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나 Jun 28. 2024

엄마는 그것도 몰라?!

얼마 전 둘째가 유치원에서 선물을 받았다. 이를 잘 닦으라는 칫솔 선물.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스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를 잘 닦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유치원의 마음이었겠지만 아이는 칫솔에 대한 관심은 금세 사라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구구단 종이에 더 관심을 뒀다. 구구단이 뭔지나 알까. 아직 7세가 외우기엔 무리겠지. 하지만 난 또 누구인가.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버린 대한민국 K 유딩 엄마다. 앗! 우리 아이가 벌써 구구단에 관심을 갖다니. 수학 천재가 되려나! 그럼 아이를 위해 어떤 수학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마음이 벌렁 거릴 새도 없이 아이는 금세 문제를 내겠다며 엄마가 맞춰보라고 한다. 자 그럼 2단부터 시작..


이 일은 이

이이 사

이삼은 육

이사팔

5단 시작

오일은 오

오이십

오삼십오…

늘어가는 문제들이  벌렁거리며 타오르려던 내 설렘에 물을 끼얹는다. 하지만 아이의 눈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다. 우와… 엄마가 다 맞추다니! '우리 엄마 최고다. '하는 눈빛이다. 아직 유치원생인 아이에게 엄마는 전부일터. 모르는 게 없다. 기껏 해야 한글 맞춤법을 물어보고, 더하기 빼기를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척척 대답해 주는 엄마. 아이는 나에게 엄마는 어떻게 다 아냐고 물어봤다. 어른이니까 다 안다고, 너도 어른이 되면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고 한없이 인자한 엄마가 되어 대답해 본다. 그까짓 거 구구단.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 엄마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퇴근을 한 남편이 한숨을 쉬며 투덜거린다. 주말에 시댁에 가야 할 것 같단다. 무슨 일이 생겼나 물으니 다행히 큰일은 아니다. 어머님의 핸드폰이 오래되어 이제 새로 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뭐 큰일은 아니다. 핸드폰 가게 사장님과 몇 마디 나누고 사인 몇 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문제가 있다. 싸게 사려고 하니 핸드폰 가게는 남편 직장 근처에, 어머님은 차로 족히 두 시간을 가야 하는 강원도에. 뭐 거리가 문제냐, 게다가 우리는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초고속 인터넷망을 가지고 있는 나라 아닌가. 전자서명 몇 번만 하면 핸드폰을 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숨어있는 문제가 있었다. 어머님은 인터넷 뱅킹도, 전자 서명도 모르시고, 심지어 공인인증서도 없으시다는 것. 남편이 자고 나란 곳은 시골이다. 지금이야 많이 개발과 발전을 거듭하여 도시회 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시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신다. 농사를 지으시는 어른들에게 인터넷 뱅킹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을 터. 게다가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이니 은행 업무를 봐야 할 때면 아마 동네 농협으로 가시면 뭐 오래 기다릴 일 없이 쉽게 은행업무를 보셨을 것이다. 


키오스크는커녕 인터넷뱅킹도 할 줄 모르는 일로 어머님은 다 키워 놓은 아들에게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으셨을까. 분명 남편도 우리 아들만큼 어렸을 때가 있었고, 그때는 지금 아들에게 그동안 왜 인터넷뱅킹 계좌 하나 없는 삶을 우물쭈물 변명하는 시간이 올지 상상치도 못하셨겠지. 모든 시간과 물리적 에너지를 가족과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많은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고, 내일 입을 옷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나를 돌볼 시간을 생각지도 못할 만큼 하루하루는 바빴을 것이고 그동안 당신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이미 늙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미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매번 손을 내밀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낮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도중 남편은 분명 어머니께 투덜거렸을 것이다. 어머님의 낡은 휴대폰을 바꾸려는 효도를 하려다 오히려 불효를 저지르게 되는 참 아이러니한 일. 어머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말로 남편을 다독였다. 분명 남편도 “엄마는 모르는 게 없구나!”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언제부터 “엄마는 이런 것도 모르는 거야!”라는 시기가 온 걸까?

아직 50대도 되지 않았는데 난 벌써 키오스크가 어렵다 ㅠㅠ by unsplash

요즈음 휴대폰 앱을 이리저리 잘 활용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나보다 더 잘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슬슬 나도 “엄마 이런 것도 몰라?” 이런 시기가 오는 걸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하지만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 너희들을 키워 낸 만큼 너무 서운하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다정하게, 아니 다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너희보다 모른다고 한숨 쉬는 일은 없었으면. 


엄마도 조금은 노력해 볼게. 요즘 너무 새로운 게 많이 나와 공부할 게 많지만 하나씩 차근히 키오스크도, 쳇 gpt도 배워볼게. 


비단 ‘엄마는 이런 것도 몰라!’라는 외침은 나의 남편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숨기고 싶지만 어렴풋이 나도 그랬던 것 같은 기억이 슬며시 올라온다. 엄마에게 사과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이전 15화 녹색어머니와 초록마을의 상관관계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