없이 고통받으면서 살아 있는 것과 고통 없이 죽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권리는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병원은 공장과 비슷하다. 각종 검사기계가 쉴새없이 돌아간다. 피를 뽑고 엑스레이, 초음파, 심전도, 산소호흡기, 투석기는 멈추지 않는다. (기계가 인간의 몸을 돌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환자복은 입은 사람은 환자가 되고 의사 가운을 입으면 의사가 된다. (이런 몰개성의 방법은 교복과 군복 그리고 죄수복 등이 있다.) 환자복은 환자를 무력하게 만든다. 환자복을 입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다. 나는 가끔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몰래 외출을 시도한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과일가게다. 병원에서는 신기하게 과일을 주지 않고 매점에도 과일은 판매하지 않는다. 몸에 좋은 것을 파는 것은 어쩌면 병원에서는 금지된 일인지도모른다.(과일가게에는오렌지,포도,딸기, 참외, 방울토마토, 사과, 키위,수박이 있다. 나는 딸기와 방울 토마토를 산다. 작아서 먹기가 편하고 껍질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배가 고플 때 바나나를 사지만 수북한 껍질을 보는 것은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세탁기 앞에 벗어놓은 빨랫감처럼 허물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이 초식동물이라면 각자 자신의 마당에서 풀을 길러 뜯어먹을 수 있어서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이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것처럼 보이는 초식동물들은 사실 전혀 한가롭지 않고 오늘 하루 먹어야할 풀을 쉴새없이 뜯어야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 있는 텔레비젼은 24시간 계속 돌아간다. 사람들은 텔레비젼을 적극적으로 시청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오랫동안 본다. 잠이 들 때까지 음악처럼 텔레비젼 소리를 듣고 심지어 대화를 할 때도 텔레비젼을 힐끔힐끔 쳐다본다.(텔레비젼은 오래 보니 프로그램과 채널 간의 내용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짜피 사람들이 텔레비젼을 보는 이유는 하나다. 현실에서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머리 속에 여러 채널이 있어서 텔레비젼의 도움없이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도 당신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 새로운 이야기가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경험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상상 속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고 당신이 나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환자 한 명이 침대를 타고(놀이기구가나 자전거는 아니지만 환자들을 이동시킬 때 침대를 이용한다.) 다른 곳으로 떠나났다. 나는 침대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운전할 수 있는 침대가 있다면 편하게 어디든 가고 싶다. 그러나 나의 침대는 오늘도 꼼짝하지 않는 것이 좀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