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입원기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정신병자의 정신 나간 이야기가 아니다.(그럼에도 정신 나간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보통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도시 외곽에 있는 하얀 건물에 쇠창살이 있는 폐쇄병동을 상상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프랑스에서 고흐가 머물던 정신병원을 본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 있는 이 병원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간 것은 아니지만 딱히 가지 말아야할 이유도 없어서 거기에 갔었다. 대단한 감흥도 실망할 것도 없는 그곳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을 찾아가는 길에서 본 올리브 나무이다. 말라 비틀어진 나무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고흐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고흐는 모든 사물을 비틀어서 그렸는데 아마도 올리브 나무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싶다. 그러나 모든 일을 비틀어서 생각하는 나는 올리브 나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아닐 수도 있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정신병원도 있지만 정신병원은 시골 구석에 사람들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왠지 어울린다. 교도소와 정신병원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술집이나 도박장은 버젓히 동네 한복판에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닐까 기대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정신 나간 이야기가 될 수 있다.(정신병자와 일반인을 구분하는 것은 정신과 의사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제 정신이 아니라면 정신병 환자와 의사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정신과 의사는 멀쩡 할거라고 너무나 쉽게 믿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미친 척 할 때도 있지만 몇 주나 몇 달 혹은 몇 년을 계속 미쳐 있기는 쉽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당장 정신병원에 쳐 넣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이나 일 또는 돈에 미쳐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허용하는 범주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뭐에 미쳐야 미쳤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도 지금 내 생각에 빠져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미쳤다고 말 할 수 없다.(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미친 소리일 수도 있고 정신을 되찾는 이야기일 수 도 있다. 너무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잠깐 정신줄 놓는다고 별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정신없이 사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고 미쳐야 살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정신병원 이야기나 정신 나간 이야기는 아니다.(내가 그렇게 주장하다러도 당신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관되지 않은 이야기이고 병원에 대한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정신병원 이야기가 맞기도 하다. (정신에 대한 이야기와 병원에 대한 이야기가 섞여 있으니 정신병원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내가 병원에 간 것도 입원을 한 것도 우연일 뿐이다. 물론 모든 원인을 하나 하나 밝힐 수 있다면 필연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과학에서는 우리가 다 알 지 못하지만 세상에 모든 일은 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병원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다. 가끔 침대에서 일어나 병원 복도를 서성이거나 창 밖을 바라볼 때가 있지만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낸다.
침대에서 딱히 뭔가를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이런저런 궁리를 끝까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다른 생각으로 흘러버리기 일쑤지만 그래도 생각은 꾸준히 한다. 생각을 꾸준히 한다는 표현보다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부지런히 옮겨 적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가끔 옆 침상의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의 의미를 생각하거나 간호사의 표정을 살피는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의 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가 없고 간호사는 항상 무표정하다. 내가 할아버지의 말을 알아 들어도 대화는 불가능하고 간호사의 표정 변화도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제 정신일 때는 언제인가? 내가 제 정신일 때 사람들은 나를 정상인으로 생각할까?(제 정신일 때 '저는 지금 제 정신입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더욱 나를 의심할 것이다. 마치 술 취한 사람이 꼬부라진 혀로 맨정신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 오히려 미쳤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 것을 인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서, 질문이 불가능한 조직에서 질문하는 것이 이미 제 정신이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들은 사실 세상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다. 가끔 술에 취하거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면 품었던 생각을 꺼내 놓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모든 게 엉망이야 라는 말을 종종한다.) 내가 병원에서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는 왜 아프게 되었는지 의사도 환자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원인도 모르니 치료방법도 모른다. 그저 원인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치료방법도 확률에 기대는 약물을 사용할 뿐이다. 그것이 병원의 공공연한 비밀이다.(원인을 알 수 없는 병과 치료법이 없는 병이 바로 정신병이다.) 그렇다고 정신병원이 필요없는 곳은 아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자유로운 곳이고 평화로운 곳이다.
마치 나무가 다른 나무를 의식하지 않고 구름이 다른 구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이 점점 많아지지만 일은 많은 것보다 괜찮다. 일이 많아지만 사람들은 생각을 멈춘다. 생각하며 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은 일의 적이다.(나는 생각하는 직업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철학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생각마저 귀찮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정해진 방향은 없다.(생각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그것은 금방 재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가끔 잊었던 생각이 다시 떠올라 신기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 병실 창문에서 하얀 거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이것은 나에게 흥미로운 일이다.) 작고 하얀 거미는 이리저리 갈 곳을 찾고 있다. 아직 내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알고 있다고 해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평소처럼 행동할 것이다.(그것은 지극히 거미다운 행동이다.) 거미는 내가 죽이거나 괴롭히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 흰거미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최초의 거미가 될 것이다.)
나는 거미를 위해 창문을 열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탈출하고 싶은데 내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불연듯 이런 때는 거미 언어를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거미 언어를 배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그냥 거미를 관찰하기로 했다.) 거미는 어느덧 창문을 지나 천정의 흰 벽으로 사라졌다. 거미도 흰 색이고 벽도 흰 색이니 거미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참동안 벽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지만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미는 일부러 내 눈을 피해 급히 사라진 것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거미에게 조금 미안할 일이다. 거미가 병실에 있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예전에 본 거미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거실에서 가끔 몸집이 작은 흰거미를 본 적이 있다. 거미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이 거미줄처럼 얽혀든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거미는 없어도 그만이고 있어도 차이는 없다.)
병원에 있으면 시간과 공간 개념이 희미해진다. 약을 먹으면 몸도 약해지고 의지도 약해진다. 평소에도 시공간이 큰 의미가 없지만 병원에 있으면 우주에 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본 우주영화가 떠오른다. 우주에 혼자 남겨진 한 사람은 외로움도 슬픔도 불안함도 혼자 느낀다. 함께 감정을 나눌 대상이 없으니 그저 감정도 사물처럼 딱딱해진다. 딱딱한 감정은 저 멀리 보이는 행성처럼 낯설고 어색한 것이 된다. 나의 병명은 생각병이다.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도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나도 감정을 느끼지만 그 느낌에 오래 머물지 않을 뿐이다.(가끔은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도 있지만 별 소용은 없다.) 생각에 오래 머무는 것도 감정에 깊이 빠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수영을 잘 해도 바닷물 속에 하루종일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1년 내내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생활할 수 있다면 그는 인어이거나 바닷 물고기일 것이다.)
거미가 보이지 않아 지루해진 나는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간다. (병원에서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차이가 없다. 해야 하는 한 가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시간이 모든 병을 치료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일을 하고 쉬는 휴식과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무위도식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일상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밥값도 못 한다고 욕을 먹지만 병원에서는 쉬지 않으면 욕을 먹는 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 뿐이다. (사람들이 모두 병원에 입원하려 한다면 세상은 의사와 환자 뿐일 것이다. 물론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환자와 현재의 환자, 미래의 환자가 같이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그중에 나는 현재의 환자이다.)
병문안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지만 알린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다.(나와 그들은 병문안을 원치 않는다. 우리가 만나도 할 수 있는 대화가 없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 뿐이며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과의 소통보다 자연과의 교감은 즉각적이고 감각적이다. 날씨는 그냥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병원 건물 밖에서 하는 일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다. 나무는 바람이 불 때 나뭇잎을 통해 흔들림을 보여 준다.
실제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때는 적고 나무 줄기가 흔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나는 바닷가에서 파도치는 모습을 하루종일 바라볼 때가 있는데 사실 파도보다 그 밑의 깊은 바다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과 해일과 상관없이 고요한 수억년의 깊은 바다에 산소와 빛이 희박한 어둠과 같은 바다를 상상하는 것은 나를 설레게 한다. 그곳은 마치 우주에 혼자 있는 것과 같은 적막감을 떠올리게 한다.(전에 본 영화에서는 우주를 미아처럼 떠돌던 결국 주인공이 지구에 돌아온다. 돌아올 이유도 없지만 돌아 오지 않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온다.
나는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아프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픈 곳은 없지만 아프다. 내가 지금 아파야할 이유도 없지만 아프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과 같다.) 나무가 하는 일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고 나는 생각에 몸을 맡기는 것 뿐이다. 의자에 앉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의자가 아니어도 관찰하기 좋은 장소면 괜찮다. 그러나 의자가 있으면 더 오래 보며 생각할 수 있다. 편하기는 침대만한 것이 없지만 길거리 한복판에 침대를 두고 눕는다면 내가 잠들지 않아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눈쌀을 찌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다 어디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 잠들어 있거나 잠들기와 깨기를 반복하면 점심시간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예전에 내가 겪었던 고통 중에 하나는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도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선택은 언제나 불만족스러웠다. 그 이유는 선택을 하는 상황이 싫었고 점심을 먹고 나면 더 이상 고민은 의미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한 모든 선택은 바닷가에서 자갈을 줍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더 예쁘고 특별한 돌을 주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버리고 조약돌을 찾는 일이다. 내가 별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별빛은 벌써 사라진 별의 잔영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밤하늘이 그냥 까만 도화지 같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짙은 어둠 뿐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빛나는 것이 있는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모든 선택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나의 존재도 해당된다.(우주 어떤 존재도 사실 대단한 것은 없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허무한 것을 싫어하고 뭐든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뭐라 하든 모든 존재는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다. 아까 그 거미에게 내가 무슨 존재란 말인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거미를 다시 만나면 다리라도 하나 떼어 내어 내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지만 거미는 다리를 떼어 내도 다시 생긴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어 그만두기로 했다. 사람도 신체부위가 떼었다 붙였다 하면 어떨까 싶다.) 한 번은 꿈에 머리를 떼어 들고 다녔던 적이 없었다. 크게 이상하거나 불편한 점이 없었다. 다만 방향을 찾는 것이 어려웠었다.
정신 병원은 정신의 병원이자 정신같은 병원이다 아프지 않은 환자와 치료하지 못하는 병원의 조합이다. 아프지 않으니 치료할 수 없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병원이니 서로 곤란한 곳이다.
나는 이 곳을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곰곰히 생각할 뿐이다.
정신병원 입원기. 끝.
* 이 소설은 정영문 작가의 문체를 적용하여 쓴 소설입니다. 일부 내용이 유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